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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땅, 남한에 유토피아는 있었을까북한이탈주민의 남한 정착, 제도의 한계와 해결책을 모색하다
  • 김규민 기자
  • 승인 2018.05.27 04:58
  • 수정 2018.05.27 0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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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남북 정상이 ‘판문점 선언’을 발표하며 한반도의 불안정한 정전 체제를 종식하기로 약속했다. 무엇보다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입에서 ‘탈북자’가 언급되며 남북 사이에 상처가 치유되길 바란다는 말이 나온 점이 인상적이다. 여러 언론매체에서 북한이탈주민들은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자신들의 존재를 인정함에 따라 남북 교류의 길이 더 넓어졌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북한이탈주민들에 대해 남한이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이에 『대학신문』에선 ‘먼저 온 통일’이라는 이름을 가진 북한이탈주민들의 현실을 알아보고 함께 사는 미래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알아보고자 한다.

북한이탈주민,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나

북한이탈주민이 정착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무엇일까. 북한이탈주민에 관한 정보를 전달하는 유튜브 채널 ‘배나 TV’ 장원준 대표는 남북한의 근본적인 차이인 문화로 그 원인을 꼽는다. 경직적인 북한 사회에서 살아온 주민들이 자유롭고 부유한 남한의 문화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직장문화다. 사회주의 시장 경제를 경험한 북한이탈주민의 입장에서 남한의 직장문화는 굉장히 생소해 직장동료 간의 마찰이 발생하거나 해고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조동준 교수(정치외교학부)는 “북한 체제라면 개인에게 업무를 지정해 주겠지만 남한은 그렇지 않다”며 “스스로 직업을 찾아 나가는 능력을 키워야 하는데 그게 마련되지 않아 정착이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자본주의 체제가 북한이탈주민이 경제적 안정을 갖는데 가장 큰 진입 장벽으로 작용하는 셈이다. 남북한의 문화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또 다른 부분은 성 관념이다. 장원준 대표는 “가족 단위로 탈북한 경우 남한에 와서 성 평등에 눈을 뜬 아내와 북한의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한 남편 간의 갈등이 빈번하게 일어난다”고 전했다. 이처럼 남북한의 문화적 차이는 탈북민의 정착에 큰 어려움을 초래한다.

이와 같은 정착의 어려움은 실제적인 수치로도 드러난다. 올해 북한 인권정보센터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자의 22.9%가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또한, 통일부가 2015년에 공개한 자료에서도 탈북민 사망자 대비 자살자의 비율이 15.2%로 남한의 일반 통계치에 비해 3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수치로 드러나지 않는 병폐도 존재한다. 조동준 교수는 “북한이탈주민들 중에서는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불법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많이 생겨나는 추세”라며 남한 사회 정착을 지원하는 사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남북의 문화적 괴리를 느끼는 북한 이탈 주민들의 고충을 파악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보완해주는 체제가 제대로 기능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정착 지원 사업, 무엇이 문제일까

전문가와 탈북자 전반은 정착 과정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 하나원 교육제도의 문제를 공통적으로 지적했다. 우선 체제 선전에 관한 내용이 불필요하게 많은 것이 문제다. 장원준 대표는 “북한에 한류가 유입됨에 따라 남한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알고 탈북을 결심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이미 남한의 체제에 기대하고 탈북을 결심한 사람들에게 체제 선전은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반면, 한국사회 전반에 대한 객관적이고 상세한 설명은 하나원에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조동준 교수는 “북한이탈주민들에게 하나원이 자본주의가 가진 우위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명암을 분명히 알려주고 생활에 대해 준비를 하게끔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인권단체 NAUH(Now Action & Unity for Human Rights)에서 활동하고 있는 북한이탈주민 김필주 씨는 “실질적으로 남한을 살아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교육이 제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12주로 이뤄져 한 기수에 100명 가량을 수용하는 하나원 체제에선 개개인에 맞는 도움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하나원 교육 시스템은 직업교육도 포함하고 있으나 여건상 포괄적인 설명 이외에 상세한 부분을 다뤄주지 못한다. 하나원에서 남한의 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사회로 나온 북한이탈주민들이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당연한 순서다.

문제는 하나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3만 명에 이르는 북한이탈주민을 위해 상설, 비상설 기구들이 남발하는 현실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조동준 교수는 북한이탈주민들에 대한 지원 방식을 지적하며 “언론에 보도되지 않고 있지만, 탈북민에 대한 서비스는 오히려 과도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탈북민을 시혜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이익을 가져다주고 있기 때문이다. 조동준 교수는 “몇 명의 탈북민을 데리고 있는지가 지원 규모를 결정하니 공급자로서는 경쟁적으로 탈북민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기만 할 뿐 정작 그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학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실제로 서울 소재 모 대학은 탈북자 전형을 정원 외로 모집해 그에 비례해 정부 지원금을 받았지만, 이들을 대상으로 한 사후관리가 부족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장기적인 계획 없이 학생들을 받아들이고 지원금을 받다 보니 생긴 결과였다. 이처럼 장기적인 안목이 부재한 채 남발된 제도들은 북한이탈주민들이 제대로 남한 사회에 적응할 수 없게 만들며 우리 사회의 자원만 낭비될 뿐이다.

남한에서 스스로 살아남기

전문가와 북한이탈주민들은 입을 모아 북한이탈주민 개개인에 대한 맞춤형 교육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하나원에만 부담이 집중된 북한이탈주민을 대상으로 실질적인 교육을 진행하기 어려운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김필주 씨는 정착 기간에 만난 상담사가 중국어과로 전공을 선택할 것을 추천해 이를 그대로 따랐지만, 남한 학생들과의 확연한 실력 차를 느끼고 큰 상실감을 느껴 자퇴했다. 그는 “대부분의 북한이탈주민들이 탈북하는 과정에서 중국어를 조금 익혔다고 막연히 전공 진입을 추천받지만 사실 개인이 할 수 있는 건 천차만별이었다”고 밝혔다. 이처럼 북한이탈주민이라는 집단의 속성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닌 만큼 개개인에 대한 접근이 필요하다. 조동준 교수는 “하나원이 더 이상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교육을 포괄할 수 없는 만큼 이들을 대상으로 한 기관의 역할분담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앞으로 북한이탈주민을 대상으로 한 제도를 마련하기 위해선 일방적인 지원보단 그들이 발전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투자의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위에서부터 아래로의 제도의 변화만으로는 남북의 문화 차이를 극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이탈주민들이 남한의 문화에 적응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선 개인의 사고방식에도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 북한이탈주민 허준 씨(정치외교학부·13)는 APEC 정상회담에 참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인적성장과 질적개발’이라는 모델을 제시했다. 그는 “선진국인 남한이 북한이탈주민들에게 투자를 해준다면 거기서부터 교류가 시작되고 함께 가는 미래를 그릴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이탈주민이 받기만 하는 존재로 대접받는 현실에서는 지속적인 발전을 도모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북한이탈주민이 자립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조동준 교수는 “남한 체제에서 살아남기 쉽지 않다는 현실을 알려주고 이를 견딜 수 있는 자세를 가르쳐야 한다”며 지금의 교육방식을 비판했다. 그는 “눈앞의 탈북민이 어려움을 겪는다고 해서 무조건 시혜적인 입장으로 베풀어야겠다는 것은 일차원적 생각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며 “북한이탈주민들이 남한 사회의 오롯한 구성원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한 발 떨어져서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베푸는 교육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극복하면서 북한이탈주민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필요하다.

북한이탈주민을 대하는 남한의 태도는 통일 후의 미래를 보여주는 지표다. 현재와 같이 지원이 일방적으로 이뤄지는 관계에선 민족의 공존을 그리기 어렵다. 북한이탈주민들을 집단으로 접근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개개인에게 다가가는 움직임으로 그들이 자립할 수 있게 만드는 정책이 필요하다. 이런 배려 어린 시선을 통해 함께 사는 사회가 만들어지길 기대해본다.

김규민 기자  asxcv97@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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