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학술 취재
200년의 먼지를 벗고 다가온 목민심서목민심서 편찬 200주년, 정약용의 철학을 되짚어보다
  • 신동현 기자
  • 승인 2018.05.27 04:58
  • 수정 2018.05.27 04:58
  • 댓글 0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인 1818년 다산(茶山) 정약용은 18년에 걸친 유배 생활을 마치고 고향 경기도 광주부(현 남양주시)에 돌아왔다. 그곳에서 정약용은 자신의 대표적인 저술로 알려진 『목민심서』를 완성했다. 사람들은 『목민심서』를 “청렴이야말로 천하의 큰 장사다”와 같은 명언으로 대표되는 윤리서로 인식한다. 그렇다면 정약용은 수령에게 청렴하라고, 백성들에게 어질게 대하라고 잔소리만 했을까? 『대학신문』에선 통치술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노련한 행정가 정약용의 모습을 조명하고자 한다.

도덕군자를 뛰어넘어 다산을 바라보다

『목민심서』는 목민관*이 지켜야 할 것을 총 12개 편, 그리고 편마다 6개의 조목으로 정리한 정약용의 대표작이다. 『목민심서』를 이해하는 기존의 방법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이를 시대를 초월한 도덕 원전으로 보는 것이다. 이는 보통 『목민심서』의 구절을 현재에 그대로 적용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율기」 편의 칙궁(飭躬- 몸을 삼가는 것)을 들어 2018년의 공직자도 몸을 삼가야 한다고 충고하는 식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목민심서』. 정약용은 이 책을 통해 지방 관리들의 폐해를 비판하고 지방관이 지켜야 할 도리를 제시했다.
사진출처: 국립중앙박물관

『목민심서』를 이해하는 또 다른 관점은 실학과 근대를 연결짓는 ‘근대성 맹아 담론’이다. 이 담론의 핵심은 정약용의 실학사상에서 조선이 자생적으로 근대를 받아들일 수 있는 맹아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당시 위정자들이 정약용의 사상을 받아들였으면 조선의 근대가 훨씬 밝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런 해석이 정약용을 신격화한다며 그와 그의 저작을 역사적 맥락 속에서 분석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김선경 연구위원은 정약용을 도덕군자로 보는 관점에 대해 “칙궁은 도덕군자가 되라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행동이 통치 과정에서 어떤 영향을 끼칠지 계산하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송양섭 교수(고려대 한국사학과)는 “다산의 사상을 조선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만능열쇠로 생각하는 지나친 근대성 맹아 담론이야말로 다산을 필요 이상으로 신비화하고 신격화하는 것”이라 지적했다.

이들은 『목민심서』가 분명 도덕을 다루고는 있지만, 규범에만 머물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송양섭 교수는 “정약용은 철저하게 조선왕조의 사람이며, 성리학적 도덕주의자”라면서도 “동시에 추상적 도덕 이념을 현실에 적극적으로 구현하고자 했던 노련한 행정 전문가였다”고 말했다. 정약용은 단순히 백성을 사랑하라고 도덕적으로 가르치는 것 외에도 공정한 조세 징수, 병역, 수자원 관리와 같이 지극히 현실적인 주제들을 통해 백성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다룬다. 예를 들어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단순히 아전의 나태를 경계하라는 말에 그치지 않고, 꼼꼼히 아전들의 인사고과를 정리하라고 강조한다. 송 교수는 “『목민심서』는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상세한 행정 매뉴얼”이라고 평가했다.

사또 나으리, 어떤 고을을 만들 것이요?

정약용은 『목민심서』의 「율기」에서 “고을을 다스리는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것과 같다(治縣如治國)”고 말한다. 『목민심서』는 한 개의 고을을 어떻게 통치할지에 대한 작은 범위를 다루지만, 정약용은 고을에만 머무르지 않는 큰 정치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목민심서』에는 덕치와 법치라는 기존 정치철학 사조를 조화시키고, 거기서 통치술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내려는 정약용의 고민이 배어 있다.

실학 이전의 조선 성리학 전통은 덕치를 강조했다. 덕치는 통치가 행해지는 방식보다는 주체로서 도덕적 통치자에 집중한다.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전통적으로 군주를 성인으로 만들어 좋은 정치를 이루고자 했다. 반면 실학자들이 강조한 것은 법치였다. 김선경 연구위원은 “유형원을 위시한 실학자들은 법과 제도를 바꿈으로써 사회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새로운 생각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것이 균전제, 여전제 등의 새로운 토지 분배 제도를 통해 농업 및 토지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실학자들의 시도였다. 정약용 역시 자신의 저작 『경세유표』에서 지주에 의한 착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토지를 아홉 등분하고 조세도 충당하는 정전제를 제안한 바 있다.

정약용은 법치와 덕치를 포용하고 거기서 통치술에 대한 고찰을 도출했다. 김선경 연구위원은 “『목민심서』에서의 덕치는 과거의 전통적인 덕치와 다르다”며 “정약용의 덕치는 통치자만 도덕적이면 되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과의 관계에서 만들어진다”고 설명했다. 한편 통치자의 덕은 좋은 법과 제도의 형태로 구현되며, 법을 적절하게 적용하는 것 역시 백성과의 관계 속에서 이뤄진다. 여기서 도덕성과 법을 포괄하면서 백성과 관계를 맺는 기술이 통치술이다.

『목민심서』의 통치술은 기존 목민학* 전통과는 다른 방법으로 통치자와 백성의 관계를 규정한다. 정약용은 수령이 행사하는 하향식의 통치보다는 민의가 수령에게 올라오는 상향식의 통치에 주목했다. 명성준 교수(경상대 행정학과)는 「목민심서에 나타난 정약용의 민의수렴과 그 방안들」에서 “다산은 그의 저서들, 특히 목민심서를 통해 민의를 수렴하고, 백성들의 고충을 풀어주기 위한 방안들에 대해 논의하였다”고 설명했다. 정약용은 백성을 일방적인 통치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목민심서』는 지역사회에서 소령, 농민, 상공인, 토호, 향리 등의 다양한 세력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에 대한 많은 고찰을 포함한다. 『목민심서』에는 쌀 징수에 괴로워하는 백성의 불만을 듣고 “관내를 통틀어 윤번제로 하되 10년에 한 번씩 돌게 하고 또 수량도 감해준” 황해 감사 정언황의 사례가 있다. 이는 도덕적인 통치자가 백성의 의견을 수렴해 좋은 제도를 만든 전형적인 예다.

정약용은 중앙에서 관직 생활을 하고, 암행어사로 파견되고, 강진에 18년간 유배되면서 통치술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갈고 닦았다. 그 결과물은 현실에 밀접히 맞닿아 있는 통치술 교범인 『목민심서』다. 『목민심서』는 덕치, 법치, 통치술 같은 추상적인 주제를 다루면서도 놀라울 만큼 구체적이고 실용적이다. 그래서 『목민심서』는 19세기 조선뿐만 아니라 현재의 대한민국을 이해하는 열쇠로 활용될 수 있다. 송양섭 교수는 “『목민심서』에 나타난 관료제 운영 양상이 현재 동아시아의 관료제와 매우 유사하다”며 “『목민심서』 연구를 21세기 한국의 사회적, 문화적 바탕을 조명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년 전의 정약용이 남긴 유산을 어떻게 이해하고 활용하는지는 2018년을 살아가는 우리의 몫이다.

*목민관(牧民官): 백성을 이끌고 다스리는 관리. 흔히 지방관으로 이해된다.

*목민학: 지방관이 지방을 어떻게 통치해야하는지 연구한 학문 체계

신동현 기자  higihah@snu.kr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신동현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