마술, 기억의 문을 여는 열쇠
마술, 기억의 문을 여는 열쇠
  • 대학신문
  • 승인 2018.04.15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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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나온 책 | 올해 4월 주목할 만한 신간 두 권 (2)

『햇빛 어른거리는 길 위의 코끼리』는 타이베이의 과거 랜드마크 ‘중화상창’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이 마술을 통해 겪는 일들을 다룬 단편집이다. 서로 다른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것은 중화상창의 마술과 마술사다. 그들이 겪은 것이 실제 현상인지 환상인지는 판단할 수 없다. 하지만 아이들의 시선에서 보는 마술은 그저 신기하고 놀라운 존재다. 종이 인형이 살아 움직이고 투명인간이 되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고 들으며 독자들도 마술의 신비함에 매혹돼 잃어버린 동심을 되찾는다.

마술을 경험하는 것은 주인공들에게 일종의 도피처다. 이들의 현실은 모두 가정폭력, 생활고 등 아픔과 고통으로 얼룩져있기 때문이다. 마술의 순간적인 즐거움에 집중하며 행복해하는 것도 잠시, 그들은 언젠가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주인공들은 마술과 같은 삶을 바라지만 결국에는 현실을 살아가야 함을 깨닫고 현실의 벽에 가로막힌다. 그렇기에 대부분 주인공들의 삶은 비극적인 결말을 맺는다. 「99층」에서 주인공 마크가 친구들과의 만남으로 애써 잊고 있던 유년의 아픔을 떠올려 자살한 것이 그 예다.

주인공들은 중화상창 육교 위 마술사에 대한 서로 다른 기억을 공유한다. 이는 어릴 적의 기억이 시간이 지나도 결국 잊히지 않는 트라우마로 남았다는 증거다. 벗어나려 발버둥 치지만 결국 다시 돌아오는 과거는 삶 전체를 좌우하는 영향력을 가진다. 주인공들에게 마술은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찾아와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기억이다. 마술사라는 존재는 과거에 즐거움을 줬지만, 현재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을 상기시키며 불행을 가져온다. 「새」에서 주인공이 문조를 죽은 것으로 위장하는 마술을 보고 과거에 키우던 십자매의 죽음을 떠올리는 것처럼 말이다.

책의 대표 이야기인 「햇빛 어른거리는 길 위의 코끼리」의 주인공은 형의 죽음으로 인해 가정의 붕괴를 겪는다. 그는 코끼리 분장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가정을 외면했던 아버지를 닮은 뒷모습을 우연히 마주한다. 이후 주인공은 이상하게도 자신의 삶에서 괴로운 기억으로 남은 이들을 끊임없이 떠올린다. 또 다른 날 그는 중화상창 육교 위에서 보았던 마술사를 마주치고 형과 함께 경험했던 마술사의 투명인간 마술에 대해 떠올린다. 형을 사고로 잃은 후 한동안 잊고 있던 투명인간에 대한 욕망은 코끼리 옷을 입자 비로소 자유롭게 분출된다. 그 후 투명인간의 기억과 코끼리 옷은 각각 그의 마음과 옷장 속에 간직돼 그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 투명인간이 된다는 발상은 현실적인 어른의 시각에선 비현실적이다. 그럼에도 그의 인생역정을 이해하고 감정에 이입해보면 그가 왜 그런 믿음을 가지게 됐는지 자연스레 납득할 수 있다. 주인공과 사랑을 나눈 여자도 알고 보니 중화상창에 살며 마술을 보던 아이들 중 하나였다는 사실은 그녀 역시 그의 사연에 공감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햇빛 어른거리는 길 위의 코끼리』는 과거에 유명했지만 현재는 없어진 대만의 중화상창처럼 흔적만 남은 유년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어릴 적 한 번쯤은 겪어본 마술의 세계에 대한 동경은 독자와 주인공들의 공감대를 형성한다. 어른의 시선에서 본 마술사의 마술이 비현실적이면서도 마음이 끌리는 것은 그 속에 숨겨진 과거의 기억에 대한 향수 때문이 아닐까.

햇빛 어른거리는 길 위의 코끼리

우밍이

허유영 옮김

알마

248쪽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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