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들썩했던 미국 대선은 결국 부시의 재선으로 끝이 났다. 부시가 집권한 지난 4년간의 세계를 돌아보면 미국인들의 선택이 한없이 원망스럽게 느껴진다. 오죽하면 미국 대통령 선거에 다른 국가들도 3분의 1정도 투표권을 행사하는 제도를 만들었으면 어떨까 하는 상상까지도 해 보았을까. 덧붙여, 국내 공중파 방송 3사가 CNN의 전파를 그대로 받아 정규방송을 모두 없애고 하루 종일 미 대선을 생중계하는 행태는 여기가 미국인지 한국인지, 미국 대통령을 뽑는 것인지 한국 대통령을 뽑는 것인지 눈을 의심해야 할 정도였다. 물론 미 대통령의 선출이 당장 우리나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그만큼 우리가 대미관계에서 예속적일 수밖에 없다는 현실에 서글픔만 느낄 뿐이다.

 

 

규모나 영향력에 있어서 미 대선과 절대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관악에도 선거철이 돌아왔다. 여기저기 붙어있는 벽보나 선본티를 입고 무리지어 다니는 선본원들을 보면 벌써 1년이 지났음을 실감한다. 학부 새내기 시절에 단체 선본티를 입고 밤새 마임을 연습하며 다른 과 사람들과 어울리며 지냈던 시간은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내게는 좋은 추억이다.

 

총학 선거에 대한 무관심은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

선거권 행사는 현실 정치에 대한 가장 초보적인 실천 양식

 

그러나 그 10여년 동안 ‘쇠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축소된 학생회의 위상을 보면 매우 안타깝다. 50% 투표율을 넘지 못하여 연장투표는 마치 제도화된 듯하고, 작년에는 84년 총학생회가 처음 선 후, 선거 무산이라는 초유의 사태까지 일어났다. 군사정권의 탄압시절, 학생 대표자를 학생들 손으로 직접 선출하고 총학생회를 세우기 위해 우리의 10년, 20년 윗 세대 선배들이 치른 희생과 노력을 생각한다면 작년의 총학선거 무산은 그냥 가십 기사 정도로 흘려 보낼 성질의 것이 아니다.

 

최근의 침체된 총학 선거는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이 학생회와 학생들 간의 괴리, 학생운동의 침체, 광역화의 여파, 팽배해진 개인주의 등이 총체적으로 반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얘기했듯이 바다 건너 미 대통령 선거가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큰 이슈로 부각되는 데에는 남, 북한과 관련된 정치, 경제, 군사상 관계가 그만큼 현실의 문제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거꾸로 말하면 총학 선거에 대한 무관심은 그만큼 학생들이 선거 자체에 참여할 직접적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선거에 출마하는 여러 후보들은 누구보다도 학생회가 처한 위기에 대하여 공감하고, 더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학생회를 위해 고민하고 행동하는 이들에게 관심을 조금만 보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셔틀버스 안에서 선본들이 나누어 준 전단지를 한번 쯤 훑어보거나, 아크로를 지나가다 후보들의 유세에 잠깐 귀 기울이는 일, 도서관 통로에서 단 몇 분만 투자하여 투표를 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선거권이 없는 대학원생 신분인 나로서는 오히려 행사할 수 있는 선거권을 가지고 있는 학부생들이 부럽기까지 하다.

 

하찮게 보일지는 몰라도 선거권의 행사는 현실 정치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는 가장 초보적인 실천 양식이다. 미국 대선 결과에는 흥분하면서 정작 내가 속한 단위의 대표를 뽑는 총학 선거에 무관심하다면 뭔가 그림이 맞지 않다. 기성 정치권에 비해 아직은 순수한 총학 선거에, 미 대선에 가졌던 만큼의 관심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 © 대학신문 사진부

 

유도일

농경제 사회학부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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