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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하다
삽화: 권민주 기자 kmj4742@snu.kr

아, 비로소 10년만의 탈(脫)관악이라니. 설렘인지 불안함인지 모를 요란한 감정들로 잠 못 드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관악캠퍼스에서 먹은 끼니만 족히 2,000번은 넘지 않을까. 매일 꼬박꼬박 제때 챙겨 먹던 밥만큼이나… 반복되는 학부 생활에 무기력해지고, 진로를 결정하지 못해 갈팡질팡하던 때 쯤, 이었을 것이다. 전공 수업 교수님이 던졌던 짧은 질문이 아직 또렷하다. “대학이 무엇입니까?”

그러고 보니, 대학이 뭐지? 내가 바로 대학생인데 왜 답을 하기 어려울까. 큰 학교? 큰 학교라는 게 무슨 의미일까. 학교가 크다, 캠퍼스가 크다? 아니, 대‘학교’말고 ‘대학’. 어른의 학교, 많이 배운다, 어려운 걸 배운다, 전공을 깊이 배운다…. 아무도 선뜻 대답하지 않는데 교수님이 크게 한자로 大와 學을 쓰셨다. ‘큰 배움’.

『김예슬 선언』이었나. 그즈음 다른 전공 수업 교수님이 시간 날 때 읽어보라고 권하셨던 손바닥만 한 책은 재생지를 사용해 투박하지만 가벼웠다. 다 읽는데 10분 정도 걸렸다. 숨 가쁘게 읽었다. 가벼운 책을 덮자마자 마음 한쪽이 무겁게 아렸다. 슬펐다. 동시에 공허했다.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의미 없는 정적으로 잔잔하던 삶의 수면에 돌멩이가 툭 떨어졌다. 아니 사실은 돌덩이였을지 모른다. 선언문에서 동의하지 않을 수 있는 부분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가 대자보를 붙이고 대학을 벗어나기 전까지의 삶의 궤적은 한편으로 나의 그것과 꽤 닮은 부분이 있었다. 대학교를 벗어났음에도 나름대로 자신의 소신을 실천하는 ‘大學’, 큰 배움이라니. 이 아이러니가 슬프지만 용기가 가상하고 다행스러웠다. 그러면서도 나는 이 아름다운 캠퍼스를 박찰 용기는 없는,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러할 마땅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는, 더 솔직히 말하자면 행여나, 송두리째 흔들릴 삶의 공든 탑이 상상돼 이 달콤한 안식처와 혜택에 더 취하고 싶은…. 그런, 인간적이지만 또 안정주의적인 나를 잠시 봤다.

4년 후 나는 전공을 좁혀 깊이 배우기로 했다. 김예슬이 ‘大學’을 개척하러 대학교를 떠난 것과는 반대로 말이다. 그것도 상담이라는, 어쩌면 매우 사적이고 좁고 깊고 구체적인 그런 과정에 관해. 전공을 택한 이유에도 ‘내가 건강하게 살고 싶어서’라는 개인적인 동기가 있었다. 요컨대 나는 혼자 똑바로 서 있을 수 없었다. 대학원에 들어오기 전, 그리고 후, 개인 상담을 받고 집단 상담에 참여하면서 나는 어떤 파도가 훅 덮칠까 봐 신경이 곤두서있는 내 모습을 봤다. 발이 젖었을 뿐인데 파도에 삼켜진 양 눈을 질끈 감고 주저앉아 우는 나를 상담실 안과 밖에서 여러 번 마주했다. ‘나약한 사람’이라는 합리화를 덮어쓰고 ‘더 나약한 사람’이 되기를 스스로 선택하는 모습들.

이론으로 공부할 때는 이 작은 과정을 ‘직면’이라고 했다. 과거의 경험이든, 예상하는 경험이든 감당키 어려운 고통을 실눈이라도 뜨고 마주할 때, 피하지 않을 때, 집채만한 파도인지 썰물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또 서 있을 수 있었다. 다룰 수도 있었다. 때에 따라 발을 더 담글 수도 있었다. 어쩌면 사회나 집단의 고통 또한 개인의 내적 고통과 닮은 부분이 있다. 갈등이 표출되는 현실을 제대로 마주하기조차 버거워하는 모습들을 여러 번 본다. 없는 양 눈을 감거나, 일반화하거나, 합리화하거나, 아니면 예를 들어 혐오로 응수하거나, (마찬가지로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알고도) 혐오로 맞대응하거나.

고통스럽지만 마주한 후 오히려 더 단단해지면서, 내 경계 밖의 타인도 이전보다 선명해졌던 것 같다. 나 스스로 최소한의 끼니는 챙겨 먹을 때, 타인의 끼니도, 모르는 이의 끼니도 떠올릴 수 있는 것처럼. 상담실에서도 ‘마주 봄’은 혼자만의 과정이 아니다. 상담에 대한 애정을 머금은 탈관악행이 내 나름대로 소소한 ‘大學’이 되길 바라며, 불안보단 설렘을 안고 마친다.

김빈나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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