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정 강사
아시아언어문명학부

두근대는 가슴 소리와 또각또각 내 발소리가 들린다. 후문을 통해 수업하러 갔던 날과 달리 정문을 통해서 들어 온 학교 풍경은 참 새롭다. 오늘은 내가 아시아언어문명학부에 개설된 베트남어를 가르치는 강사로 서울대로 오게 된 날이다. 그동안 몇 번 앞서 베트남어를 강의하셨던 교수님을 대신해 강의를 하러 온 적은 있었지만 강사로 처음 온 날이니 살짝 떨리는 마음은 당연지사. 오늘도 어김없이 어릴 때부터 길치였던 나는 자연대 근처에서 길을 헤매고 있다. 휴대폰을 찾아 지도를 봐도 어디로 가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다. 첫 수업이라 여유 있게 시간 계산을 하고 왔음에도 시간은 흐르고 난처함은 더해가는 중이다. 어쩌나 싶은 지금 때마침 저기 길을 가던 무리에서 한 학생이 내 간절한 도움의 텔레파시가 통했는지 다가와 갈 곳을 물어보고 선뜻 두산인문관까지 동행해주겠단다. 이 따뜻한 도움 덕분에 무사히 첫날 수업을 마칠 수 있었다.

2014년 3월 4일 화요일, 바로 잊을 수 없는 4년 전의 오늘 풍경이다. 그 날 이후 지금까지 만 4년 동안 서울대에서 베트남어를 가르치며 여전히 나는 학생들에게 크고 작게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어떤 언어든 태어난 나라에서 나고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터득되는 모국어가 아닌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우기는 분명 쉽지 않다. 모국어와 다른 발음, 다른 글자, 다른 문법 구조 등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은 분명 쉽지 않다. 그러나 나는 베트남어를 배우는 학생들에게 학기마다 “베트남어는 다른 언어에 비해 발음과 성조는 어렵지만 문법 구조가 비교적 쉬운 편이라 열심히 한 만큼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라고 이야기한다.

베트남어는 6성조를 가진 언어로 같은 철자지만 성조가 달라지면 전혀 다른 뜻을 갖게 된다. 예를 들어 sách[싸익]과 sach[싸익]은 철자는 같은 단어지만 성조의 위치에 따라 앞의 단어는 ‘책’, 뒤의 단어는 ‘깨끗한’이라는 의미가 있다. 다른 예로 bẩn[번]과 bận[번]은 같은 철자이지만 성조의 위치에 따라 앞의 단어는 ‘더러운’, 뒤의 단어는 ‘바쁜’이라는 의미가 있다. 이렇다보니 내가 말하고 싶은 단어의 성조를 정확히 발음하지 않으면 내 의도와는 전혀 다른 말을 하게 된다. 이렇듯 잘못하면 오해를 살 수도 있으니 성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베트남어에서 사용되는 알파벳도 영어와 발음이 다르기 때문에 처음 접할 때 어렵거나 까다롭다고 느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세상은 공평한 법! 베트남어는 다른 언어에 비해 문법 구조가 쉬운 편이라 기본 문형을 착실히 공부하면 내가 공부한 만큼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언어라는 매력을 갖고 있다.

성조도 많고 발음이 쉽지 않은 베트남어에 관심을 갖고 수업을 듣는 학생들과 다양한 관계를 맺는다. 베트남어와 강독을 모두 듣고 방학 때를 이용해 연수를 다녀온 학생들, 그리고 베트남어 수업을 통해 베트남에 관심을 갖고 방학 때 베트남으로 여행을 다녀오기 위해 베트남의 기후, 가볼 만한 곳, 맛집 등이 궁금해 학기 끝나고 연락을 해오는 학생들 그리고 강의평가를 통해 베트남어 수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잡아주었던 학생들 덕분에 한 학기 한 학기 수업이 이뤄진다. 그에 따라 나도 함께 자라간다. 매시간이 쉽진 않지만 강의를 하러 학교에 오는 아침, 사범대를 지나 강의로 향할 때마다 생각한다. 강의를 위해 의식같이 커피를 사면서 되뇌고, 수업을 끝내고 나오면서 또 생각하는 한 마디, “오늘도 감사한 하루!”

함께 모여 수업했던 우리의 시간이 추억과 경험으로 공유된다. 처음 긴장되는 마음으로 지도를 이리저리 보던 내게 다가온 친절을 시작으로 학기마다 감사함이 차곡차곡 쌓인다. 학생들이 내게 보인 친절만큼 나도 그들에게 유익한 친절이기를 바라며 서울대에서 보내는 하루가 우리 모두에게 앞으로도 늘 ‘감사한 하루’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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