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직
에너지시스템공학부 석·박사통합과정

국가와 시민의 충돌, 남녀갈등, 세대 차이……. 이 용어들은 모두 불평등이나 이념적 차이에서 비롯되는 일종의 사회적 충돌을 의미한다. 그런 일들에 유난히 많은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논쟁적인 화제를 좋아하고, 기존의 상태가 잘못됐다고 주장하며 자주 사회의 불평등을 언급한다. 그중 일부는 그 생각을 집단행동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사회에서 이런 사람들은 사회에 불만이 많은 사람, 튀는 사람, 심한 경우에는 사회 부적응자로 인식된다. 사회 내에서 일어나는 충돌을 공론화하는 것, 혹은 그 충돌을 나서서 해결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어째서인지 부정적인 이미지가 쓰여 있다.

반면 충돌을 물리학의 맥락에서 논하는 것은 평형의 관점에서 늘 좋은 것이다. 충돌은 평형의 기본 원리다. 모든 물체는 분자 수준에서는 육안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빠른 속도로 움직인다. 예를 들어 상온의 공기 분자는 여객기의 약 1.5배나 되는 속도로 움직인다. 분자들의 이 무작위한 운동을 우리는 열운동이라고 부른다. 열운동에 의해 분자들은 서로 끝없이 충돌하며 열운동의 평균 에너지는 온도에 비례한다. 따라서 온도가 다른 두 물체가 접촉했을 때 분자들의 충돌로 인해 온도가 높은 물체에서 낮은 물체로 에너지가 전달된다.

사회적 충돌은 사실 물리학의 충돌과 다르지 않다. 사회란 수많은 개인(분자)이 서로 다양한 방식으로 활동(열운동)하며 그 과정에서 서로 끝없이 충돌하는 하나의 계이며, 이 충돌 없이는 집단(계) 사이 혹은 내부의 평등(평형)을 기대할 수 없다. 물리학의 경우에서 그러하듯이 사회에서도 평등의 필요조건은 충돌이다. ‘충돌을 만들지 말라’는 명령은 ‘불평등에 만족하라’는 말과 같다. 우리는 평등을 추구해야 하기 때문에 사회적 충돌의 세부적 내용에 관해서는 논쟁할 수 있지만, 충돌 그 자체를 거부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사회적 충돌을 공론화하고 그것에 참여하는 것은 사회적 평등에 도달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사회적 충돌을 통해 불평등한 사회를 고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씌우고, 그들을 비하하거나 사회로부터 소외하려는 것은 사회적 평등에 반하는 행위다. 우리가 진정으로 평등한 사회를 원한다면, 사회의 약자들이 불평등한 현실에 의해 빼앗긴 권리를 되찾기 위해 참여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충돌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충돌을 통해서 평형(평등)에 실제로 도달하는 데에는 지혜가 필요하다. 물리학에서, 계에 전자기력과 같은 외부의 작용이 있는 경우 충돌은 외부의 에너지를 내부로 끌어들여 계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 일시적이지만 이 경우 충돌은 오히려 계가 평형에 도달하기 어렵게 만든다. 사회적 충돌의 경우에도 한 충돌은 수많은 단체 그리고 개인과 상호작용하기 때문에 일시적으로는 평등에 도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거나, 강한 외부의 작용으로 인해 오히려 사회를 평등에서 멀어지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무작위한 운동을 하는 분자들과는 달리 우리는 의지를 갖추고 있으며 평등에 안착할 수 있는 생산적인 충돌의 양상을 우리의 의지에 따라 유도할 수 있다. 우리들에겐 그런 방법을 생각해낼 지혜가 필요하다. 충돌을 부정하거나 우회하려는 집단적 방어기제는 이제 거부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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