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의 지하철역이 황량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날 깨달았다. 원래도 사람이 많이 없는 역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긴 했다. 그렇지만 그날은 유독 더 적어 보였다. 금요일 오후였음에도. 환멸이 날 정도로 차가 막히고 사람에 치이는 퇴근 시간이었음에도. 사고로부터 2년이 지난 구의역 9-4 승강장에는 지나다니는 사람도 몇 없이 국화 몇 송이만 휑뎅그렁하니 놓여 있을 뿐이었다.

시간은 무심하게 흘렀다. 철마에 쓰러진 열아홉 청년은 시간 속에서 무뎌졌다. 출퇴근하는 사람들의 발걸음 속에서, 한순간 달아올랐다가 식어버리곤 하는 매스컴 속에서. 세월의 흐름이 제일 무섭다던 어른들의 말을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선연히 떠올렸다. 2년 전, 온종일 청년의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던 무수한 활자며 영상을, 역 가득 놓여 있던 컵라면과 꽃을. 그것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그래, 시간이 흐른 탓이겠지. 균일하게 차가운 속도로 흐르는 시간에 휩쓸린 탓이겠지. 텅 빈 승강장에서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시간이 흘렀음을, 그리고 흐르고 있음을 체감하며 멍하니 서 있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시간 속에서 그가 잊혔듯 우리도 언젠가는 잊히게 될까, 라는 작은 물음표를 띄운 채.

그때 한 사람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추모객이라고 했다. 역에 온 지 한 시간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나타난 추모객이었다. 펜을 빌려줄 수 있냐고 물은 그는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편지지였다. 그는 내게 추모를 하러 온 거냐고도 물었다. 고개를 젓는 것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아뇨, 취재하러 왔어요. 그는 편지지에 깨알 같은 글자들을 적기 시작했다. 아마도 김 군을 향한 편지였으리라.

그 앞에서 왠지 얼굴이 뜨거워졌다. 흐르는 시간이 무섭다며 무기력하게 한탄만 하던 조금 전의 내가 부끄러워졌다. 그가 하고 있던 것은 단순한 편지쓰기가 아니었다. 그는 추억하려 애쓰고 있었던 것이다. 냉정한 시간 속에서도, 지워져서는 안 될 기억을 붙잡으려 노력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도 알고 있었을 터다, 분명. 기억을 온전하게 간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시침과 분침 속에서 그것은 필연적으로 풍화되리라는 것을. 그럼에도 그는 애쓰고 있었다. 기억의 파편이나마 간직하고 추억하기 위해서.

시간은 흐른다. 그 속에서 많은 것들이 잊힌다. 김 군도, 그리고 언젠가 당신도 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중한 것들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잊혀서는 안 될 파편들을 마음에 새기려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내게서 펜을 빌렸던 그처럼 말이다.

그는 꽤 오랫동안 펜을 붙잡고 있었다. 그의 손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그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바쁘게 지나가는 삶 속에서도 무언가를 추억하고 기억하려 편지를 쓰는, 그런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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