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대 연대, H교수 공개 사과 및 자진 사퇴 요구

사건 해결 촉구 연서명에 전국 수의대생 1,089명 참여

폐쇄적인 수의대 내부 문화에 대한 지적도 이어져

수의대 학장단, 교수진 전체 사과문 검토 중

지난달 31일 오후 12시 30분 수의대(85동) 앞에서 수의대 성폭력 사건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날 기자회견은 수의대 학생회와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학소위) 등으로 구성된 ‘서울대 수의대 H교수 성폭력 사건 #위드유 연대’(수의대 연대)가 주최했다. 학생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수의대 H교수의 공개 사과 및 자진 사퇴를 요구했으며 수의대 교수진에도 적극적인 사건 해결을 촉구했다. H교수는 4월 말 학생들의 요구로 1학기에 맡은 수업을 중단했으며, 학장단을 통해 곧 공개 사과하겠다는 의사만을 표시한 상태다.

4월 11일 「서울대저널」은 피해자 A씨에게 받은 제보를 바탕으로 수의대 H교수의 성폭력 사건을 보도했다. 「서울대저널」에 따르면 피해자 A씨가 속한 동아리의 지도교수였던 H교수는 회식 자리에서 A씨를 포함한 여학생들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했고, A씨가 H교수의 성폭력을 공론화하려고 시도했으나 학장단의 외면으로 지도교수를 교체하는 선에서 사건이 마무리됐다. 이와 같은 사실이 알려진 이후 수의대 학생회, 학소위가 주축이 돼 성폭력 사건 대응을 위한 수의대 연대가 출범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선 피해자 A씨가 수의대 연대에 전달한 입장문 대독과 전국 수의대생 1,089명이 서명한 ‘서울대 수의대 성폭력 사건 해결 촉구’ 연서명문 낭독이 진행됐다. 피해자 A씨는 입장문에서 “당시 다른 피해자들과 용기를 내 피해 사실을 학장단에 제출했으나 학장단은 수의대 일은 수의대 내부에서 해결해야 한다며 인권센터 등 외부기관으로 사건이 알려지는 것을 막기에 급급했다”고 밝히며 “H교수는 수년이 지난 지금에라도 피해자들과 사회 구성원들에게 사과하고, 부끄러움을 안다면 강단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진 연서명문 낭독에서 수의대 연대는 건국대, 경북대, 제주대 등 전국 수의대생 1,089명이 A씨의 주장에 공감하며 H교수 사건의 해결을 촉구하는 것에 동참했다고 밝혔다.

수의대 연대는 수의대 교수진에 △상습 성폭력을 자행한 H교수의 자진 사퇴와 공개적인 사과 △사건 발생 당시 사건 처리 과정에 대한 조사와 당시 학장단의 공식적인 사과 △현 수의대 학장단을 필두로 수의대 교수진 모두가 책임 있는 사건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요구했다. 수의대 연대는 기자회견 직후 H교수에게 연서명문과 사퇴요구서를 발송해 다음 수의대 교수회의가 예정된 이번달 7일(목)까지 이에 대한 공개적인 답변을 요청했다. 수의대 한장희 학생회장(수의학과·15)은 “사건이 공론화된 지 50일이 지났지만 H교수는 아무런 입장도 밝히지 않았다”며 “H교수는 연서명 결과와 수의대 연대의 요구 사항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발언했다. 이어 그는 “처음 문제 제기가 이뤄졌을 때 사건의 정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한 교수진 모두가 책임자”라며 “교수진 전체가 즉각적인 문제 해결에 나서 적절한 후속 조치를 마련하고 적극적으로 수의대 내부 문화를 개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수의대 연대는 권력 구조에 의한 성폭력이 발생해도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수의대의 폐쇄적인 문화를 지적하며 앞으로 이 같은 문화를 바꾸는 데 앞장설 것임을 천명했다. 기자회견 발언자로 나선 심재윤 씨(수의학과·14)는 “공론화 이전부터 H교수가 여러 여학생을 성추행한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동안 여러 이유로 침묵해왔다”며 “이런 일이 일어났을 경우 더 이상 외면하지 않고 침묵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서효령 씨(수의예과·18) 또한 “피해자가 수의대의 폐쇄적인 문화로 인해 외부 기관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며 “H교수가 자진 사퇴하기 전까지 지속적인 문제 제기와 수업 거부를 통해 안심하고 공부할 수 있는 수의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요구를 전달받은 H교수는 공개 사과 요구에는 응했으나 자진 사퇴 요구에 대해선 따로 의견을 전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H교수는 연락을 받지 않는 상태다. 이에 수의대 학장단에 확인해본 결과, 우희종 학장(수의학과)은 “H교수가 할 공개 사과의 형식과 방식을 논의하고 있다”며 “교육기관에서 도덕에 어긋나는 일이 일어나선 안 되기에 학생회가 요구하는 사항을 최대한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H교수 사퇴 요구에 대해 “교수의 사퇴나 수업권 박탈은 교칙 상 단과대 차원에선 강제할 수 없는 부분이라 본부에 해당 사안에 대해 문의해봤지만, 시효가 이미 지나 본부 차원의 징계 조치 또한 불가하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밝혔다.

수의대는 이후 교수 성폭력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 이미 존재하는 온라인 익명게시판을 더욱 활성화하고, 학생상담소를 개설할 계획이다. 또 현재 수의대는 당시 학장단을 비롯한 교수진 일동의 사과문 작성을 검토하고 있다. 우희종 학장은 “단과대 규모가 작아 성폭력 사건을 전담으로 다룰 전문 인력을 배치하는 것은 어렵다”며 “대신 수의인문사회학을 전공하는 천명선 교수(수의학과)에게 이 역할을 맡겨 수의대 자체적으로 인권 교육 특강을 열고, 교무학생부학장을 소장으로 하는 학생상담소를 운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온라인 익명게시판 제보를 이전보다 철저히 확인해 제때 조처하고, 교수진에게는 성폭력 관련 교수 매뉴얼을 충실히 이행할 것을 재공지하겠다”고 덧붙였다.

사진: 김민주 기자 k0415mj@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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