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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신록으로
조수지 편집장

삼 년 삼 개월 만에 퇴사했다. 입학한 이래 처음으로 모든 『대학신문』 구성원들이 일하는 시간에 기숙사 방에서 뒹굴거렸다. 묘한 기분에 잠겨 가만 누워있다가 밀린 문자 한 통을 확인했다. 이제 기숙사에서 에어컨을 가동할 수 있단다. 아닌 게 아니라 꽤 후덥지근했다. 달력은 아직 5를 가리키지만, 매미만 울지 않을 뿐 바깥은 이미 완연한 여름이다. 창밖을 내다보니 관악산이 빽빽한 초록색으로 채워져 능선이 굵었다. 그 위로 투명한 햇빛이 쪼개진다.

제법 강한 햇살에 눈이 시렸다. 발을 내리고 눈을 감아봐도 눈 안에 초록빛 아지랑이가 아른거렸다. 수습 기자 시절 라섹 수술을 했던 여름날이 꼭 그랬는데. 벌써 삼 년 전이다. 수술대에 누워 눈을 부릅뜨자 초록색 레이저가 시야를 가득 메웠다. 처음엔 익히 봐왔던 시력 테스트 기계 같았다. 푸른 벌판에 나무 한 그루 서 있고 점차 뚜렷해지는. 하지만 곧 그 빛이 너무 강렬해져 눈이 멀까 겁났다. 타는 냄새와 함께 수술이 끝났다는 말이 들려왔지만, 눈 안을 꿰뚫었던 날카로운 초록빛은 시린 눈을 감고 눈물을 뚝뚝 흘려도 가시질 않았다.

그러나 신입 기자 시절 하던 농담 중 하나는 '신문사에서 내 시각을 포기했다’는 것이었다. 하나, 위의 수술 후 애석하게도 호전되지 않은 시력. 그도 그럴 게, 수술 직후 ‘기내보’라는 자료를 만들기 위해 며칠 꼬박 새워 모니터를 들여다봤기 때문이다. 둘, 초록색 플러스 펜으로 뒤덮여 내 문장이 없는 내 첫 기사. 기자가 원고를 넘기면 부장은 플러스 펜으로 구성이나 표현을 고쳐 이렇게 수정해 오라며 돌려주는데, 이때 원고에 펜을 거침없이 내리긋는다 해 ‘칼’이라고 부른다. 내 첫 원고는 구성이며 표현이 미숙했고, 특히 비유적 묘사가 과했다. 결국 첫 기사는 녹검(綠劍)에 도려내지고 꿰인 조각보 상태로 실렸다.

원고에 빽빽하게 들어찬 그 초록빛이 그렇게 분했다. 펜촉에 맞아 초록색 피를 뚝뚝 흘리며 바뀌는 글자보다 내 힘으로 쓴 글자가 많이 살아남길 바랐다. 미련이 남아서 엉덩이를 비비며 지금까지 남았다. 녹검을 맞아가며 매주 밤을 새우다 보니, 시력 테스트 기계 속 푸른 나무가 서서히 뚜렷해지듯 ‘기사란 무엇이다’라는 시각이 생겼다. 갈수록 원하는 방향으로 기사를 구성할 수 있게 됐고, 마침내 녹검을 쥐고 타인의 기사에 왈가왈부하기까지. 내 수습 시절 데스크는 상전벽해(桑田碧海)라며 기함할 것이다. 원고와 자료를 수백 장씩 인쇄하며 무고한 나무들을 베더니 바다라도 생긴 게 분명하다며.

참 다행이다. 한 달 전, 휴간 기간을 맞아 오랜만에 집에 갔다. 엄마 목소리를 뚫고 보이는 티비 화면이 하필 초록색이었다. 수지야, 아빠가 녹내장이래. 초록색(綠)으로 안쪽(內)이 가로막히는(障), 안압이 높아져 시신경이 마비되고 시야가 점점 좁아지는 안구질환. 사람은 참 간사하다. 순간, 뜨끈해진 눈알로 생각이 스쳤다. 바로 그 전 주 일요일 오전 마감 시간을 넘겨 마지막 인터뷰 기사 초고를 내고 식은땀을 훔쳤음에도, 이번 학기 역시 『대학신문』에 남길 잘했다고. 비로소 내 힘으로 내 마음에 드는 기사를 냈고, 가장 소중한 독자가 녹색 장벽에 가로막히기 전에 이를 읽을 수 있었다니.

정말 마지막 글이다. 며칠 전 이른 아침에 신문사 회의실을 찾았다. 고마운 공간이다. 녹검에 맞서며 푸릇한 새 시각으로 나를 채우게 해준. 유리로 두 면을 둘러친 이곳은 여름이 되면 매년 새로 돋은 짙푸른 잎이 튕겨낸 햇살로 반짝반짝 빛난다. 볕 좋은 날이면 푸른 바닥, 그 위로 나무처럼 우두커니 섰다. 역대 훌륭한 편집장들처럼 학교나 세상을 비판하거나, 독자에게 관심을 호소하거나, 언론의 책임을 당부하는 글로 마무리할까 고민했다. 하지만 이미 기자단이 나보다 잘 하고 있고, 앞으로 더 잘 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첫 기사 쓸 때 풋풋한 신록의 심정을 되짚어보며 조용히 응원하기로 했다. 기자단 한 명 한 명이 이곳에서 기자로서 나름의 의미를 찾을 수 있길.

이제 새로운 땅에서 다시 신록이 될 시간이다. 미숙한 열정뿐이던 새내기가 어느덧 여름의 초입에서 졸업을 바라보고 있다. 15년 봄에 들어와 18년 여름에 나간다. 이곳은 신림(新林), 낙엽 하나 지면 더욱 싱그러운 잎이 빈 자리에 들어 자라기 마련이니. 앞으로 더 멋진 기자들이 녹검을 맞아가며 『대학신문』의 지면을 푸르게 채워줄 것이라 믿는다.

조수지 편집장  s4kribb@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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