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어중문학과 류종목 교수

류종목 교수

중어중문학과

매주 수요일, 류종목 교수(중어중문학과)의 발걸음은 소동파의 자취를 향한다. 류 교수가 소식시독회인 ‘소식시사’(蘇軾詩社)를 이끈 지 어느덧 20년이 됐다. 소식은 소동파의 본명이며, 동파는 그의 호다. 소동파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한평생 연구해 온 ‘소동파 전문가’인 류 교수에게서 교수 생활을 마무리하는 감회를 들을 수 있었다.

Q. 25년간의 서울대 교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있다. 정년퇴임을 앞둔 소감은?

A. 마라톤으로 치면 완주한 셈이니 축하할 일이라 생각한다. 교수 생활 초창기에 목에 무리가 가서 끝까지 갈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정년까지 왔기에 완주했다는 만족감이 있다.

Q. 중어중문학자의 길을 선택한 계기는 무엇인가?

A. 어릴 때부터 한자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 교과서에 한자어가 많았는데 부록의 단어를 다 알 만큼 한자를 읽는 게 재밌었다. 고등학교 때도 직접 한문 문장을 짓는 등 한문 공부를 계속했고 중어중문학과에 진학했다. 대학 졸업 후엔 직장 생활을 관두고 과감히 대학원에 진학해 중어중문학자의 길을 택했다. 이것이 평생에 한 일 중 제일 잘한 일이라 생각한다.

Q. 전공 분야인 시가(詩歌) 중 동파 소식(蘇軾)에 관련된 활동이 유독 많은데, 소식 연구를 집중적으로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A. 소동파는 우리나라 문단에 미친 영향이 크지만, 그의 시는 아직 우리말로 번역돼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를 완역하겠다는 생각으로 20년 전에 소동파 연구를 시작했다. 1998년부터 ‘소식시사’라는 소식시독회를 꾸려 지금까지 20년 넘게 운영 중이다. 중문과 대학원생을 중심으로 매주 모여 시를 읽고 함께 연구한 결과, 총 50권 중 30권을 번역해냈다. 남은 20권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12~13년을 더 연구해야 할 것이다.

Q. 세계 최초의 소동파 문학 기행인 『소동파 문학의 현장 속으로』를 발간했다. 실제로 중국 문학 기행을 자주 하는 것으로 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소는 어디인가?

A. 안휘성 영주(부양시)는 소동파가 6개월간 살았던 곳이며 그의 스승 구양수도 이곳에서 2년간 태수로 지내고 은퇴 후에 계속 살았다. 이곳으로 답사를 하러 갔더니 스승인 구양수보다 소동파가 훨씬 더 추앙받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실제로 영주 서호의 동파공원이나 ‘소제’라는 이름의 제방 등 영주엔 그의 이름을 딴 곳이 많았는데, 소동파가 이렇게 높게 평가받는다는 점이 감명 깊었다.

Q. 소식의 진면모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A. 단순히 문학적 재능이 뛰어난 것뿐만이 아니라 인간적이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많은 점이 좋다. 소동파는 주량이 약했지만, 술을 늘 담가놓고 손님이 오면 베풀고, 약초를 가지고 다니며 아픈 이들에게 약을 지어줬다고 한다. 또한, 황주로 유배 갔을 당시 조리법을 몰라 돼지고기를 못 먹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 조리법을 개발했고 이것이 지금의 ‘동파육’의 기원이다.

류 교수는 마지막으로 후학들에게 “각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말을 남겼다. 사회적 명성이나 보수 등에 얽매이지 말고 자신이 즐겁게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길 바란다는 것이다. 퇴임 이후에도 연구를 이어갈 것이라는 그의 바람대로 머지않은 시일에 그의 소동파 번역집 완간 소식이 들려오길 기대한다.

사진: 대학신문 snupress@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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