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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정상회담의 눈으로 판문점 선언과 그 이후를 바라보다인터뷰 |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을 만나다

지난달 27일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그 결과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체제, 그리고 남북간의 협력을 골자로 하는 판문점 선언이 도출됐다. 특히 이번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은 30분의 차이가 나는 남북의 시간을 다시 하나로 통일하는 데 합의했다. 평화의 흐름 한가운데서 『대학신문』은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에 참여했던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을 만나 평양시와 서울시가 하나가 된 것처럼 남과 북도 하나가 될 수 있을지 전망해봤다.

이재정 전 통일부장관이 사무실에서 2007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 당시를 회고하고 있다.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에 배석했던 입장에서 바라본 2018 남북정상회담은 어땠나?

2006년 10월 9일 북한이 최초로 핵실험을 했다. 국내외적으로 굉장한 문제였고 남북의 대화채널이 거의 끊긴 상태였다. 북한의 핵실험이 진행되는 걸 막는 게 당시 정상회담의 당면 과제였다. 남북 간의 대화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음에도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중에 한 번은 정상회담을 해야 징검다리처럼 다음 정권에서도 이어나갈 수 있다고 강조해 추진하게 됐다.

통일부 장관직을 수락하면서 남북대화를 추진하기 시작했는데,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서라도 빠르면 빠를수록 좋았다. 당시 유엔(UN)은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를 통해서 제제를 준비중이었고 6자회담을 통해선 대화의 손을 내밀었다. 그런 상황에서 북측이 먼저 대화를 시작하자고 제의해 2007년 2월 초순 평양에서 장관급 회담이 이뤄졌다. 이는 완전히 중단됐던 남북관계를 복원하는 새로운 시작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북한은 남북관계를 단절시키지 않고 남북 간의 대화를 통해 이어나가야 한다는 원칙이 있었다고 본다.

2007년 정상회담은 우리가 끊임없이 요구한 데 대한 응답이었다. 당시 미국 부시 대통령의 대북정책은 종전선언과 평화체제에 대한 대화를 트는 것이었지만, 우리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이러한 원칙을 재확인하는 것 외에 주도적으로 뭘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심지어 북미정상회담의 성사도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목표는 종전과 평화체제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것이었고, 경제협력이라는 큰 틀 속에서 평화를 만들어 낼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 당시의 대전제였다.

그러나 당시 북한은 회담 및 환영식 장소도 공개하지 않는 등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다. 김정일 당시 위원장의 동선 역시 철저한 비공개였다. 이번 남북정상회담과는 북한의 태도가 하늘과 땅 차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동선도 미리 다 공개하고 판문점을 통해 남으로 건너오지 않았나. 생중계 또한 엄청난 변화다. 11년 전과 비교하면 어마어마한 차이다. 이 모든 것이 남북이 그 동안 쌓아온 하나의 축적된 이해와 협력의 결과물이자, 과거와 전혀 다른 두 리더십이 만들어 낸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남북의 대화를 강조하는 입장에서 지난 보수 정권 9년간 끊어진 남북대화를 어떻게 보나?

양자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북은 북대로 2, 3, 4차 핵실험을 하고 남은 북에 강력한 제제와 압박을 가했다.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씨 사망 사고 때나 천안함 사태에서도 대치적인 조치를 취하기보다 다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었는데 대화 채널을 아예 닫아버렸다. 이전의 KAL기, 아웅산 폭파 사건 때도 남북대화가 끊어지진 않았다. 아웅산 사건은 대통령 암살 시도였고 청와대 고위층과 대통령 수행원들이 북한에 의해 죽었는데도 말이다. 쉽게 말해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북한과 대화할 의지가 없었던 것 같다. 북한을 무너트려야 하는 대결 상대로만 바라봤다.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 폐기)의 실현가능성에 대한 의심을 버리기 어려운데, 이에 대해서 어떻게 전망하나?

2007년 2월 중순 6자회담에서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CVID의 방법론이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제기됐다. 1차 핵실험밖에 안 했는데도 핵실험 및 보유를 완벽 중단시키고자 하는 합의가 2월 13일에 6자회담에서 결의된 것이다. 그 내용을 보면, 불시에 아무 곳이나 다 조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조사 항목을 사전에 정리해서 이를 시찰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미국 입장에서는 이 증명(Verify) 단계를 신뢰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판문점 선언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가장 걱정스러운 것도 이 과정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숨겨놨을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정치범 수용소 등 민감한 시설이 많은 북한이 국제기구의 불시검문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은 분명 타당하다.

게다가 북한도 미국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과의 핵 폐기 협정을 파기하는 것과 같이, 체제 인정의 보장에 대한 불확실성 내지는 두려움이 남아있었다. 그런데 북한이 ICBM 미사일과 핵폭탄을 완성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2006년 당시는 핵실험 한 번, 미사일 실험도 중장거리 로켓 정도의 초보 단계에 그쳐있었다. 하지만 현재 북한은 전쟁 이외의 모든 군사적 옵션을 다 쓴 상태고 미국은 이를 어떻게든 해결해야 하는 입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둘 사이의 불신이 많이 완화될 수밖에 없다. 6월 12일 북미정상회담에서 북한이 과거 6자회담에서 나온 방안을 능가하는 CVID를 제안할 텐데 그 보상으로 미국이 북한과 수교를 맺고 평양에 대사관을 세우면 어떨까 싶다. 미국인이 천 명쯤 북한에 가서 경제활동을 하고 있으면 절대 전쟁이 안 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경제개방도 북한이 실무 교섭 단계에서 이미 우호적으로 받아들였을 거라고 본다.

합의 여부에 대해선 낙관한다. 합의에 실패하는 경우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타격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중간선거와 대선까지 내다본다면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 이것만큼의 성과가 없다. 오죽하면 새벽 세 시에 납치됐던 미국인 세 명이 돌아오는데 본인과 부통령 내외까지 가서 환영을 하겠나.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평양을 떠날 때 김정은 위원장이 특사를 대하듯 밖까지 나와 환송해줬다. 사회주의 국가에선 볼 수 없던 모습인데 그런 장면들이 북한의 의미 있는 변화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게 아닐까 싶다.

▶남한, 북한, 그리고 미국을 넘어 동북아 전체가 들썩이고 있는데, 현 정권에 제언한다면?

가장 중요한 건 남북간 대화의 활성화라고 본다. 첫 번째로 남북 정상 간의 핫라인이 만들어지고 하위 기구들의 대화가 활발히 이뤄지는 것이 핵심이다. 두 번째는 남북 간 대화가 주변국에도 끊임없이 공유돼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폭넓게 남북간 대화를 나누면서 2차대전의 상처를 아물게 해야 한다. 그게 한반도 평화체제를 실현하기 위한 마지막 과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절묘하게 트럼프의 시간, 김정은의 시간, 문재인의 시간이 딱 맞아 떨어졌다. 각자의 이해관계가 다 다른데도 불구하고 타이밍이 적절하게 맞아 떨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이 지난 70년간 해결하지 못한 한국전쟁 종식을 목전에 두게 됐다. 어느 지도자도 해내지 못한 엄청난 일이고 그 서곡이 미국인 세 명의 석방인 셈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경우에도 지난 20여 년 동안 핵무기를 개발하고 군사적 옵션을 실행하느라 들어간 엄청난 비용을 부담하면서 인민들에게 어려움을 줬다. 이제는 자신도 인민들의 삶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책임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중동에서 돈을 벌고 들어온 많은 북한 주민들이 새로운 중산층으로 유입됐는데, 이런 경제적 흐름으로 인해 북한도 이젠 중국식 개혁개방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다다른 것이다. 마찬가지로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남북간 항구적 평화를 합의함으로써 평화를 일상적 일로 만드는 것보다 중요한 관심사는 없다. 그래서 이번 회담은 반드시 성공할 수밖에 없다. 서로 간의 시간이 맞아떨어졌다는 건 그런 의미다.

사진: 유철웅 기자 youtj2@snu.kr

심준범 기자  junbum0129@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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