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합의와 화해·치유재단의 미래를 살펴보다

지난 3일(월) 외교부 청사 앞, 쏟아지는 빗속에서 한 할머니가 우비를 입은 채 휠체어에 앉아 “화해·치유재단 즉각 해산”이라는 구호가 적힌 노란 팻말을 들고 시위에 나섰다. 아흔이 넘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며 또렷한 목소리로 일본의 사과와 화해‧치유재단의 해산을 촉구한 이 할머니의 이름은 김복동. 70여 년 전 일본군의 성노예 생활을 강요받은 ‘위안부’* 피해자다.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기억연대)는 이 시위를 시작으로 9월 한 달 간 2차 릴레이 1인 시위를 이어간다.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자 명예 회복을 표방하는 화해‧치유재단의 해산을 요구하는 아이러니한 시위를 펼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뼈를 주고 취한 살

화해‧치유재단의 설립 근거는 박근혜 정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5년 11월 2일 서울에서 개최된 한‧일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의를 가속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따라 같은 해 12월 28일 한‧일 외교장관회담이 열렸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해결 방안에 대해 합의(이하 위안부 합의)가 이뤄졌다. 일본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하고 기금을 출연하면 한국 정부가 더는 이 사안을 문제 삼지 않겠다는 것이 회담의 골자였다. 이 합의에 따라 일본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해 10억 엔(당시 환율 기준 약 109억 원)을 출연하기로 했고, 한국에서는 이듬해 5월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재단법인 조직을 위한 논의가 본격화됐다.

회담 직후 결과를 들은 국민의 대다수는 격분했다. 피해 당사자들에게는 협정의 내용을 알리지도 않은 채 졸속으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합의했다는 사실이 가장 큰 문제였다. 합의의 내용 또한 문제가 됐다. 일본이 출연한 10억 엔은 배상금이 아닌 기금 명목에 가까웠으며, 그 대가로 일본은 주한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철거를 비롯해 국민 정서에 반하는 수많은 요구들을 해왔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대부분 정부에 지속적으로 항의하며 합의 내용에 동의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2016년 7월 25일 열린 위안부 피해자 기자회견에서 김복동 할머니는 “10억 엔이 아니라 100억 엔을 준다 해도 필요 없다”며 한국 정부를 질타했고, 이옥선 할머니 역시 “정부가 돈을 받고 피해자들을 팔아먹은 셈”이라며 비통한 심정을 드러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출연한 돈으로 세워진 화해‧치유재단은 설립 추진 당시부터 국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일본 정부의 출연금으로 재단이 세워지는 것에 반대해 국내에서는 민간인 모금으로 정의기억재단이 설립됐으며, 이외에도 국내의 여러 시민단체들이 화해‧치유재단 설립에 반대하고 나섰다.

흐지부지 끝난 졸속 피해자 지원

본디 화해‧치유재단에서는 개별 피해자 지원 사업과 전체 피해자 지원 사업을 별도로 추진하는 이원적 체제를 택하고자 했다. 개별 피해자 지원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현금’을 지급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는데, 2015년 12월 28일 기준으로 생존자에게는 인당 1억 원을, 사망자에게는 인당 2천만 원을 배정했다. 생존자에 해당돼 기금을 수령한 사람은 47명 중 34명으로, 화해‧치유재단 관계자 A씨는 이를 “피해자들 중 다수가 재단의 취지에 공감해준 것”으로 해석했다. 돈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재단이 피해자들을 협박했다는 보도가 나간 적도 있으나, 여성가족부의 2017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는 사실이 아니며 모든 돈은 당사자의 명시적 동의하에 지급된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돈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정부 및 재단 관계자가 합의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 없이 할머니들이 돈을 받도록 적극적으로 권유하고 설득한 정황이 드러났으며, 노병 및 문맹 등의 이유로 대리인이 지급신청서를 작성한 경우 당사자의 뜻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을 여지가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단순 현금 지급에 그치긴 했지만 개별 피해자 지원 사업이 비교적 활발히 진행된 반면 전체 피해자 지원 사업은 진척이 아예 없다시피 했다. 지금도 화해‧치유재단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모든 피해자 대상 사업’ 코너에는 아직 준비 중이라는 말만 있을 뿐 별다른 실적을 찾아볼 수 없다. 2017년 말부터는 그나마 진행되고 있던 개별 피해자 대상 출연금 지급 사업도 중단됐다. 그해 7월 이사장이 자진사퇴한 것에 이어 여성가족부에서 화해‧치유재단을 점검한 보고서가 발표되기 하루 전, 당연직 세 명을 제외한 모든 이사진이 사퇴해버렸기 때문이다. 이사회의 정족수가 여섯 명이기 때문에, 현재 화해‧치유재단은 어떤 결정도 내릴 수 없는 상태다. 재단의 홈페이지마저 1년이 넘도록 사실상 방치된 상태로, 보도자료나 공지사항 등 기본적인 내용마저 전혀 업데이트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재단 측은 자신들을 향한 비난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A씨는 “이사진이 대부분 공석인 상태에서 우리가 뭔가를 결정할 권한은 없다”며 자신들은 “별도의 지시가 있기 전까지 대기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무용지물인 재단을 유지하는 것은 낭비가 아니냐는 지적은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 재단의 기능이 사실상 사라진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매달 천만 원 대의 인건비 지출이 있었던 사실이 지난 7월 국회 업무보고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정현백 여성가족부장관은 운영비 절감을 위해 우선 사무실 규모를 3분의 1로 줄였으며, 재단의 거취 문제는 앞으로 논의하며 결정할 것이라는 답변을 내놨다.

외교적 타협이 아닌 보편적 인권의 길로

화해와 치유의 가치를 내걸었지만 출범한 이후 줄곧 여론의 뭇매를 맞고, 올해 들어 기능이 사실상 마비됐다는 것이 알려지며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화해‧치유재단. 여론은 재단의 존치보다는 해체 쪽으로 기우는 모양새다. 이낙연 국무총리 역시 지난달 21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화해‧치유재단을 연말까지 해산하는 것을 목표로 잡고 있다”고 말했다. 정의기억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10억 엔을 일본에 반환하고 위안부 합의 자체를 폐기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정의기억연대의 류지형 활동가는 “피해자가 치유될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용서의 전제 조건인데, 지금의 합의는 피해자 중심의 원칙에서 벗어나 있다”며 화해‧치유재단의 즉각적 해산을 통해 위안부 합의를 파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과연 ‘불가역적’이라고 선언했던 약속을 마음대로 취소하는 게 가능할까?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우선 위안부 합의는 국회의 정식 동의 절차를 받지 않은 합의기 때문에 일반적 조약이나 협정과는 달리 법적 구속력을 지니지 않는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합의를 원점으로 되돌리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위안부 합의 검토 TF에서 활동했던 외교 전문가 B씨는 위안부 합의의 파기가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많은 외교적 부담을 떠안아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는 이 점을 인지하고 위안부 합의를 파기하거나 재협상의 대상으로 삼지는 않겠다고 밝혔다.

과거 위안부 합의에 대한 처리만큼 앞으로 정부가 보일 행보도 중요하다. 8월 14일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행사에서 문 대통령은 ‘위안부’ 문제가 “양국 간의 외교적 해법으로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전 세계가 전체 여성들의 성폭력과 인권문제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굳은 각성과 교훈으로 삼을 때 비로소 해결될 문제”라고 말했다. 이처럼 ‘위안부’ 문제를 외교적 문제로 삼지 않고 보편적 인권 문제 차원에서 접근하며 종전의 합의를 사문화하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정책 방향인 것으로 보인다. 국고에서 10억 엔에 해당하는 돈을 충당하는 안이 지난 7월 국무회의에서 통과된 것도 이런 전략의 일환이다. 합의의 결과로 받은 10억 엔을 고스란히 남겨놓고, 피해자 복구 사업은 독자적인 방식으로 추진하는 것이다. B씨는 “외교는 기본적으로 타협이 전제된다”며 “잘못 맞춰졌던 초점을 이제야 올바르게 맞춘 것”이라고 정부의 정책 방향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어 그는 “국민적 감정으로 타협할 수 없는 문제를 외교의 대상으로 삼아문제가 불거졌는데, 이와 비슷한 실수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합의는 ‘위안부’ 문제를 피해 당사자의 입장이 아닌 협상 중재자의 입장에서 접근했기에 벌어진 외교 참사였다. 화해‧치유재단 역시 마음의 상처를 입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마음은 전혀 헤아리지 않은 채 물질적인 면에서만 접근했기에, 국민의 공분을 사고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위안부’ 문제가 단순히 한일 외교의 사안으로만 소비되지 않고 기본적 인권 유린의 문제로 공감되며 다뤄지는 것, 그것이 진정한 화해와 치유의 길 아닐까.

*위로하며 안정을 주는 사람이라는 뜻의 ‘위안부’는 당시 일제 군인들의 입장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기사에서는 역사적 용어임을 명시하고자 작은따옴표를 붙여 표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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