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지방선거의 문제점에서 지방분권의 한계를 짚어보다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 및 무소속 후보들은 저마다 유권자들의 표심을 얻으려고 온갖 장밋빛 공약을 내걸고 있다. 공약 중에는 지방자치단체(지자체)의 장이 이행할 수 있는 것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특히 유권자들에게 솔깃한 공약일수록 지킬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지자체장에게는 권한이 없고 재원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방선거 후보들은 공약을 지킬 수 없음을 알면서도 당선되고 보자는 욕심에서 공약(空約)을 남발해 왔다. 공약을 지키지 못해도 다음 지방선거에서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다.

1987년에 개정된 현행 헌법은 대통령 직선제를 채택했다는 헌정사적 의의가 있지만, 헌법에 따라 선출된 대통령과 국회(중앙정부)의 권한이 너무 강해졌다. 대통령과 국회는 국민의 의사와는 다른 방향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한 것이다. 그런데도 국민들은 그들을 임기 중 소환하지 못하고 한탄만 하며 임기 만료일까지 기다려야 하는 신세였다. 국민은 선거 때만 주권자일 뿐 선거가 끝나면 방관자에 불과했다. 헌법 규정이 그렇다.

헌법 제1조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했다. 국민주권주의를 명확히 한 것이다. 과연 그럴까? 이 규정대로 ‘국민이 국가권력의 근원’이 되려면 주권자로서 국민이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은 직접 결정하고, 국민이 직접 행사할 수 없는 사항(예: 공공서비스)은 국민 가까이에 있는 지방정부에 맡겨 국민의 참여, 통제 및 감시를 가능하게 하며, 지방정부가 처리할 수 없는 사항(예: 외교, 국방)만 중앙정부에 맡기는 이른바 지방분권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이 두 가지가 국민주권주의의 필수요건인데, 우리 헌법은 이 요건을 보장하지 않았다.

첫째, 국민이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은 직접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발안권, 국민소환권, 국민투표권이 이에 속한다. 그러나 헌법상으로 국민발안권이 없다. 헌법개정안은 국회와 대통령만이 발안할 수 있다. 국민은 발안된 헌법개정안의 찬반투표권밖에 없다. 지난 10여 년 넘게 헌법개정을 하라는 국민과 전문가들의 요구가 거셌지만, 정치권은 여론을 무시하고 꿈쩍도 하지 않았다. 국민이 일정한 수의 연서로 직접 헌법개정안을 발의할 수 있도록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 정치권이 피하거나 지연시키는 법률제·개정안도 국민이 직접 발안할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지방선거 정당공천제의 폐해가 막심하여 국민의 70~80%가 지방선거 정당공천 배제를 원하고 있다. 더구나 중앙정당의 공천권 남용으로 시장·군수·구청장과 지방의원들은 중앙정당에 예속됐고, 국민을 위한 자치가 아니라 ‘국회의원을 위한 지방자치’로 변질됐다. 여야 대선후보가 지난 대선에서 공천폐지 공약까지 했었음에도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은 공직선거법 개정약속을 묵살했다. ‘민주적 독재체제’가 출현한 것이다. 헌법은 그대로 두고 법률개정으로 자치권을 보장할 수 있다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여야는 정당공천배제가 위헌이므로 불가하다고 한다. 헌법개정 아니면 논란은 계속될 것이다. 국회의원과 대통령의 행태가 유권자의 뜻에 배치돼도 국민은 이들을 소환할 수 없다.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독재도 가능한 상황이다. 독재의 반대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분권이다. 독재를 막기 위해 민주주의를 도입했다면 민주적 독재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지방분권으로 나가야 한다.

민선 대통령을 주권자인 국민이 아니라 국회가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파면결정을 한다. 국민은 주권자가 아니다. 국회의원 소환권은 국회가 법안심의과정에서 슬그머니 빼버렸다. 요컨대, 모든 권력은 국민이 아니라 특권층인 ‘대통령과 국회의원으로부터’ 나온다는 이야기다. 국민은 제왕적 국회의원과 대통령의 월권과 횡포를 비난할 뿐 아무런 대응을 할 수가 없다. 국민투표권의 범위는 매우 협소하다. 그나마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안에 대한 국민투표(헌법 제72조)는 시행한 적이 없다.

둘째, 국민이 직접 처리할 수 없어 정부에 맡겨야 하는 공공사무(서비스)는 그 일체를 주민 가까이에 있는 기초자치정부(시·군·구)에 맡겨 주민이 가까이에서 참여·통제·감독하게 해야 한다. 지방분권과 ‘근린(近隣) 민주주의’가 국민주권주의의 요체다. 그러나 한국헌법은 선진국 헌법과는 달리 일체의 권한을 중앙정부에 부여하고 ‘중앙정부➝시·도➝시·군·구’의 하향적 권한위임(권한이양)방식을 규정해 국민의 참여·통제가 어렵게 돼 있다. 우리나라처럼 중앙집권국가에선 중앙정부가 민초(民草)들의 민의를 수렴하여 정책결정을 하기를 기대할 수 없으므로 국민주권주의는 한낱 허구에 불과하다.

지자체의 자치입법권, 자치조직·인사권, 자치행정권은 극히 협소하며 지방재정력은 취약하다. 헌법 제37조 제2항에 의해 법률의 위임이 없으면 지자체가 조례나 규칙으로 주민의 권리제한이나 의무부과를 할 수 없다(법률유보의 원칙). 헌법이 오히려 자치입법권을 무력화하고, 지방의 자치영역을 축소하고 있다.

국회에서 폐기된 대통령 개헌안은 기존 헌법보다 지방분권을 진전시키는 방안들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자치입법권은 법령의 범위 안에서 인정되므로 법령에 자치사무에 대한 세세한 규정을 하면 자치입법권을 통한 입법의 여지는 거의 없다. 특히 자치입법은 법령을 위반해서는 안 되므로 법령에서 지방실정에 맞지 않는 규정을 하고 있더라도 자치입법권을 행사하여 이를 변경할 수 없다. ‘주민의 권리제한, 의무부과, 벌칙을 정할 때는 법률의 위임이 있어야 한다.’ 개별적으로 법률에 위임근거를 마련해주면 될 수 있다는 반론도 있으나 우리나라에선법률개정도 힘든 작업이다. 헌법개정을 통해서 지방의 손발을 풀어줘야만 바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 개헌안은 자치입법권을 확대 보장한 것이 아니라 더 제한해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연방제 수준의 개헌’과는 거리가 멀었다.

헌법에 지방자치를 보장하는 목적은 중앙정부의 간섭으로 지방정부가 자치사무 처리에 장애가 생기는 경우 헌법에 의지해서 이를 극복하려는 것이다. 헌법에 지방의원과 지자체장 선거제를 규정함으로써 국가가 법률로 지방의원이나 지자체장을 임명제로 전환하려고 해도 이를 막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헌법은 자치를 위한 바람막이가 되기보단 오히려 지방자치를 침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방자치에 대한 헌법적 보장이 빈약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기초지자체의 규모는 다른 나라의 광역지방정부 또는 주 지역정부에 유사하다. 하지만 다른 나라의 소규모 지방정부 수준의 획일적 보장을 하고 있다. 마치 어른에게 똑같이 유아복을 입히는 형상이다. 지자체가 처리하는 위임사무는 물론 자치사무에 대해서도 중앙정부가 법령으로 상세한 지침을 정하고 있으므로 지자체가 독자적으로 지방정책을 추진할 여지가 거의 없다. 지자체는 독자적인 자치주체가 아니라 사실상 중앙정부의 하급집행기관에 불과하다.

헌법 제118조는 의회와 지자체장의 선임방식, 지자체의 조직과 운영방식 등을 법률로 정하도록 하고 있어서 지자체의 자율성이 없다. 지자체의 조직은 지역의 인구, 특성과 행정수요에 따라 기관분리형(시장-의회형), 기관통합형(의회형, 위원회형), 의회-집행위원회형 중에서 어느 유형을 도입할 것인지, 지방선거방식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스스로 정하지 못하고 국가가 법률로 획일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분가한 자식들의 집에 침대와 가구 배치를 부모가 획일적으로 결정하고 자식들에게 따르도록 강요하는 것과 같다. 실로 반분권적인 발상의 전형이라 하겠다.

우리 헌법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의 재원배분과 비용분담에 대해서 아무런 규정을 두지 않았다. 모든 것이 지방정부와 이해관계가 상반될 수 있는 중앙정부에 권한과 재원에 관한 결정권을 백지위임하고 있다. 복지비용의 분담문제 등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의 갈등은 현실화된 지 오래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의 재정조정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기본방향은 헌법에서 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국가사무를 지방에 위임하는 경우, 그 비용을 전액 국가가 부담하도록 헌법에 규정해야 한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효율성을 높이고, 책임을 명확히 해도덕적인 해이를 극복하도록 해야 한다.

헌법의 지방자치 2개 조문은 지방자치를 보장하지 못한다. 대통령·국회의원·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검찰총장 소환제를 헌법에 규정해야 한다. 국회를 상-하원 양원제로 하되, 의원정수는 하원 150명, 상원 100명 이내로 하고, 지방정부의 장과 지방의원들로 구성된 시·도별 선거인단이 시·도별로 동수의 상원의원을 뽑아 상원이 지방(주민)의 이익을 대변하게 한다. 국회의원에게는 보수 이외에 일체의 금전적 혜택과 특권을 부여하지 못하도록 헌법에 규정해야 한다. 공공사무에 관한 일체의 권한을 시·군·자치구에 귀속시키고, ‘시·군·구➝시·도➝중앙정부’로의 상향적 권한배분방식으로 혁신해야 한다. 지방정부의 입법권, 조직·인사권, 과세권을 각 지방정부의 법률·조례로 정하고, 기초지방선거에 정당의 후보공천을 금지해야 한다. 중앙정부는 지방정부에 관여하지 못하며, 지방정부는 재정운영에 대한 책임을 진다. 지자체 파산제도를 시행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제는 제대로 된 헌법개정을 통해 정치가 국가와 사회발전의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이 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헌법개정의 발의권도 정치권의 독점구조를 풀어 주권자인 국민에게 돌려주는 헌법개정이 필요하다. 국민은 선거일에만 주권자가 아니라 상시로 주권자가 되는 헌법을 만드는 것이 바로 시대적 과제일 것이다.

| 글 |

정세욱 고문

한국지방자치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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