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숭교 강사

국사학과

한 학기가 끝나고 성적을 매기고 나면 마지막으로 성가신 일 하나를 처리해야 한다. 성적에 대해 어필을 받는 일이다. 여기에도 여러 유형이 있다. 먼저 추궁형. “제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요? 이유를 알려주세요.” 다음으로 읍소형. “어떻게 한 등급만이라도 올려주실 수 없을까요?” 요즘 등장한 새 유형. “제발 성적을 내려주세요. 재수강할 수 있도록.” 이 정도면 안 들어줄 도리가 없다. 요즘 학생들 참 공부 열심히 한다.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

학부 시절 ‘면학 분위기’라는 말을 싫어했다. 마치 “학생 놈들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데모질이나 하고 있어”라는 호통을 듣는 것만 같았다. 그때 이 말은 ‘나랏일엔 관심을 끊고 학교 수업에만 충실하라’는 뜻이었다. 말로만 그치지 않았다. 1980년대 초 군사정권은 ‘면학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졸업정원제라는 제도도 그래서 나왔다. 정원의 30%를 추가한 인원을 입학시키는 제도였다. 추가된 30%의 인원은 졸업할 때까지 탈락돼야만 했다. 이 제도를 실시한 이유는 단 하나, 데모를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면학 분위기’란 그럴싸한 말 이면에 ‘30% 탈락’이라는 협박이 숨어 있었다. 그 말을 어찌 좋아할 수 있으랴. 솔직히 그 시절 강의를 열심히 듣지 않았다. ‘데모질’하기 바빠서 수업을 빼먹기 일쑤였다. 시국 때문에 그런 것이라 핑계를 댔지만 속으로 켕기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훗날 강의하는 입장이 되자 ‘면학 분위기 조성을 위한 학생지도종합계획’(1997년)이란 것이 나왔다. ‘학사관리 엄정화 방안’(1998년)이란 것도 발표됐다. 강의평가와 상대평가 등을 통해 학사관리를 엄격하게 해 강의의 질을 향상시키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학생들은 학점의 노예로 만들려 한다며 펄펄 뛰었다. 이 문제를 갖고 데모를 참 많이 했다.

강의를 하는 입장에서도 ‘엄정화 방안’은 불편한 것이었다. ‘면학 분위기’란 말에도 거부감이 들었다. 하지만 그 무렵 ‘엄정화 방안’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민주화도 됐고 하니 이제 서울대에도 ‘면학 분위기’가 필요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었다. 과거 ‘데모질’하느라 강의를 열심히 듣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다.

그러면 요즘은 어떠한가? 학생들이 수업을 빼먹는 일이 없어졌다.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과제물을 꼬박꼬박 제출한다. ‘면학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다. 학생들 스스로 면학 분위기를 조성했으니 얼마나 바람직한 일이랴. 충실한 강의와 성실한 수업 태도는 대학의 기본이다.

하지만 성적 관련 어필을 받으면서 다른 생각도 하게 된다. 성적을 한 등급 올리려 재수강하는 데 들어갈 공력을 다른 과목 수강하는 데 쏟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요즘 학생들 너무 성적에만 얽매여 있는 게 아닌가? 그 강의에서 무엇을 얻었는가보다 어떤 학점을 땄는가에만 신경을 쓰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든다.

듣자 하니 요즘 동아리에도 사람이 별로 모이지 않는다고 한다. 특히 학술동아리들은 더욱 그렇다고 들었다. 학생 매체들도 인력을 구하지 못해 문을 닫는 일이 많다고 한다. 이것도 그놈의 ‘면학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 교과 강의는 대학의 기본이지만 대학의 전부는 아니다. 강의실 바깥에서 더 중요한 교육이 이뤄질 수도 있다.

‘면학 분위기’는 대학에 꼭 필요하지만, 학생들을 가두는 감옥이 돼선 안 된다. 옛날에는 군사정권이 ‘면학 분위기’라는 감옥에 학생들을 가두려 했다면, 요즘은 학생들 스스로 ‘면학 분위기’라고 하는 감옥을 만들어 자신을 거기에 가두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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