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형준

정치외교학부 학사졸업

눈을 떠보니, 보다 넓은 세상으로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중이네요.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그때 역시 그러했습니다. 기숙사에 짐을 들이고, 서울대 정문에서 부모님과 찍은 사진 속에서 저는 마치 세상을 다 가진 아이 같은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겨울 같던 고등학교 생활을 벗어나 다가올 새 삶에 대한 기대에 부푼 여느 새내기였지요. 마음속엔 걱정보단 설렘이 가득했습니다.

어느새, 그때는 넓어 보였던 서울대 세상은 저의 일상생활의 배경이 됐습니다. 강의실 한편엔 집중하면서 내쉰 숨소리가, 건물 사이사이엔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눈 말소리가, 학교 곳곳엔 혼자 읊조린 마음의 소리가 새겨져 있습니다. 그 모든 소리는 저를 성장시키는 양분이 돼 지금의 저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모든 소리를 가슴에 새기고 정들었던 공간을 떠나게 됐습니다.

관악은 저에게 끊임없는 영감을 주는 장소였습니다. 워낙에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고는 배기질 못하는 성격인지라 3년 반 동안 참 많은 집단에 속했고, 자연스레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누구 하나 훌륭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지요. 저에게 학교생활을 통해 남은 것이 무엇이냐 물으신다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이 모든 사람들이라 대답할 것입니다. 이들은 남은 인생동안 저와 같은 시대를 살며 저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것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대학에서 뭘 배웠는가? 정치학을 배운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졸업을 목전에 두고 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봤고, 나름 거창한 대답을 해봤습니다. 세상을 바라보고, 가치 판단을 내리는 방법이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정답이 없고, 바로 이때문에 가장 중요합니다. 그에 대해 스스로 답을 찾고, 그를 끊임없이 되새김질하는 것. 나의 생각으로 나를 가르치는 것. 당연히 아직 미숙하지만 본질에 다가가는 연습을 했다는 것 하나만은 뿌듯하게 느껴집니다.

어느 소설가의 말처럼 지나간 세월은 과거를 말하기보다는 새로 이룬 것을 보여주며, 앞으로 나의 변화를 예측합니다. 짧고 굵었던 3년 반의 대학 생활 동안 저는 눈에 띄게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교문 밖은 교문 안과 확연히 다르다고, 훨씬 많은 좌절과 슬픔이 우릴 기다린다고 하더군요. 그도 그럴 것이 하나의 방패막이었던 학생이라는 신분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으니 오롯이 저 혼자 모든 풍파를 헤쳐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딱히 걱정되지는 않습니다. 관악에서 함께 호흡한 이들이 하나의 지표(指標)가 되어 등대 역할을, 관악에서 배운 것이 하나의 나침반이 돼줄 것이기에. 그깟 졸업장 한 장에 담을 수 없는, 거대한 무언가가 분명히 내 안에 있다는 자신감 때문에.

그러므로 우리는 물결을 거스르는 배처럼, 쉴 새 없이 과거 속으로 밀려나면서도 끝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위대한 개츠비』 중

어느새 교문을 나섭니다. 물론 변화를 마주하는 것은 두렵습니다. 그러나 아마도 또다시 그 변화 속에서 저와 세상을 만들어갈 것입니다. 다가오는 졸업식 날, 정문 앞에서 환히 웃으며 사진을 하나 찍으렵니다. 3년 전의 그것보다 더 확실한 의미를 가진 미소를 지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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