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현 기자
학술부

지난겨울 『대학신문』에 입사하기 위해 면접을 봤다. 『대학신문』에서 무슨 기사를 쓰고 싶냐는 질문을 받았다. 시리아 내전에 관한 기사가 쓰고 싶다고 답했다. 언제부터였는지 뉴스에 나오는 시리아 내전 소식에 눈이 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쉽사리 이해가 가지 않았다. 시리아 사람들은 왜 싸우는 것인가? 왜 난민 아이는 시리아를 떠나야 했을까?

『대학신문』에 입사해서 목표를 세웠다. 기성 언론에서 단편적으로만 다루는 시리아 내전 소식을 긴 호흡으로 묶어낼 수 있는 웅장한 기사를 쓰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심이 들었다. 이런 기사를 내가 쓸 수 있을까? 걱정을 안고 무작정 취재를 시작했다. 취재를 계속하다 보니 욕심이 생겼다. 더 많은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었고, 더 많은 사실을 파헤치고 싶었다. 어느새 시리아 내전 기획은 단순한 기사가 아니라 숙원 사업이 된 것 같았다.

인터뷰를 진행하고 자료를 찾을수록 아는 것이 늘어났다. 어느새 시리아 내전 기사 개요는 처음과는 너무나 달라져 있었다. 취재를 시작할 때 인상적이라고 생각했던 시아파 벨트의 개념은 여러 전문가를 만나면서 버리게 됐다. 점점 기사를 쓰는 게 아니라 내가 정말 좋아하는 주제를 탐구하는 느낌이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주제를 최대한 쉽고 재밌게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었다.

물론 재미있는 주제를 취재한다고 모든 게 쉽지는 않았다. 재미있는 것과 잘하는 것은 다르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꼈다. 영어로 인터뷰하는 일도 녹록지 않았다. 쏜살같이 빠른 말을 받아적기도 급급했고 녹음을 두세 번 들어야 내용이 이해가 갔다. 더 힘든 것은 “너무 방대한 주제를 건드렸나?”라는 의문이었다. 시리아 내전은 분명 어렵고 무거운 주제다. 기사의 내용인 이슬람과 중동의 지정학은 더더욱 그렇다. 이슬람이 어떤 종교인지 차근차근 설명하지 않고 이슬람주의를 그려낼 수 있을까? 중동에 어떤 나라가 있는지도 잘 모르는데 지정학을 얘기할 수 있을까?

결국, 두 가지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첫 번째 선택지는 시리아 내전을 이루는 모든 요소를 자세하게 설명하는 빽빽하지만 친절한 기사를 쓰는 것이었다. 두 번째 선택지는 조금 불친절하더라도 덜 빽빽하고 간결한 기사를 쓰는 것이었다. 막상 기사를 써보니 모든 요소를 설명하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리아 내전에 대해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은 더는 기사가 아니라 자기만족을 위한 논문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됐다. 덕분에 간결함과 친절함 사이에서 적당한 타협점을 찾은 것 같다.

기사가 어느 정도 나오자 다른 것을 뒤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처음에 인터뷰를 잡고 기획안을 짤 때는 ‘웅장하고 완벽한’ 기사를 쓰는 데만 집중했다. 기사가 윤곽을 드러내자 문득 이 기사가 재밌는지, 나 말고 다른 사람에게도 재밌게 읽히는지 궁금해졌다. 그 답은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시리아 내전 기사를 쓰면서 나 자신도 많이 성숙해졌지만, 기왕이면 누군가가 내가 쓴 기사를 재밌게 읽어줬으면 하는 희망을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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