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워진 곳을 비추는 '그 여름'의 태양
가리워진 곳을 비추는 '그 여름'의 태양
  • 이승연 기자
  • 승인 2018.09.02 19: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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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최은영을 만나다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 외면당하고 핍박당하는 이들을 가만히 응시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한 편의 이야기로 풀어내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 행동일까. 사회에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주인공이 말하는 내면의 목소리를 듣다 보면 우리는 그동안 당연시했던 사회의 잔상을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 소설가 최은영은 이처럼 독자들이 등장인물의 내면에 집중하면서도 동시에 사회의 부조리함에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소외당하는 등장인물을 바라보며

아줌마는 슬프게 웃어 보였다. 무척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녀는 그런 표정을 짓곤 했다. … 시간이 지날수록 그 표정은 나를 아프게 했는데, 아줌마의 행복이라는 것이 슬픔과 너무 가까이 붙어 있는 것처럼 보여서였다.

- 「씬짜오, 씬짜오」 중

최 작가의 시선에 사로잡힌 이들은 평범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타인에게 배척당하고 사회로부터 소외돼 살아간다. 작가의 시선에 이런 사람들이 들어오게 된 이유는 그가 지닌 가치관이다. 그는 “한국 사회는 잔인한 사회”라며 “자기 안의 약자성이 굉장히 폭력적으로 받아들여진다”고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다. 비록 동일하지는 않지만 개개인은 자신만의 약자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는 약자성이 쉽게 배척당하고 공격받는다. 최 작가는 “우리들끼리도 서로의 약자성을 가지고 싸우는 모습이 슬프게 느껴진다”며 “이런 사회의 모습과 그 안에서 살면서 겪은 저의 상처를 글로 쓰고자 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소설 속 등장인물을 그려내며 자신의 정체성을 통과한 글을 창작하고자 했다.

최 작가가 특히 주목한 것은 소외당한 여성의 이야기다. 그는 “아무래도 제가 여자라서 여성 화자의 이야기를 더 많이 쓰게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같은 여자긴 하지만 유럽, 중국, 혹은 중남미에서 자란 여자들과 제가 많이 다르다는 걸 느꼈다”며 그는 “외국인 친구들과의 대화와 경험을 통해 한국 여자로 자라오면서 우리가 억압당하고 강요받았던 부분을 인지하게 됐다”고 밝혔다. 최 작가는 이런 경험을 소설로 담아보고 싶어 지금과 같은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이야기했다.

약자의 입장에 서면 보이는 것들

수이와 함께 있을 때 이경은 자신이 다른 몸으로 태어난 것 같았다. 눈으로 볼 수 있는 풍경과 코로 들이마시는 숨과 피부에 닿는 공기의 온도까지도 모두 다르게 느껴졌다. 모든 감각기관이 한 꺼풀 벗겨진 느낌이었다. 수이를 만나기 전의 삶이라는 것이 가난하게만 느껴졌다.

- 「그 여름」 중

최 작가의 작품 「그 여름」은 개개인의 이유로 사회에서 배척당한 인물의 모습이 잘 드러나는 소설이다. 그는 소설 속 화자를 묘사하며 다양한 이유로 상처를 지닌 한국 여성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풀어냈다. 작품의 화자인 수이와 이경은 여성이면서 동시에 서로를 사랑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사회에서 소외당한다. 최은영 작가는 “한 친구에게 언니는 어떻게 친구 중에 동성애자가 그렇게 많냐는 질문을 받았다”며 “그 질문이 재밌으면서도 슬프게 느껴졌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사회 속에는 우리가 상상한 것보다 많은 수의 동성애자들과 퀴어가 있을 것이며, 우리는 그들과 함께 살고 있다. 그러나 최 작가는 “하지만 우리는 그 사람들이 마치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고 말했다. 그는 “가령 대놓고 동성애자에 대해 비하 발언을 하는 사람은 드물”지만, “‘내가 아는 사람만은 동성애자가 아니었으면 좋겠어’라거나 ‘나 자신만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말을 듣는 사람도 동성애자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최은영 작가는 “이런 경험을 통해 사람들이 더더욱 상처받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가능성도 사라진다고 생각한다”며 “마치 그들이 없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사회가 싫어 자연스럽게 그들의 이야기를 쓰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으로 최은영 작가는 고등학생 시절 수이의 모습을 통해 여성 스포츠 선수들이 지닌 비애에 관해 이야기했다. 작중에서 수이는 고등학교 여자 축구부 단원이었다. 여자 축구부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수이는 남자 중학교 선수들과 연습 시합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남자 선수들이 경기중에 여자 선수들의 몸을 만”졌기 때문에 수이는 이럴 때면 침울해했다. 다른 선수들은 이런 일을 겪은 뒤 욕을 하고 그저 털어버렸기 때문에 수이는 더욱 혼자 고통받을 수밖에 없었다. 더 심각한 것은 수이로부터 해당 사실을 들은 코치의 반응이었다. 작품에서 코치는 “그런 소리 할 시간에 운동이나 열심히 하라고, 남자애들은 원래 다 그런 거고, 짓궂은 장난에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건 유치한 일”이라며 오히려 수이를 나무랐다. 최은영 작가는 이런 세태에 대한 생각을 수이의 목소리를 통해 작품 속에 녹여냈다. “비열한 말이라고 생각해. 용인해주는 거야. 그런 말로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괴롭힐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거야. 남자애들은 원래 그렇다니.”

또한 최 작가는 사람들이 지닌 나와 다름에 대한 거부감을 이경의 모습을 통해 표현했다. 작품 속에서 이경의 눈동자와 머리카락 색은 모두 갈색이다. 이경의 친구들은 어렸을 때 이경을 ‘개눈’이라고 놀렸으며, 학교에서는 갈색 머리가 교칙 위반이라는 이유로 이경에게 검은 염색약으로 머리를 염색하게 시켰다. 최은영 작가는 “우리 사회에는 소수자에 대한 이상한 혐오 정서가 있었다”며 “그런 정서가 예전부터 전해져 오면서 점점 더 은밀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이어져 내려왔다”고 말했다.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그들을 억압하거나 그들의 특징을 말살시키는 사회의 모습을 최 작가는 이경의 모습을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사회적 맥락에서 비롯된 내면의 깊이란

외로움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겼다. 사람에게 연연하기 시작하면 마음이 상하고 망가지고 비뚤어진다고 생각했으니까. 구질구질하고 비뚤어진 인간이 되느니 차라리 초연하고 외로운 인간이 되는 편을 선택하고 싶었다.

- 「모래로 지은 집」 중

인물의 내면묘사를 따라가며 작품을 이해하다 보면 우리는 작중에 제시된 인물의 개인적 상황뿐 아니라 사회적인 배경까지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최은영 작가는 “우리가 겪는 심리적인 문제나 상처가 모두 개인적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제가 봤을 때는 사회와 긴밀하게 엮여있다”고 말했다. 개인은 어느 순간에라도 결국 사회에 속한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는 개인에 대한 문제를 논할 때 사회를 배제할 수 없다. 그는 “저는 언제나 사람의 마음에 관심이 많고 이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소설로 담아내고 싶은데 그런 걸 쓰려면 당연히 사회적인 맥락을 쓸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이런 이유로 그의 작품에는 사회적인 문제와 무거운 주제를 다룬 소설들이 많다. 예컨대 그의 소설 「601, 602」에는 딸이라는 이유로 부모님과 오빠에게 학대당하는 효진이와 아들을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시어머니에게 구박 받는 주영이 엄마, 이 모든 상황을 바라보는 서술자 주영이가 등장한다. 타인에 의해 상처받고 고통 받는 인물의 내면을 마치 나의 이야기인 것처럼 서술하며 작가는 가정폭력과 남아선호사상이 퍼져 있는 사회 구조를 비판했다.

소설 창작 과정에서 최은영 작가가 가장 중시하는 것은 인물의 내면 서술이다. 그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인물을 이용하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 한다”며 동시에 “한 명의 인물을 다루더라도 그 인물의 내면을 세세하게 다루고자 했다”고 이야기했다. 흔히 소설에서 인물이 평면적인 경우에는 일반적이지 못하며 단조롭다는 이유로 비판받는다. 물론 최은영 작가도 인물에게 다면적인 부분이 있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평면적인 사람이라도 그 안에서 들어가는 깊이라는 게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측면을 잘 그려내고 싶다”고 밝혔다.

최은영 작가는 “소설을 쓴다는 건 기본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이라며 자신이 넓은 문학 영역 중에서도 소설이라는 분야에 매진한 이유를 밝혔다. 그는 “소설가는 세상에 대한 화가 많으며 표현하고 싶은 것들이 많은 사람”이라며 자신에게 소설이라는 분야가 주는 의미에 관해 이야기했다. 최 작가는 소설가의 삶은 일상과 창작이 분리되지 않는다며 “소설을 쓴다는 것은 삶 자체인 것 같다”고 말했다. 소설을 쓰지 않는 순간에도 쓰고 싶다는 욕구는 사라지지 않으며 오히려 자신이 소설을 쓰지 않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는 것이다. 그는 “삶과 소설 사이에서 하나만 고르라는 선택이 어렵다”며 “그럼에도 인물의 내면 묘사를 통해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전달할 수 있는 소설이라는 분야가 지닌 매력 때문에 소설이 쓰고 싶었다”고 이야기했다.

최은영 작가는 “독서를 통해 외부로부터 보호받고 자극과 현실로부터 멀리 갈 수 있었던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느꼈던 경험과 더불어 독자들이 책을 읽으면서 “누가 하는 말을 듣는 게 아니고 내 이야기를 누군가가 들어주는 것 같은 느낌을 경험했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끝으로 최 작가는 독자들이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좋은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전했다.

최은영 작가는…

■2013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중편소설 「쇼코의 미소」가 당선돼 등단

■2014년과 2016년에 앞의 작품으로 각각 제5회 젊은작가상과 제8회 허균문학작가상 수상

■2017년, 단편소설 「그 여름」으로 제8회 젊은작가상 수상

■첫 소설집 『쇼코의 미소』가 출간 이후 10만 부 이상 판매됨

■지난 6월 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 출판

사진: 신하정 기자 hshin15@snu.kr

삽화: 손지윤 기자 unoni0310@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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