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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을 한 폭의 그림에 담아 표현하다동양화과 김병종 교수
  • 김창연 기자
  • 승인 2018.08.27 16:35
  • 수정 2018.08.27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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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종 교수

동양화과

지난 5월 서울대 미술관 MoA(151동)에선 김병종 교수(동양화과)의 정년퇴임 기념전 ‘바보예수에서 생명의 노래까지’가 열렸다. 그는 “학내에서 전시회를 열 수 있어 큰 영광이었다”며 동료 교수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퇴임 소감을 묻자 김병종 교수는 “순식간에 다 지나갔다”며 시원 섭섭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Q. 서울대에서 40년이 넘는 시간을 보냈다.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A. 1989년 11월 23일, 날짜까지 기억에 남는다. 서울대 미대 역사서를 맨 처음 집필할 때다. 당시 마감에 쫓겨 학교 앞 고시원에서 밤새 작업을 하던 중 잠시 눈을 붙였는데 연탄가스에 중독돼 생사를 넘나들었다. 그 일 때문에 험한 수술도 여러 번 했고, 서울대병원에 오래 입원했다. 수술 이후 생명의 아름다움, 작고 사소한 것에 대한 아름다움에 눈을 떠 ‘생명의 노래’를 그렸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Q. 동양화가로서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A. 연작 ‘바보예수’가 기억에 남는다. ‘바보예수’는 80년대 사회상을 예술과 오버랩시킨 작품인데, 종교를 주제로 한 작품이라 국립미술관 전시는 거부당했다. 최루탄과 돌멩이가 난무하는 학생운동이 가열화된 80년대의 캠퍼스에서 2,000년 전 예수가 다시 온다면 어떤 표정, 어떤 모습, 어떤 대답을 했을까 상상해 봤는데, 바보스럽게 사랑과 희생, 용서의 메시지를 남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당시 ‘바보예수’를 제목으로 개인전을 했을 때 신성모독이라는 비난도 많이 받았고, 동양화가로서 서구의 아이콘인 예수를 그렸다는 점에서도 주위의 시선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바보예수’는 그 시기를 잘 드러내는, 그 시기에 남은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Q. 화가임에도 신춘문예에 당선되는 등, 문학 작품에도 조예가 깊어 보인다. 문학과 미술을 어떻게 연결했는가?

A. 동양화에는 시서화 일치, 문인화 정신을 갖추고자 하는 학계의 화풍이 있다. 이 정신의 맥을 이어보고 싶었다. 또한 학생 시절 당시 문리대 친구들과 ‘우리 시대의 문학’이라는 문예 동인지를 만들었던 적이 있다. 그 책을 중심으로 활동하기도 하고, 희곡 분야에 뛰어들어 동학농민운동을 소재로 한 ‘달맞이꽃’이라는 작품을 공연한 적도 있다. 이런 경험이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다.

Q. 최근 본인의 이름을 딴 남원김병종미술관이 개관했다. 이 미술관이 어떤 공간으로 남길 바라는가?

A. 서울대 미술관장을 했던 경험을 살려 전시문화와 교육 방면에 도움을 주고 싶다. 미술관이라고 해서 전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 프로그램도 해야 한다고 본다. 과거에 다문화 가정 어린이들이 직접 손가락에 물감을 묻혀 자기 표현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손가락 그림학교’라는 프로그램을 경기도의 한 문화재단과 함께 진행한 적이 있다. 남원에도 다문화 가정 어린이들이 많은데, 이와 비슷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예술적으로 소외당한 사람들을 위해 미술관을 중심으로 미술교육에 앞장서고 싶다.

인터뷰를 마치며 김병종 교수는 미대 학생들에게 “그림 그리는 작업에만 몰입하기보단 인문학, 사회학과 같은 주변 학문에 대해서도 관심을 꾸준히 가지기를 바란다”고 당부의 말을 전했다.

사진: 황보진경 기자 hbjk0305@snu.kr

김창연 기자  cykim0915@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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