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 권민주 기자 kmj4742@snu.kr

『대학신문』 휴간 기간 동안 이사를 했다. 5년 동안 그럭저럭 살아왔던 방을 떠나기로 결심한 것은 지극히 단순한 이유였다. 조금 더 인간다운 삶을 살고 싶어서다. 이렇게 말한다고 원래 살던 곳이 흔히 언론보도에서 자주 나오는 쪽방이나 고시원 같이 열악한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5년 동안 쌓인 짐은 버리고 또 버려도 계속 늘어나 생활공간을 침범한지 오래였고 5년 전에는 필요 없다고 여겼던 주방시설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됐다. 그렇게 짐으로 가득찬 방에서 편의점에서 사온 인스턴트 음식을 먹으며 ‘여기서 계속 살다간 제 명에 살긴 글렀다’란 생각을 매번 하면서도 이사라는 선택을 미뤄왔다. 그러던 찰나 신문사가 3주라는 평소보다 긴 기간의 휴간에 들어갔고 이때가 아니면 당분간은 이사하기는 힘들다는 생각에 결심을 굳혔다.

일단 결심한 것은 좋았으나 앞길이 막막했다. 생각해보면 혼자서 집을 보러 다니는 것 자체가 처음이었다. 어렸을 땐 부모님이나 친척들의 도움을 받아 방을 구했지만 이제는 그럴 수도 없었다. 물론 인터넷에 원룸 구할 때 유의할 사항 같은 것을 검색하여 여러 정보를 얻을 수 있었지만 정보가 너무 많아 오히려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역시 대학동은 원룸 밀집 지역답게 부동산도 그만큼 많아 어느 부동산을 들어가야 할 지 부터가 고민이었다. 원래 살던 집을 정리하는 것도 일이었다. 나름 깨끗하게 쓴다곤 했지만 5년이란 세월의 흔적은 어쩔 수 없어 혹시 방 관리 상태로 책잡히지는 않을까 마음을 졸일 수밖에 없었다. 짐도 생각보다 많아서 짐을 옮기느라 이사를 한 뒤 며칠 간 몸살로 고생도 했다.

사실 이런 우여곡절들은 다 부차적인 것이고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건 역시 돈이었다. 부동산에 가기 전 내 나름대로는 사전조사를 한답시고 흔히 ‘~방’으로 끝나는 이름의 부동산 앱들에 들어가 본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앱에 올라와있는 방의 보증금과 월세 수준은 생각보다 매우 저렴했다. 물론 그 가격들이 실제 가격과 어느 정도 차이가 있다는 것은 알았다. 하지만 그곳에 나와 있던 방 가격들은 나에게 실제 방값은 여기서 조금 더 비싼 수준일 거라는 환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런 환상은 실제 방들을 보러 다니면서 여지없이 깨져버렸다. 나를 맞이한 건 조금 더 인간다운 삶을 살고 싶다면 현재 내 통장에 있는 돈을 싹 다 긁어모아서 보증금을 낸다고 해도 지금보다 두 배 이상의 월세를 내야한다는 현실이었다. 결국 이사를 거의 포기한 채 집으로 돌아온 나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였다. ‘집은 알아봤냐?’ ‘보니까 어떻더냐?’라고 쉴 새 없이 물어오는 엄마에게 차마 월세가 비싸서 관뒀다는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생각해보니 갈 필요 없겠다고 그냥 시간도 없고 귀찮아서 못 가겠다고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걸로 얼버무려질 리가 만무했고 결국 엄마의 입에서 ‘보증금 모자라면 줄 테니까 걱정 말고 방 알아봐라’는 말이 나오게 해버렸다. 달콤한 말이었다. 하지만 냅다 받아먹을 수도 없었다. 결국 얼마간 전화로 실랑이를 벌이다 못 이긴 척 ‘알았다’라고 밖엔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 휴간 기간이 끝나고 나는 지금 통장 잔고와 자괴감을 대가로 예전보다 조금 더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이야기는 나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우리 주변에서 매우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다. ‘조금 더’를 위해 ‘조금 더’가 아닌 훨씬 많은 것들을 치러야 하는 이야기들이 줄어들길 기대해본다.

여동하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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