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대한 1심 판결이 많은 논란을 낳고 있다. 지난 14일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는 형법상 피감독자 간음, 성폭력처벌특별법상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안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현행법 체계 하에서 유죄라고 판단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두 사람 사이의 간음 등의 상황에서 “피고인이 어떤 위력을 행사했다거나 하는 정황은 없으며,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해자 의사에 반해 성적 자유가 침해되기에 이르는 증명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판결 내용과 이를 둘러싼 논란은 크게 두 가지의 쟁점을 남겼다.

우선 사법 개선책의 방향에 대한 사회적인 논의가 활발히 진행돼야 한다.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규범과 현행법 사이에 괴리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당사자 간 동의 없는 성관계를 범죄로 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번 판결에서 재판부는 이것이 결국 “입법정책적 문제”라고 밝히며, “이른바 ̒No Means No rule̓이나 ̒Yes Means Yes rule̓이 입법화되지 않은 현행 우리 성폭력 범죄 처벌 법제 하에서는 피고인의 행위를 처벌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현재 성범죄 관련 현행법 중 형법 제297조와 제303조 등의 관련 법률은 당사자 간 동의 여부를 유무죄의 판단 기준으로 삼을 법적 근거를 두지 않고 있다. 이처럼 아직까지는 성적 동의를 어떻게 정의하고 실행할 것인지에 대해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폭넓게 동의할 만한 규범이 형성됐다고 보기 힘든 상황이다.

현행법의 해석에도 문제가 있다. 이번 판결은 안 전 지사가 김 씨의 자유의사를 제압할 정도의 위력이 ‘존재’한다고는 인정하면서, 네 차례 간음 과정에서 이 위력을 ‘행사’한 사정은 보이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이러한 판단은 대법원이 1998년과 2008년의 판결에서 위력의 존재와 행사에 대해 전향적이고 유연한 입장을 보인 것과, 올해 4월 보다 적극적으로 성범죄 관련 소송에서 ‘성인지(性認知) 감수성’을 요청한 것에 배치된다. 특히 김씨가 얼마나 저항했으며 과연 피해자다운 태도를 일관되게 보여줬는지의 문제에 집중한 부분이 그러하다. 물론 사법적 판단은 증거에 근거해야 하며, 혐의를 확정하기 애매한 상황에서 무죄추정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그러나 이런 큰 원칙이 거부 의사를 표시하기 힘든 상황과 관계성에 대한 충분한 고려를 결여함으로써 범죄의 입증 책임을 고스란히 피해자에게 전가한다면, 결국 권력형 성범죄의 피해자들을 침묵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특정 개인이 처벌되는지 여부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이번 사건을 우리 사회의 권력형 성범죄 관련 법체계에 대한 사회적 토론의 계기로 삼는 것이다. 차별철폐를 위한 담론과 운동이 여러 갈래로 진행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입법부와 사법부는 사회구성원들의 인식 변화를 민감하게 읽고 반영할 책임이 있다. 법리상의 변화를 추동하는 것은 결국 사회적 논의를 통한 새로운 규범의 형성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사회 전반에서 이런 논의가 이뤄질 때 우리 사회가 비로소 성숙해졌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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