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승우 부편집장

『대학신문』에선 근 몇 달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자하연 오리의 죽음을 알리는 짧은 기사를 내보내기로 했다. 부편집장인 필자가 소재 회의에서 제안했고 담당 기자가 배정돼 취재를 해왔다. 그런데 기자의 발제에서 ‘죽음’이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듣다 보니, 그리고 죽음이라는 소재를 우리 신문에서 다루는 것을 막상 검토하다 보니 두려움이 앞섰다. 오리가 아닌 사람이었다면 기사를 내보낼 수 있었을까.

한국 사회에서 죽음에 대한 보도를, 특히 자살에 대한 보도를 접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유명인일수록 언론들은 자극적인 표제를 달고 온갖 추측성 기사를 쏟아내기 때문이다. 자살 방법을 상세히 설명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찍은 CCTV 화면을 첨부하기도 한다. 사회적 문제로 원인을 오도하는가 하면 부정확한 기사를 책임감 없이 뱉어놓는 일도 흔하다. 한 가수의 죽음을 두고 뮤직비디오를 짜깁기해 이전부터 죽음을 암시하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빈소에 동료들이 방문하는 것을 찍어 매시간 공개하기도 한다. 기사 속 ‘충격’ ‘단독’과 같은 짧은 수식어는 긴 잔인함을 남긴다.

이런 보도에 대한 제재가 없는 건 아니다. 앞서 묘사한 모든 보도는 한국기자협회의 ‘자살보도 윤리강령’(2004)과 기자협회가 보건복지부, 중앙자살예방센터와 함께 마련한 ‘자살보도 권고기준 2.0’(2013)에서 금지하고 있는 행태다. 그러나 선정적 표현을 피하고 상세한 내용은 최소화하라는, 그리고 무엇보다 신중하게 보도하라는 지침은 무실하기만 하다.

권고기준에서는 자살 보도 자체를 최소화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유명한 인물의 자살은 자살 고위험군에게 영향을 미쳐 죽음을 택하게 할 수 있다는 ‘베르테르 효과’ 때문이다. 실제로 중앙자살예방센터의 연구결과(2013)에 따르면 유명 연예인 자살 이후 2개월간 자살자 수는 유의하게 증가했다. 죽음을 알리는 기사가 어떤 이에게는 부추김일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불가피하게 자살 보도를 할 때는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센터를 소개하고* 자살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겪는 고통을 언급하되 자살의 구체적인 방법은 피해야 한다고 한다. 일명 ‘파파게노 효과’다. 자살에 대한 구체적인 보도를 줄여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 자극적 자살 보도 기사들이 유난히 많은 이유는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뉴스를 접하는 주된 창구가 포털사이트이기 때문일 것이다. 포털사이트로부터 클릭수에 비례해 전재료를 받고 신문사를 운영해나가는 언론사로서는 ‘자살’ 키워드가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기자가 퇴근할 때 어떤 기사를 썼는지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기사를 써야 한다는 우스갯소리처럼 그들에게 자살은 하나의 상품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포털 개혁은 쉽지 않아 보인다. 최근 펼쳐진 일련의 ‘인링크-아웃링크 논쟁’ ‘댓글창 논쟁’ 등에서 우리는 복잡한 뉴스 생태계가 단순한 제도 개선으로 이뤄지기 어렵다는 걸 봤다.

그리하여 기사의 무게는 기자와 언론사가 짊어져야 한다. 기자는 글에 상처받을 사람, 죽음을 택할 사람을 생각하며 표현에 신중해야 한다. 윤리강령과 권고기준을 염두에 두고 유가족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감수성이 필요하다. 자살 보도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경고를 머리에 새겨야 한다. 언론은 스스로 물어야 한다. 언론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 중심에 생명이 없다면, 남은 길은 자멸뿐이다.

*대학생활문화원 24시간 심리상담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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