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이들에게

신영채

언론정보학과 16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은 설레면서 동시에 한없이 불안하기도 한 말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시작을 통해 성장함을 알고 있지만, 그 성장에는 늘 성장통이 따른다는 것 또한 알고 있습니다. 대학 생활의 마무리이자 사회로의 첫걸음인 졸업을 앞두신 선배들 역시 양가적인 가슴 떨림을 겪고 계시리라 감히 짐작합니다. 처음으로 친한 선배의 졸업식을 찾았던 때가 기억이 납니다. 학사모를 쓰고 대학생활을 수놓았던 수많은 사람과 사진을 찍는 모습에서 어딘지 어색하면서도 시원섭섭한 미소가 비쳤습니다. 서울대에서의 순간순간을 떠올릴 때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지어지는 예쁘고 기분 좋은 기억도 있을 테지만, 떠올리기도 싫을 만큼 힘겹고 민망한 기억도 있을 것입니다. 이 모든 기억을 가슴에 잠시 묻어 두고 다시 일어섬이 홀가분하면서 못내 아쉽기도 하겠지요.

새내기 시절에 한 선배가 저에게 농담 삼아 “관악에는 사계절이 있다. 비 안 오는 여름, 비 오는 여름, 눈 안 오는 겨울, 눈 오는 겨울”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막상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제법 맞는 말이더군요. 관악의 여름은 유난히 뜨겁고 또 겨울은 유난히 차가웠습니다. 갑작스레 내리는 비에 온몸이 젖기도 했고, 포근히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괜한 감상에 잠기기도 했습니다.

이제 이 대학을 떠날 준비를 하는 선배들 역시 숨 막히도록 뜨겁고 몸이 떨리도록 차가운 시간을 보내셨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새내기 시절 생각보다 넓은 학교에서 헤매다 수업에 늦었을 때의 당혹감, PC방에서 밤을 새워가며 대기했지만 수강신청이 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때의 막막함, 의지했던 동기와 사이가 틀어지고 마주칠 때마다 흐르던 어색함, 열심히 공부했지만 원치 않는 성적을 받았을 때의 우울, 간절히 바라고 추구했던 목표가 눈앞에서 좌절되었던 순간 아려온 가슴, 타인의 기대와 스스로의 기대를 충족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짓눌려 내려앉은 어깨, 부조리를 목도하든 맞서 저항하든 어쩔 수 없이 찾아오던 무력감. 이 모든 기억은 나를 비틀거리고 무너지게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무더운 여름을 식혀주는 단비 같은, 또 싸늘한 겨울을 덮어주는 함박눈 같은 시간도 있을 것입니다. 학생증을 처음으로 발급받고 괜히 들뜨던 가슴, 동기들과 장터에서 거나하게 술을 마시던 때의 즐거운 웃음, 공강 시간에 관정 멀티미디어실에 누워 보았던 영화, 느티나무에서 리얼딸기라떼를 사 마시며 한가로이 자하연 앞에 앉아 있을 때 불어오던 바람, 홀로 듣던 강의에서 옆자리 사람에게 수줍게 건넨 인사, 시험공부를 마치고 계단을 내려올 때 코에 들어오던 새벽의 내음, 힘겨워 눈물짓는 내 어깨를 안아주며 토닥이던 친구의 손, 마침내 목표를 이루어냈을 때의 짜릿한 뿌듯함. 이 모든 기억은 무너진 나를 품어주고 다시 일으켜 세워주었지요.

선배들의 삶을 살아가지 않는 제가 앞으로는 대학생활 때와는 달리 좋은 일만 생길 것이라는 무책임한 격려를 보낼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세상에 당당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모든 이들에게 훌륭하고 좋은 사람이 되지 않아도 좋습니다. 항상 행복하고 아름답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저 앞으로 어떤 계절을 겪든지, 가끔은 서울대 곳곳에 물든 시간을 기억해주세요. 너무 행복해서, 혹은 너무 아파서 남몰래 눈물 흘렸거나 남들에게 안겨 펑펑 울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다독여주세요. 많은 일들을 겪어내고 울고 웃었던 내가 이제는 학사모를 쓰고 많은 이들의 축하를 받고 있음을 알아주세요. 약하고 또 강한 나 자신을, 앞으로도 많은 계절을 겪어낼 스스로를 믿고 존경해주세요.

졸업생 선배들, 졸업 축하합니다. 그리고 고생 많으셨습니다. 존경하는 선배들의 새로운 시작과 앞으로 펼쳐질 모든 계절을 응원합니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