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유명한 드랙 아티스트인 루폴(RuPaul)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모두 벌거벗은 채로 태어났으며 나머지는 모두 드랙이다”(We’re all born naked and the rest is drag). 우리의 몸은 모두 자신의 것이라는 선언이다. 그런데 정말 우리의 몸은 자유로울까? 인간은 사회적으로 무언가 ‘정상적인 것’을 강요받는다. 그중에서도 ‘성’은 수많은 고정관념과 관련돼 있다. 『대학신문』에선 그런 사회의 강요에 맞서는 드랙 문화에 관해 알아보고 한국의 드랙 퀸*과 드랙 킹*을 만나봤다.

드랙이란?

드랙(Drag)이란 ‘특정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자신에게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되는 겉모습으로 꾸미는 행위’를 뜻한다. 즉 성별, 지위 등에 따라 사회적으로 기대되는 겉모습과 다르게 자신을 꾸미는 것이다. 일례로 영화 ‘파리 이즈 버닝’(1990)에선 과거 차별받던 비주류 흑인 사회의 가난한 사람들이 사회적 기득권자인 기업 임원진들의 겉모습을 따라 해 클럽에서 공연을 한다.

드랙의 어원은 분명하지 않지만 두 가지 설이 유력하다. 첫째는 셰익스피어가 희극을 쓸 때 여장한 남자배우를 DRessed As Girl의 앞 글자를 따서 DRAG으로 표기한 것에서 기원했다는 설이고, 둘째는 남성이 여성의 역할을 연기해야 했던 당시 거대한 드레스 자락이 ‘끌린다’(drag)고 말했던 것에서 따왔다는 설이다. 1930년대 이후 드랙은 성 소수자 문화와 결합됐고, 성(性)의 문제와 관련된 드랙이 현재 가장 일반적인 형태로 자리 잡았다. 예전에는 주로 시스젠더* 게이 남성이 눈이 커 보이도록 화장하거나 속눈썹을 길게 붙이고 드레스를 입는 등 여성적 특성을 과장되게 강조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드랙의 범위가 넓어졌고 아티스트마다 드랙을 다르게 정의하고 있다.

드랙 킹 ‘아장맨’은 생물학적 성별에 기초해 사회가 개인에게 기대하는 퍼포먼스에 대한 반대를 시선을 사로잡는 형태로 드러내는 행위라고 드랙을 정의한다. 여기서 ‘성별에 기초해 사회가 개인에게 기대하는 퍼포먼스’는 여성이라면 목소리가 작고 특정 방식으로 아름다울 것이라거나 남성이라면 감정을 절제하고 폭력적일 것이라는 등의 지침을 가리킨다. 드랙 퀸 ‘허리케인 김치’는 드랙이 “주로 게이 남성들이 여성성을 과장해 우스꽝스럽고 엔터테인먼트가 강조된 복장으로 무대에 서서 공연하는 것이었으나 요즘에는 그 범위가 확장돼 하나의 예술 형태로밖에 말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일례로 그는 과거 드랙처럼 여성 팝 디바의 모습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락이나 힙합까지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모두 공연한다. 그래서 그에게 드랙은 ‘여자처럼’ 입고 하는 게 아니라 평소 모습으로는 해보기 힘든 “남성성과 여성성을 모두 탐험해 보는 것”이다. 무대 위에서 공연하는 방식도 다양해졌는데, 춤, 노래, 코미디, 시 등 예술적인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다. 이에 허리케인 김치는 “드랙을 하는 사람이 드랙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가 중요한 문제”라고 밝혔다.

한국의 드랙

서양에서 드랙은 LGBT* 사회가 주류 중심 사회에 저항해 온 역사를 성 소수자 문화의 일부로서 함께해왔다. 그러나 한국에선 드랙이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소 낯선 편이다. 드랙 아티스트들이 공연할 기회도 비교적 적은데, 특히 드랙 킹의 경우 드랙 퀸에 비해 수도 적고 인지도도 낮아 어려움이 있다. 드랙 킹 ‘잭스터 더 타코마스터’(Jaxter the tacomaster)는 “나와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공연을 요청받을 것 같지 않다”며 한국에서 드랙 킹으로 활동하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드랙’이라고 하면 여장을 한 시스젠더 게이의 모습을 떠올리는 등 드랙에 대한 오해도 존재한다. 아장맨은 “(일부 대중이) 여성 드랙 퀸, 남성 드랙 킹, 혹은 퀸이나 킹이 아닌 드랙 공연자 등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며, 드랙 퀸의 퍼포먼스를 여성 꾸밈 노동의 조롱으로 읽는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하지만 국내 드랙계(界)의 미래가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니다. 성 소수자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빠르게 확산되고 성 소수자 공동체의 규모 역시 커지고 있어, 드랙 아티스트들이 공연할 수 있는 장소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허리케인 김치는 “기존에 공연하던 바 외에 성 소수자와 무관한 곳에서 공연 섭외가 들어오기도 한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드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서울드랙’과 같은 팬·퍼포머 공동체가 생기기도 했다. 이는 드랙이 한국 사회에서 점차 대중화돼 간다는 것을 드러낸다.

또한 한국 드랙계는 개방적인 편이다. 아장맨은 “(한국 드랙 분야가) 크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소수의 드랙 퍼포머들이 서로를 도우며 스스로를 드러낼 기회를 꾸준히 제공하고 있다”며 “(드랙 공동체 내에서) 다양한 퍼포먼스와 화장, 정체성의 인정과 지지가 매우 빠르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쿠시아 디아멍’과 같은 유명 드랙 아티스트가 주기적으로 새로 시작하는 드랙인들을 위한 무대를 만들어 주며, 유명 드랙 아티스트와 새로 시작하는 드랙 아티스트의 소통도 활발하다.

한국 드랙 공동체만의 특별한 면도 있다. 허리케인 김치는 한국의 드랙이 서양 드랙계와는 시작점이 다르다고 말한다. 전통적인 드랙에서 시작해 점차 그 형태가 변해가는 과정에 있는 서양과 달리 한국의 드랙은 현대적인 형태와 전통적인 형태를 다 갖추고 시작하는 셈이다. 서울드랙에 따르면 한국 드랙 사회는 드랙 퀸, 드랙 킹, 논바이너리 드랙*, 비어디드(콧수염) 퀸, 코미디 드랙 등이 모두 존재하는 등, 미국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무수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아장맨은 “(드랙이) 성별 이분법 사회가 사라지기 전까지는 계속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드랙의 의의

사회는 개인에게 당연하고 마땅한 ‘정상성’을 기대한다. 그리고 그런 사회 속에서 정상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존재를 부정당하며 고통받는 사람들이 생긴다. 성 소수자도 그 중 일부다. 박성춘 교수(윤리교육과)는 “성 소수자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존재론적 문제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성 소수자에 대한 판단이 다수자에겐 그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의 인식론적인 문제라면, 성 소수자들에게는 그들 자신의 존재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아장맨은 이런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비동의를 표하는 방식이 바로 드랙이라고 말한다. 드랙은 무대에 서거나 SNS에 사진을 올리는 등 시각이 주는 효과를 활용해 “아름다움, 추함과 천박함을 개인적인 것으로 분류”한다. 드랙은 사람들에게 아름답지 않기 위한 화장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아가 꾸밈과 화장이 다른 사람에 의해 욕망되고 싶다는 욕망의 표출을 의미하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드러내 ‘꾸민 상태의 인간’의 주체성을 인정하도록 돕는다. 아장맨은 드랙이 다양한 아름다움과 추함을 공개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통념으로서의 아름다움을 숭배하 는 사람들에게 개인의 취향에 대해 탐구할 기회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드랙이 사회가 제시하는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을 재정의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드랙은 성 소수자 인권 운동의 측면도 가지고 있다. 드랙이 주로 분장과 퍼포먼스 중심의 예술인 만큼 모든 드랙 아티스트들의 활동을 특정한 정치적 목적으로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드랙은 성 소수자 문화이고 젠더 경계와 가부장제 사회에서의 금기를 다루는 예술이다. 박성춘 교수는 “성 소수자의 문화 공연 및 활동은 그들 존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높이기 위한 사회적 활동”이라고 설명했다. 사회적 소수자의 집단 저항을 민주주의의 본질에 비춰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960년대 미국에서는 유색인종을 중심으로 사회에서 차별받던 다양한 사람들이 사회의 구조적 폭력에 저항했고 그 결과 미국의 민주주의가 발전했다. 허리케인 김치는 드랙이 “나 자신인 것에 대해 사과하거나 자신을 숨기지 않고 당당하게 서겠다는 정치적 선언”이라며 “옷 입는 스타일부터 공연하는 내용까지 드랙의 저항적인 의미는 예전부터 지금까지 있었다”고 말했다. 사회가 규정하는 남성성과 여성성에서 벗어나 예술가로서 자신을 표현하는 등 드랙 아티스트들은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다.

잭스터 더 타코마스터

▲드랙 킹 잭스터 더 타코마스터가 처음으로 드랙을 시도한 헤이든(유튜브 채널 ‘Hayden Royalty’ 운영자)의 메이크업을 해주고 있다. 그는 “사람들이 더 많이 (드랙 킹을 시도)하면 좋겠는데 그들이 너무 부끄러워 한다”며 “나는 드랙을 하고자 하는 누구든지 도와줄 마음이 있다”고 드랙 킹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표했다.

잭키(Jackie)는 미국 시카고 출신으로 몇 년 전부터 서울에서 직업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드랙 킹 중 한 명으로, ‘잭스터 더 타코마스터’(Jaxter the tacomaster)라는 이름의 드랙 킹으로 활동 중이다. 주로 이태원의 ‘래빗홀 아케이드 펍’에서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메이크업도 좋아하고 코미디와 공연도 좋아하는 그는 드랙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다 합쳐 놓은 것 같다”고 말한다. 관객들이 즐거워하는 것과 젠더를 ‘갖고 노는’ 것도 드랙의 매력이라고 한다. 한국에서 드랙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드랙 퀸인데, 그런 상황에 도전해 드랙 킹으로 활동하는 것도 그가 말하는 즐거움 중 하나이다. 또한 그는 무대 위에서 춤출 때 “정말 잭키가 아니라 잭스터가 된 것처럼 느낀다”며, 드랙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캐릭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처음 드랙을 했을 때 그는 부끄러움이 많고 자신감이 없었지만, 드랙을 하면서 자신감을 얻는다고 한다.

허리케인 김치

‘허리케인 김치’(Hurricane Kimchi)라는 이름의 드랙 퀸으로 활동 중인 히지 양(Heezy Yang)은 서울 출신의 아티스트이자 활동가다. 활동명은 가수 보아의 ‘허리케인 비너스’라는 곡에 영감을 받아 ‘김치’를 덧붙여 만들어졌다. 한국적인 색깔을 담으면서도 허리케인처럼 영향력 있는 공연자가 되고 싶다는 의미다. 그는 드랙이 “또다른 능력과 자신감을 주는 하나의 예술 형식”이라고 말한다. 평소에는 내향적이지만 드랙을 하고 ‘허리케인 김치’가 되면 더 당당해지며, 일상에서 표현하기 힘든 예술성을 드랙을 통해 표현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인권에 대한 관심도 그가 드랙을 시작하는 데 영향을 줬다. 그는 청소년 성 소수자 위기 지원센터 ‘띵동’에서 활동하던 친구들을 통해 인권 문제가 남의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는 “나는 인권 활동가이기 이전에 예술하는 사람인데, 요즘은 예술 작품과 드랙을 통해서도 인권에 대한 문제 의식을 담으려고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그는 드랙을 긍정적으로 이용해 성 소수자 공동체를 단합시키고, 그릇된 규범과 정치적 반대 세력에 맞설 수 있는 저항적인 드랙퀸이 되고자 한다고 밝혔다.



*드랙 킹(Drag King) : 일반적으로 남자의 것으로 간주되는 특성을 강조한 겉모습으로 꾸민 드랙 아티스트
*드랙 퀸(Drag Queen) : 일반적으로 여자의 것으로 간주되는 특성을 강조한 겉모습으로 꾸민 드랙 아티스트
*시스젠더(Cisgender) : 자신이 사회에서 지정받은 생물학적 성별과 성별 정체성이 ‘동일하다’ 혹은 ‘일치한다’고 느끼는 사람
*LGBT : 성 소수자 중 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를 통틀어 이르는 단어
*논바이너리 드랙(Non-binary Drag) :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분법적 성별 구분에 해당되지 않는 드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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