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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든 선녀탕에서
  • 대학신문
  • 승인 2018.05.27 04:35
  • 수정 2018.05.30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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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여자들은 머문다. 어떤 여자들은 떠난다. 나는 어느 쪽인가. 쭉 머물러 있다가도 내키면 떠나자는 쪽이다. 새끼 둘 안고서라도 종종 날아올라갈 생각을 한다. 그리운 내 날개옷만 찾는다면, 날개옷만. 자꾸 이런 생각을 해선가, 누군가 「계룡선녀전」이란 웹툰을 알려줬다. 한쪽 머리를 땋아 꽃핀을 꽂고 커피를 내리는 할매 선녀 얘기다. 평소 내 스타일과 닮아 깔깔대며 읽었다.

지난 달 행사를 하나 치렀다.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과 함께 진행한 ‘언니롭게 해외정복’이라는 미니 컨퍼런스였다. 페이스북 페미니스트, 이른바 ‘페페미’들의 대모로 유명한 마이크로소프트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양파’(본명 주한나)씨와 마침 서울대에 안식년으로 와 있는 이동희 교수(독일 뮌헨공대 전기정보공학과)를 연사로 초대했다. 데이터 사이언스와 로봇공학이라는 요즘 가장 핫한 직업군에서, 그것도 해외 유수의 직장과 학교에서 이미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공을 이룬 여자들이었다.

이공계 여대생들을 대상으로 해외유학과 취업,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자리였는데, 금쪽 같은 주말 오후 물경 220명이나 모였다. 일주일 전 급히 오픈했는데도 200석이 삽시간에 가득 찼다. 그러고도 100명을 더 넘겨 대기자 접수마저 끊어야 했다. 그때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현장의 열기는 뜨거웠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노트북을 꺼내 들고 받아 치는 청중들도 여럿 눈에 띄었다. 뒤에 확인해 보니 다양한 수위의 여성/페미니즘 커뮤니티에 후기가 공유되고 있었다. 이 여자들은 왜?

기관과 함께 한 자리여서 차마 공식적으로는 말하지 못했다. 그 날 모였던 친구들에게 해외취업과 결혼이란, 결국 ‘탈조선’을 뜻하는 것이었음을. 이 땅을 너무나 사랑하지만, 당대 한 개체의 삶을 저당 잡히고 다음 세대에까지 물려줄 만큼 사랑하지는 않아서, 어떻게든 떠날 생각을 하고 있음을.

현장에 왔던 기자들에게 여러 질문을 받았다. 그 중에서 두 가지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한 과학잡지 여기자가 물었다. “어떻게 해외취업이라는 키워드를 발견한 거에요? 언제부터? 어떻게?” 그는 첫 아이를 임신해 다소 거동이 불편한 채로, 기자들의 거의 유일한 휴일인 토요일을 털어 굳이 이 자리에 와서, 선배와 함께 듣겠다고 녹취까지 한 터였다. 내게는 서울시 과학영재원의 먼 후배기도 했다. 아시아 지역의 여성 뉴스를 영어로 내보내는 다른 여기자가 말했다. “이렇게 많은 이공계 여대생이 한 자리에 있는 거 처음 봐요. 그런데 이 친구들 경험해보지 않은 걸 막연히 동경하고 있는 건 아니에요?” 그는 오랜 해외생활을 통해 영어가 자유롭고, 다수의 영어 매체와 여성 매체를 경험한 바 있는 베테랑이었다. 이 두 사람의 질문은 과학기술계와 여성계, 또는 경계인으로서 이 ‘현상’을 바라보는 눈을 담고 있었다. 그 눈들에 어쩐지,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러게. 어떻게 해외취업이라는 키워드를 발견했을까. 창업 직후인 2년 전이었다. KAIST 예술가 지원 레지던시 ‘엔드리스 로드’ 프로그램을 통해 반 년 동안 학교에 들어가 여교수님들과 여학생들을 만난 적 있었다. 그때 처음 발견한 키워드는 ‘외로움’이었다. 이공계의 여자들은 누구 하나 예외 없이 외로워 했다. 학과에서 수적으로 소수이다 보니, 학술적·문화적·정치적으로도 소외되기 쉬웠다. 학과 남학생들이 상대해주지 않아 고양이와 대화한다는 말을 듣고 가슴이 갈라졌다. 『방 안에 혼자 뿐인 여자』라는 책을 알게 돼, 펑펑 울면서 읽었다. 여학생 축구단 ‘F.C. 하이힐즈’ 멤버였던 여성 박사가 추천해준 책이었다. 미국 예일대 물리학과를 최우등으로 졸업한 여학생이 남성중심적 학계의 암묵적인 압력과 소외 속에서 어떻게 커리어를 이어가지 못하고 작가로 전향했는지를 고백하는 내용이었다. 내 이야기 같아서 눈물이 났다. 과학영재였던 여학생이 어떻게 공대를 떠나 문과로 도망쳐 스무 해를 떠돌았는지, 페이지마다 떠올라 몸서리를 쳤다. 이런 여자들이 아주 많았다.

그다음으로 다가온 키워드가 바로 ‘탈조선’이었다. 그 때는 그 단어가 그렇게 많이 쓰이지는 않았다. 학교에 있는 친구들이니 해외유학이나 이주, 정착에 대한 열망 정도였다고 기억한다. 내가 만나본 가장 똑똑한 여학생들이 한국을 떠나고 싶어 했다. 여기서는 정착할 수 없다. 안정되게 살 수 없다. 일자리가 없다는 건 뿌리를 내릴 수 없다는 뜻이었고, 뿌리를 내릴 수 없다는 건 번식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그건 이 세대의 남녀 모두가 겪는 문제이기도 했지만, 생애주기에 따른 젠더 압력을 더 받는 여자들에겐 한층 절박하게 다가오는 이슈기도 했다. 그들은 언니들처럼은 사라지고 싶어하지 않았다. 아직 한참 젊은 그들은, 인생의 카드를 거의 탕진한 나와는 달리 아직 긁지 않은 로또를 몇 장이고 갖고 있는 그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한국에선 결혼하고 아이 낳지 않을 거예요.” 나는 두 아이를 낳고서야 깨닫게 된 진실을, 그 친구들은 직접 경험하지 않고도 미리 내다봤다. 그래서 젊은이가 스승이란 거다. 2년이 지난 지금, 다행히 그 친구들은 모두 해외에 있다. 미국 각지와 영국, 그리고 호주…. 그들이 나간 세상에도 차별은 있겠지만, 이제는 영 돌아올 생각이 없어져 버렸다고들 한다.

그렇다. 우리는 거기마저 유토피아는 아니란 걸 알고 있다. 세상 어디에도 여자를 위한 유토피아는 없다. 그런데도 여기보단 아주 조금이라도 나아서 여자들은 떠난다. 이곳에서 차마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털어놓을 수 있어서. 페미니스트라는 고백도, 탈조선에 대한 열망도, 한국 남자들과 시스템에 대한 비판도, 조금은 편하게 할 수 있어서, 아니 어쩌면 아예 할 필요가 없어져버려서 그들은 안심했다. 그곳에서도 탁월성을 증명해야 하는 압력은 여전히 높고, 워낙 잘하던 친구들이니 계속 잘하고 싶은 욕망은 커져갈 텐데. 그 욕망이 젠더를 둘러싼 나이나 결혼이나 출산이나 육아에 대한 이중의 기준과 부딪히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그들은 행복해했다.

안심과 행복. 한국 사회는 여자들에게, 여전히 이걸 주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날개옷을 가진 여자들은 자꾸만 떠나려 하는 것이다. 이 시대의 날개옷이란 기술과 영어다. 그 두 가지만 있으면, 어디든 가서 살 수 있다. 그것이 지난 2년간 펼쳐 온 걸스로봇 캠페인의 핵심이었다. 수치적으로 가장 낙후한 곳에 들어가, 기술을 손에 쥐고 날아가라. 나뭇꾼들이 우리를 훔쳐보며 감춰왔던 날개옷을, 원래 우리 것이었던 그것을, 다시 훔쳐라, 탈환하라. 인류 최초의 프로그래머 에이다 러브레이스처럼, 버그라는 콘셉트를 발명한 그레이스 호퍼처럼.

나는 그러지 못해 여전히 남아 있지만, 여기서 몰카를 치우고, 물갈이를 하며, 왕년의 선녀들이 나무꾼의 아내나 엄마들로만 착취당하지 않도록 힘써볼 테다. 그러니 당신들은 떠나라. 그 중 한둘은 남아 당신들이 돌아올 만한 세상을 함께 만들 수도 있겠지. 지금 여기를 천국으로 만들 수도 있겠지. 부디 이 아름답고 정다운 지옥과 우리들의 이름을 기억해 주시라. 정든 선녀탕에서 늙어가는 언니로서 바라건대, 살아남으시라. 부디 어디서든 살아남으시라.

'걸스로봇'이라는 회사, 조직, 운동을 통해 과학과 젠더라는 전혀 다른 코드를 연결합니다. 이것들과 저것들 사이의 중간자이며 경계인이고, 그래서 언제나 무소속입니다. 언젠가는 소멸해야 하는 페미니즘 하는 사람입니다. 사실은 잘 모르겠습니다.
이진주 걸스로봇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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