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의 기사 돈키호테’ 한국에 오다

▲ © 노신욱 기자

 

2005년은 돈키호테와 그의 부하 산초 판자의 모험을 다룬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가 출간된 지 400주년이 되는 해다. 이를 기념해 한국스페인어문학회 주최로 「제11차 세계 세르반테스 학술대회」가 17일(수)부터 4일간 호암교수회관에서 열렸다.

흔히 돈키호테를 정신이상자, 현실성 없는 이상주의자 등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세르반테스는 단순히 돈키호테를 희화화하고자 한 것이 아니다. 그는 종교재판과 검열이 횡행하는 상황 에서 『돈키호테』를 통해 당시 스페인 지배계층을 비판하려 했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세계 여러 학자들이 『돈키호테』의 해석을 둘러싸고 다양한 의견을 나눴다.

 

호세 잉나시오 디에스 페르난데스 교수(에스파냐 콤플루텐세대)는 「과거의 무게: 50년간의 침묵에 대한 가정」이라는 제목의 발표를 통해 돈키호테가 기사가 되기 전인 알폰소 키하노로서의 삶에 주목하고자 했다. 알폰소 키하노의 나이가 『돈키호테』를 저술할 때 세르반테스의 나이와 비슷하며, 작가의 자전적인 요소가 작품에 반영돼 있다는 것이다. 그는 “비쩍 마른 외모뿐만 아니라 기사도 소설을 너무 많이 읽어 정신이 이상해진 돈키호테의 모습도 독서를 좋아한 세르반테스와 닮아있다”고 설명한다. 전용갑 교수(한국외국어대 스페인어과)는 이에 대해 “돈키호테에 대한 연구는 많지만 작품 속에서 간접적으로 묘사된 알폰소 키하노에 대한 연구는 부족한데, 이에 대해 주목한 것이 흥미롭다”고 말했다.

 

당대 기사 소설과 달리 약자 보호하는 돈키호테 

프란시스코 마르케스 비야누에바 교수(하버드대)는 「『돈키호테』: 편력기사의 양면성」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마르케스 비야누에바 교수는 발표를 통해 『돈키호테』가 귀족에게 충성하는 기존 기사 모습이 아닌 고아, 미망인 등 약자들을 돕는 기사를 그렸다는 점이 특이하다고 지적했다. 또 당시의 종교계의 수구적 분위기에 맞서 가톨릭 교회 집단과 성직자를 비판한 것도 특징이다. 세르반테스는 극심한 광기에 사로잡힌 주인공을 내세워 작품에 드러나는 사회비판적 성격과 일탈성을 완화시키고, 검열을 피했다는 것이다.

 

한편, 권민경 교수(경희대 스페인어과)는 「『돈키호테』가 한국 문학에 미친 영향」이라는 발표를 통해 포스트모더니즘적 관점을 적용해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 경성, 쇼와 62년 』과 『돈키호테』를 비교했다. 권 교수는 “미국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원조를 『돈키호테』에서 찾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그런 인식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돈키호테』 2부에서는 등장인물들이 1부에 대해 비평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와 같이 소설 속에서 허구와 실재, 텍스트의 안과 밖이 구분되지 않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간텍스트성’은 『비명을 찾아서: 경성(京城), 쇼와 62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이며, 한국이라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 이 책의 내용에는 『경성, 쇼와 61년』이라는 작품이 등장해 한국의 역사가 존재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현실의 허구성을 보여준다.   

 

등장인물이 텍스트 논하는 ‘간텍스트성’나타나

 

한국에서는 최남선이 1915년 『돈키호테』를 짧은 번역글로 소개한 후 채만식, 최민순 등에 의해 번역됐고, 최근 한국외국어대 스페인어과 대학원의  BK21 세르반테스연구팀에 의해 새롭게 번역이 이뤄졌다. 세계스페인어문학회 회장인 쟝 프랑수아 보트렐 교수(프랑스 렌대)는 “스페인어문학이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학자들에 의해 연구되면서 새로운 시각이 제시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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