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이들에게

송지우 교수

정치외교학부

졸업을 축하합니다. 딱히 축하받을 기분이 아닌 졸업생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돌아보면, 다짐과 달리 학교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게임을 너무 많이 했거나, 어떤 ‘덕질’에 과하게 몰두했거나, 부질없는 연애를 했거나 그조차도 못해서 아쉬운 사람이 있으리라 짐작합니다. 당장 졸업식 다음 날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거나, 출근할 곳, 등교할 곳이 있기는 한데 확신이 서지 않아서 심란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을 축하하는 것은, 여러분이 특정한 결과를 얻어서가 아니라 수년에 걸쳐 어떤 중요한 활동, 말하자면 순간의 선택을 쌓아 나의 고유한 역사를 만드는 활동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이 활동은 어떻게 보면 인생의 주된 활동이고, 능력을 타고나는 사람도 있지만, 대체로는 시행착오와 우여곡절을 겪으며 경험을 쌓아야 합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대학 입학 전까지 연습의 기회가 충분하지 않아서, 대개 대학을 다니며 맞닥뜨리는 크고 작은 선택의 순간을 지나며 조금씩 경험을 축적합니다. 여러분이 졸업한다는 것은, 이처럼 값진 경험을 수만 시간이 넘게 쌓았다는 뜻이므로, 이를 축하합니다.

경험도 좋지만 시행착오를 줄일 비법은 없겠느냐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조언할 처지는 아닙니다. 다만 참고가 되길 바라며 그동안 여러분에 대해 관찰한 바를 보고하고자 합니다.

면담과 수업 시간에 살펴본바, 우리 학교 학생 상당수가 매사를 너무 오래 그리고 복잡하게 고민(overthink)하는 성향을 보입니다. 진로 결정이나 인연·절연과 같은 중대한 계기에서뿐 아니라 다음 학기에 어느 과목을 수강할 것이며 수강신청을 취소할 것인지와 같은 작은 문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경우의 수를 빠짐없이 세밀하게 파고드느라고 고생하는, 선택의 결과뿐 아니라 그 과정마저 완벽해야 한다고 믿는 듯한 학생이 많다는 얘기입니다. 이제 졸업을 계기로, 혹 이런 성향이 자기 파괴적인 완벽주의의 한 발현은 아닐지 자가진단을 해보는 것도 유용하지 않을까 합니다.

여러분은 아마 어린 시절부터 놀라울 정도로 완벽함에 근접했을 것입니다. 수업을 하며, 그런 여러분의 모습에 감탄하고는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조차도, 시도하는 모든 걸 완벽하게 해낼 수 있을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이 사실은, 숱한 사람이 못해낸 일도 나만은 해낸 적이 많은 사람-여러분 같은 사람-일수록 받아들이기 어려우나 모쪼록 빨리 받아들일수록 좋습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면, 불완전함과 실수를 받아들이지도 고려하지도 않겠다는 생각을 버리는 게 조금 수월해질 것입니다. 완벽함이 불가능한 현실을 외면할 수 없게 됐을 때, 대신 선택의 순간을 외면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아니면 전혀 엉뚱한 일에 열중하며 상황을 회피한 적이 있다면, 은연중에 이처럼 비현실적이고 비타협적인 완벽주의를 붙들고 있었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그러한 완벽주의를 떨쳐내면,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대학원을 다닐 때, 학과 선생님이 논문 쓰기 워크숍을 열어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할 일은 논문을 쓸 수 있을지 걱정하는 게 아니라 논문을 쓰는 일입니다.” (오해를 막기 위해서였는지, 다음 말도 덧붙이더군요. “여러분이 논문을 쓸 수 있을지 판단하는 건 우리 교수들이 할 일입니다. 우리는 이 일을 무척 잘합니다.”) 완벽주의를 떨쳐낸 여러분은 무슨 일이든, 그것을 할 수 있을지 걱정하는 데보다는 그것을 하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원하지도 않았던 일을 하는 대신, 부족하나마 하고자 했던 일에 조금씩 조예가 깊어질 것이고, 얼마 지나 돌아보면 “이 상황도 나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릴지 모를 일입니다.

사실 어떤 일을 잘할 수 있을지, 그 일이 나에게 맞는지는 직접 겪어보고서야 알 수 있곤 합니다. 도움이 안 되는 완벽주의의 또 한 가지 측면은, 시행착오의 비효율성을 견디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령 로스쿨이 나에게 맞는 곳인지는 다녀봐야 온전히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전에 완벽한 선택을 할 수는 없습니다. 비법 얘기를 꺼내놓고서 할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 상황에서 왕도는 없습니다. 자기 이해는 무척 어렵고 선험적이지만은 않으며, 이해의 대상인 나 자신은, 내가 나를 찾아 헤매는 동안 그리고 그 헤맴의 결과로 계속해서 변해갑니다. 칠순을 넘긴 대학원 지도교수가 언젠가 제게 말해줬듯이, 우리는 모두 자신에게 수수께끼입니다. 이 사실 역시 빨리 받아들이면 좋습니다. 그러면, 이처럼 지극히 자연스러운 불확실성의 상황에서도 내가 원하는 나의 다음 행보가 무엇인지를 정해보는 훈련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여러분은 지난 수년 동안 이런 훈련을 불가피하게 해왔습니다. 다만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정해진 답을 찾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고 뜻밖의 우여곡절에 주저앉기도 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이런 완벽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길 기원하며, 다시 한번 졸업을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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