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한센병 인권보고대회’가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대한 변호사협회가 주최한 이 모임은 아마도 한센병의 문제를 ‘인권’이라는 각도에서 접근한 최초의 시도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 대회는 20세기 내내 우리 사회를 괴롭혔던 한센병 문제가 이미 해결된 것이 아니라 단지 눈에 띄지 않아서 잊고 있었다는 것을 다시 일깨워줬다. 이런 차에 엊그제혼자 살던 한 한센병력자가 숨진 지 8개월만에 발견되어 충격을 주고 있다. 그는 40년전 한센병이 발병해 가족들로부터 버림받은 뒤 부산의 어느 정착촌에 살다가 작년에 현 주소지로 이주했는데, 주위의 시선을 피해 외출을 자제했고, 외롭게 방치된 채 죽어갔다.

 

우리가 한센병자 또는 나환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환자가 아니라 단지 과거에 환자였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과거를 나타내는 흔적이 몸에 남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여전히 사회적 차별과 냉대에 시달리고 있는 가난한 노인들이다. 최근 일제하에서 소록도에 격리됐던 사람들이 한국과 일본 변호사들의 도움으로 한센병 국가배상 소송을 일본정부에 제기해 진행하고 있지만, 해방 후 지금까지 한국에서 발생했던 문제들에 대해서는 본격적인 문제제기가 이뤄지지 않았다.  

 

그동안 잊혀져온 한센병 환자, 그들의 인간다운 삶 보장해야

 

강제노동과 억압의 대명사였던 소록도의 일본인 원장이 살해된 사건은 여전히 살인사건으로 간주되고 있으며, 해방직후와 한국전쟁기, 그리고 1950년대에 수차례에 걸쳐 집단적으로 학살당한 사건들은 과거사 청산의 범주 내에 들어있지 않다. 

 

이들은 1960∼70년대에 ‘나병은 낫는다’라는 모토 아래 국가적 정착사업이 진행되면서 강제 격리로부터 상대적 격리로 전환됐고, 축산업을 통한 자활을 모색했다. 이 과정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쉬운 것은 아니다. 한국의 정착촌 정책은 국가적 절대격리를 고수한 일본에 비해서는 선진적인 것이지만, 이들의 사회적 차별로부터의 해방은 오히려 억제됐다. 나는 한국의 정착촌체제를 축산업에 대한 국가적 지원과 권위주의체제로의 정치적 동원의 교환체제로 파악한다. 사회적 차별은 당사자들을 넘어서 2세들에게 파급됐으며, 정치사회적 주체화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1980∼90년대의 민주화과정에서 사회적 시선을 받지 않고 지내는 동안 이들은 노령화됐고, 노동력을 상실했다. 여기에 최근 시장개방으로 인한 축산업의 부진, 환경문제의 부상 등으로 인해 어려움이 가중됐다. 오랫동안 이들을 이끌어온 일종의 ‘행정적으로 관리되는 조직(AMO’인 한성협동회가 파산했다. 오늘날 이들 중 일부는 도시화로 인한 지가 상승에 힘입어 상당한 부를 소유하게 됐지만, 대부분은 생계비에 미치지 못하는 수당으로 어렵게 살고 있다. 

 

이처럼 이들이 안고 있는 문제는 소수자 차별의 문제이고 노인복지의 문제이며, 환경문제, 또는 과거청산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전히 국가나 사회는 과거의 관점에서 이들을 바라보거나 아예 관심을 끊어버렸다. 이들을 단지 동정과 시혜의 대상으로 보는 시선도 문제이지만 무엇보다 이들을 보건의료정책의 대상으로 고정시켜 바라보는 것이 문제이다. 이들은 정책의 대상일 뿐 아니라 사회적 주체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들이 인권을 가진 떳떳한 사회성원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사회통합이나 사회복귀라는 용어에 배어있는 다수자 중심주의를 넘어서서 이들이 스스로 자긍심을 회복하고 인간답게 삶을 마칠 수 있도록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 이들의 자긍심을 회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하고, 이들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룰 수 있는 특별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

▲ © 대학신문 사진부

정근식 교수

사회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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