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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인의 특권의식은 문제없나?
김유중 교수
국어국문학과

요즘 어느 재벌가의 갑질 행태가 사회적으로 커다란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한두 번도 아니고, 온 식구들이 돌아가며 상식 이하의 사고를 쳐온 결과다. 이번만큼은 어물쩍 넘어가지 말고 그에 상응하는 징계와 처벌을 가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강하다. 사회여론도 별로 좋지 않고, 언론이나 방송들마저 그리 호의적이진 않다.

어쩌면 이런 형태의 갑질은 그간 우리 사회의 곳곳에 알게 모르게 뿌리를 내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오죽하면 모 교수가 대한민국은 사회 전체가 갑질 공화국이라고 성토한 적이 있을까. 갑질을 당한 사람이 그 사실에 대해선 억울해하면서도 자신보다 못한 사회적 약자에게 또 다른 형태의 갑질을 하는 일은 흔히 벌어지는 현상 중 하나다. 그리고 그런 경우에 대부분은 자신의 행위가 갑질인지도 모른다. 마치 당연한 권리인 양 생각하거나, ‘나니까 이 정도지’ 혹은 ‘당해도 싸다’는 식의 논리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 우리는 흔히 교육 탓을 한다. 학교에서 최소한의 공동체 교육이나 윤리 교육만 제대로 받았어도, 아니면 밥상머리 교육이라도 제대로 이뤄졌어도 그런 불상사는 사전에 막았을 것이라고 쉽게 이야기하곤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바늘구멍 뚫기 식의 대학 입시를 통과하기 위해, 그리고 보다 나은 사회 진출을 위해 오직 경쟁만을 강조해온 우리 교육의 민낯이 거기 가로놓여 있기 때문이다. 배운 게 경쟁밖에 없는 상태이니 공동체의 윤리나 공동의 이익에 대한 강조는 늘 뒷전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는 이런 모든 잘못을 오로지 교육 탓으로 돌리려는 시선에 대해선 조금 회의적이다. 교육을 통해서 어느 정도까지는 개선시킬 수 있겠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결론은 뭔가. 사회 전체의 시스템이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다. 우리가 현재 누리는 이 권리와 풍요는 다른 누군가의 양보와 희생이 없고서는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사실부터 분명히 깨달을 필요가 있다.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없는 사회는 아무리 개개인의 능력이 출중해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자면 무엇보다도 특권의식부터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나 정도 되는 사람이’ 또는 ‘그래서 어쩔 건데’라는 식의 안일한 사고방식이야말로 우리 사회 전체를 휘감은 특권의식의 출발점이 아닌가 한다. ‘내로남불’식의 이중 잣대 또한 그런 특권 의식의 변형된 형태다.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아니, 어쩌면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일수록 이런 식의 특권의식에 깊이 사로잡혀 있는 경우가 많다.

예로부터 자부심과 자만심은 백지 한 장 차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므로 그 차이를 넘어서는 것은 대단한 결심을 요하는 일이 아니다. 우리 주위부터 찬찬히 둘러볼 필요가 있다. 내가 무심코 던진 한 마디 말투, 별 뜻 없이 저지른 행동들로 인해 누군가가 불편했던 적은 없었는지 말이다. 천부인권설까지 들먹일 것도 없이, 모든 인간은 기본적으로 동등하다. 잘났거나 못났거나 한 인간으로서의 동등한 자격과 권리를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난 다르다는 생각은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한다.

우선 나부터 돌아봐야겠다. 국내 최고의 대학에 몸담고 있다는 사실이 주위 사람들에게 부지불식간에 특권으로 내비쳤던 적은 없었는지 말이다. 서울대 출신이라는 것은 결코 벼슬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으로 큰 혜택을 받았다는 뜻과 동일하다. 그런 혜택을 받고 여기까지 온 만큼, 베풀어준 사회를 향해 감사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관악인으로서의 자부심과 명예는 지켜나가되, 그간 당연한 듯 누려왔던 특권의식부터 내려놓는 일이 필요하다. 그런 미망에서 깨어나지 못할 때, 언제든 저 재벌가의 갑질 행태만큼이나 볼썽사나운 일들이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좀 더 나은 사회, 나은 미래를 향한 초석은 우리 내부에 자리 잡은 그러한 특권의식의 청산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대학신문  snupress@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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