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과 고통을 나누는,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회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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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훈 기자
  • 승인 2018.08.27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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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학과 조흥식 교수

조흥식 교수

사회복지학과

수화기 너머로 조흥식 교수(사회복지학과)의 이야기를 들었다. 퇴임 이후의 계획을 묻자 그는 “복지국가를 위한 연구를 이어나가려 한다”며 사회 발전에 대한 식지 않은 열정을 내비쳤다. 『대학신문』은 그와의 인터뷰에서 더 나은 공동체를 꿈꾸며 헌신한 조 교수의 기억을 더듬었다.

Q. 민주화 열기가 뜨거운 시기에 학교를 다녔다. 대학 시절을 어떻게 보냈나?

A. 1, 2학년 때는 데모하는 서클에 들어가 매일 도망을 다니기 바빴다. 한국문화연구회라는 이름의 서클이었는데, 경찰서에 잡혀가서 아버지가 데려오시기도 했다. 이후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혀 학생운동을 그만두고 학문에 집중했다. 그 무렵 공부하는 재미도 느낄 수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서클 동료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컸다. 연구회 멤버들이 민청학련 사건으로 수감됐는데 나는 활동을 그만뒀으니 일종의 배반을 한 셈이었다. 그 이후론 내 신념과 생각을 절대 저버리지 않겠다는 다짐을 품고 산다.

Q. 교수 재직 중 가장 인상 깊은 활동은?

A. ‘민주화의 길 추진위원장’을 맡아 민주화의 길을 만들었다.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서울대에 민주 열사분들이 많이 계신다. 그런데 그분들을 모시는 비문들이 캠퍼스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어 이들을 한 데 모아 민주화의 길을 세우게 됐다. 정문 앞에 4.19 탑이 있고, 그 탑 언저리 조그마한 백색 표지판부터 길이 시작된다.

Q. 학문의 길을 걷는 동시에 사회 개혁을 위해 힘쓰셨다. 어떤 일을 하셨나?

A. ̒서울대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민교협)에서 총무와 회장으로 활동했다. 민교협은 사회 진보를 위한 교수 모임인데, 여기서 활동하면서 학내 민주화는 물론 사회 전반의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여러 사안에 성명서도 내고 학생과 연대도 했다. 90년대에 참여연대 설립에 참여했다. 참여연대의 사회복지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맡아 국민 최저생활보장을 적극적으로 주장했다. 국민 최저생활보장 운동을 1994년부터 3년 동안 했는데, 이 노력이 IMF 이후 2000년도에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제정으로 빛을 봤다. 물론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아직 질적으로 미흡한 점이 많긴 하다. 그리고 올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으로 위촉돼 현재 문재인 정부가 주장하는 포용복지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사회에 이바지하겠다는 목적을 갖고 학문을 닦아온 조흥식 교수는 인터뷰 동안 지성인의 “사회적 책무성”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국립대학의 학생으로서 받은 것을 되돌려주어야 한다”며 “공동체에 잘못된 것이 있다면 그것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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