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 탄생 100주년 기념 기고

1. 인연

“저글링 하는 사진이 들어 있으면 제가 맡을게요.” 내가 이렇게 말하자 수화기 건너편에선 짧게 정적이 흘렀다. 그는 침을 한번 꿀꺽 삼키더니 말했다. “네, 네, 찾아보겠습니다, 잠시만요.” 그리고 몇 분 후 다시 목소리가 수화기를 건너왔다. “있습니다, 있어요, 저글링 하는 사진요. 해변에서 수영복 차림으로 저글링 하는 사진 맞죠?” “네, 맞아요.”

내가 직업 번역가로 살면서 리처드 파인만과 맺은 인연은 이렇게 찾아왔다. 쉽게 말해서, 리처드 파인만에 관한 영어책의 한국어 번역을 맡게 됐던 것이다. 잠시 상황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사진과 그림이 많이 나오는 파인만 책의 번역을 어느 출판사에서 내게 맡기려고 하기에, 나는 대뜸 저 사진이 원서에 실려 있는지 물었다. 사진이 실려 있으면 번역 의뢰를 받아들이겠다는 생각, 아니 심보였다. 잠시 의뢰인을 당황하게 만든 그 사진의 존재는 내게 왜 중요했을까? 저글링이라는 활동이 물리학, 미술, 음악, 오지 여행, 훌륭한 강의 등 인생의 여러 요소를 잘 버무려낸 파인만의 삶에 대한 좋은 비유여서일까? 저명한 과학자 겸 유명인사가 해변에서 달랑 수영복 하나 입고 저글링 하는 모습이 신선한 파격이어서? 그렇게 둘러댈 수도 있지만, 나로서는 그런 게 답이 아니다. 바로 내가 좋아하는 것이 저글링이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이 지면을 외면할 독자들이 속출할지도 모르겠다. 파인만에 대해서 알고 싶은 거지 번역가의 개인취향이나 속사정 따위는 알게 뭐람, 이라면서.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 ‘내가 좋아하는’이야말로 파인만의 업적과 삶을 이해할 키워드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 이 글을 대하는 모든 이들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됐을, 그리고 앞으로 될 말일지도 모른다. 파인만의 삶과 업적이 여러분 각자에게 ‘내가 좋아하는’ 내 삶과 어떻게든 관련을 맺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파인만의 삶으로 들어가 보자.

2. 파인만

파인만이 연구실의 한 제자와 함께 ‘지애넌의 집’에 들어선다. 매끈한 다리가 드러난 야한 옷차림의 여인들이 환한 웃음과 포옹으로 둘을 반긴다. 한쪽 무대에는 반라의 여인들이 매혹적인 춤을 추고 있다. 둘은 제일 구석진 곳에 앉는다. 제자는 위스키 한 잔을, 파인만은 오렌지 주스를 주문한다. 제자는 연구실에서 파인만 교수가 했던 말, “코가 삐뚤어지게 놀아보자고”가 기억나서 피식 웃는다. 술과 주스를 내려놓고도 여인은 가지 않는다. 다른 여인 둘이 호기심 어린 얼굴로 합세한다. 다섯은 한참 수다를 떤다. 다시 둘만 남게 되자 파인만은 컵 받침에다 대고 무언가를 적기 시작한다. 컵 받침 옆에는 다른 컵 받침이 스무 개쯤 쌓여 있다. 여인들이 알아서 갖다 놓은 것들이다. 컵 받침마다 방정식들이 빼곡하게 채워진다.

어느 오후, 파인만의 친구인 화가 지라이르 조르티안의 작업실이다. 지라이르가 꽃을 들고서 파인만에게 말한다. “난 화가라서 이 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아. 하지만 넌 과학자라서 죄다 분석해버리니까 밋밋해져 버리지.” 파인만은 발끈한다. 아무것도 모른 채 그냥 감탄만 하는 것보다 무언가를 정말로 아는 게 훨씬 더 아름답다고. 둘은 서로 한참 옥신각신하다가 파인만이 불쑥 이렇게 제안한다. “너는 물리학을 하나도 모르고 나는 미술을 하나도 몰라. 그러니까 일요일마다 한 번은 내가 물리학을 가르쳐주고 다음엔 네가 미술을 가르쳐주고. 어때?” 이후 둘은 8년 동안 그렇게 한다.

세상을 떠나기 몇 해 전부터 파인만은 어떤 여행을 준비했다. 탄 누 투바라는 곳인데, 몽골 바깥에 있는 독립국이었다가 지금은 러시아에 속한 곳이다. 파인만은 탄 누 투바에 가기 위해 절친 랠프 레이턴과 함께 별의별 짓을 다 했다. 당시 암으로 투병 중이었는데도 말이다. 파인만은 그곳이 오지여서 호기심도 일었지만, 결정적으로 수도의 이름이 키질(Kyzyl)이어서 그곳에 가고 싶어졌다고 밝혔다. 당시의 냉전 상황에서 소련 지역으로의 여행은 쉽지가 않았다. 파인만은 노벨상을 받은 유명 인사이자 명강의로 유명했기에 가령 강의차 모스크바에 가면서 조건으로 탄 누 투바 여행을 내걸면 그곳에 갈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권위에 기대는 방식은 파인만이 좋아하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대신 파인만 일행의 방식은 가령 이랬다. 그들은 몽골어-투바어-러시아어 표현 사전을 간신히 구해서, 이를 붙들고 한참 애를 써서 탄 누 투바에 사는 어떤 사람에게 편지를 보냈다. 나중에 용케 답장을 받자, 여러 사전을 잇고 그걸 이어 영어로 번역해냈다. 그런 과정을 즐겼고, 덕분에 현지인과 친분도 쌓았다. 그러나 이런저런 수를 다 써도 여행 허가를 받지 못하자, 계책을 하나 세웠다. 탄 누 투바와 관련된 공예품이 전시되는 어느 미술관 행사가 스웨덴에서 열리는데, 거기 가서 마치 자신들이 미국의 미술관 관계자인 것처럼 상황을 꾸미자는 수작이었다. 그 행사를 미국에서도 개최하도록 소련 측 사람들을 설득하면서, 미국 개최의 조건으로 탄 누 투바 현지답사를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이 작전은 결국 성공했다. 하지만 탄 누 투바 입국 허가서가 마침내 도착했을 때는 파인만이 세상을 떠난 지 2주가 지난 뒤였다. 생전에 한 인터뷰에서 파인만은 이 여행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느 날 우리는 어떤 지도를 봤는데, 수도가 키질(K-Y-Z-Y-L)이었어요. 아주 특이하고 희한하다 싶어서 거기에 가기로 결정했어요. 심각한 게 아니에요. 권위 같은 것에 관한 어떤 심오한 철학적 관점이 아니에요. 들어보지 못한 땅을 가려는 모험이 재미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죠…. 우리가 하는 일은 철학적 의미가 전혀 없다고요! 그런 걸 따지다간 엉망이 됩니다!”

파인만이 마지막 병상에 누워 있다. 더 이상 암의 악화를 막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르자, 가족과의 합의 하에 연명 치료를 중단하고 혼수상태에 빠진 지 사흘째 날이다. 파인만은 잠시 의식이 돌아온다. 진통제 때문에 몸의 느낌이 나른하다. 오랜 병상에서 보낸 기억들이 떠오른다. 암과 그 합병증의 진행 과정에 호기심이 생겨서 의학지식을 열심히 공부하던 기억. 그리고 어느 날 의사 몰래 진료 차트를 미리 봐두었다가 의사가 오자, 오늘은 혈압이 3퍼센트 오른 느낌이네요, 라고 말해서 의사를 놀라게 만든 기억이 떠오른다. 파인만은 혼자 속으로 웃는다. 그리고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첫 아내 알린의 기억이 떠오른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알린을 돌보려면 자신이, 한창 젊은 나이인데도, 결혼해서 알린 곁을 지켜야 한다며 가족을 눈물로 설득하던 때가 떠오른다. 그리고 2차대전의 와중에 주말이면 차를 얻어 타고 이백여 킬로미터를 달려가 요양원에서 죽어가는 아내와 함께 지낸 몇 년의 세월이 스쳐 지나간다. 파인만은 그때의 자신에게, 잘 했어, 라고 말해준다. 이제 가족들에게 눈을 돌린다. 마지막 인사를 나눈 다음, 한 마디를 덧보탠다. “두 번은 못 죽겠네!”(I'm glad I don't have to die twice!) 자기는 참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파인만은 마지막 눈을 감는다.

3. 에필로그

끝으로 덧붙이자면, 앞서 말한 그 책의 제목은 『리처드 파인만』(원제 『No Ordinary Genius』. 크리스토퍼 사이크스 편저, 노태복 역, 도서출판 반니)이다. 리처드 파인만이 거의 팬티차림으로 해변에서 저글링 하는 사진은 책의 110쪽에 나온다. 사진 속 파인만의 저글링 하는 자세가 눈부시다. 더불어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사람의 환한 얼굴은 더욱 눈부시다.

노태복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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