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전시 ‘류이치 사카모토: LIFE, LIFE’에 다녀오다

지난 1일(토) 명동 인근 전시관 피크닉에서 데뷔 40주년을 맞아 세계최초로 개최된 류이치 사카모토의 단독 전시회를 찾았다. 그동안 배우, 가수, 음악 감독 등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쳐온 그는 암 판정을 받은 후 사물의 소리를 수집하고 이를 음악으로 승화해냈다. 그는 단순히 듣기 좋은 음악을 만드는 것을 넘어 소리를 통해 풍부한 상황을 표현해내는데 탁월한 예술가로 평가받는다. 또한 그는 예술가임과 동시에 탈핵 운동, 자연보호 등에 앞장선 사회운동가였다.

지하 1층부터 루프탑까지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전시에서 관람객은 ‘소리’에만 집중하게 된다. 관람객은 가장 먼저 ‘세 개의 흐름이 교차하는 곳’(유성준, 2018)을 마주할 수 있다. 세로로 긴 두 개의 스크린이 가로로 긴 스크린 양옆에 위치한 작품이다. 가운데 화면에서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이 삽입된 영화 화면을 재구성한 영상이 재생되는 동안, 양옆 화면에선 곡을 연주하는 사카모토의 모습과 그 음악을 듣는 관객의 모습이 각각 나타난다. 관람객들은 화면 앞에 앉아 음악과 영상의 조화에 매료된다. 작가는 “원곡자 류이치 사카모토가 음악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정서, 그 OST가 사용된 영화에 흐르는 정서, 그 음악을 듣는 사람의 표정에 드러나는 정서, 이 세 가지가 어떻게 교차하고 상호작용하는지를 주목하고 싶었다”며 “세로로 긴 두 스크린은 단순한 영상이 아니라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사운드처럼 연출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관람객들은 이 작품을 관람하며 앞으로 사카모토만의 소리와 감정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준비를 할 수 있다.

전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소리를 시각화하기 위해 다채로운 방법을 택했다. 그중에서도 ‘라이프-플루이드, 인비지블, 인오디블’(2007) 앞에서 관람객들은 공중에 매달린 3개의 수조 아래에 누워 피어나는 인공 안개와 영상을 감상하며 스스로 작품의 일부가 될 수 있다. 또한 1층엔 네모난 수조로 보이는 ‘워터 스테이트 1’(2013)이 자리 잡고 있다. 물의 순환 현상에 관심을 갖고 있던 사카모토가 미디어 아티스트 타카타니 시로와 함께 물방울이 의도된 시점에 수조로 낙하하도록 만든 장치다. 물방울이 떨어지는 순간 미리 입력된 소리가 함께 울려 퍼진다. 작품을 처음 접하는 관람객들은 당황하기도 하지만 이내 물방울의 세밀한 변화와 몽환적으로 프로그래밍 된 소리에 빠져든다. 이 작품엔 자연의 소리를 음악으로 승화하는 데 열중했던 사카모토의 예술관이 가장 압축적으로 표현돼 있다. 사카모토는 이에 대해 “우주에서 창문을 열고 네모난 창틀을 통해 지구를 바라보는 것 같은 특별한 느낌이다”라고 설명했다.

'워터 스테이트 1'에선 물방울이 떨어지는 동시에 정교하게 프로그래밍된 소리가 재생된다.

전시장 내의 작품엔 소리를 독특하게 표현해내는 사카모토의 감각이 녹아들었다. 그는 소리의 다양한 표현을 위해 다른 분야의 예술가들과도 교류했다. ‘비욘드 뮤직’(2005)은 알바 노토와 협업을 통해 사인파와 피아노의 음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대표적인 작품이다. 가로로 긴 화면의 한쪽 끝에선 사인파의 파동이 시작되고 반대쪽 끝에선 사카모토가 연주하는 피아노의 음이 나타난다. 두 음은 서로에게 변화를 주는 동시에 하나가 된다. 한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과 함께 만든 ‘올 스타 비디오’(1984)는 사람들의 일상을 촬영한 화면과 함께 재생되는 인위적인 소리의 반복을 통해 관람객들이 겪던 일상에 이질감을 불러일으킨다. 이처럼 실험적인 방식으로 전시된 작품들을 통해 관람객들은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는 류이치 사카모토에게서 진정한 예술가의 모습을 발견한다.

한편 이번 전시에선 사카모토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2017)를 재구성한 영상도 관람할 수 있다. 사카모토는 예술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한편, 탈핵 운동, 자연보호 등 사회 운동을 통해 사회에 적극적으로 기여하고자 했다. 영화를 통해 관람객들은 음악 감독으로 익숙했던 그의 개인적 이야기와 사회 활동가로서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전시를 관람한 이정우 씨(21)는 “류이치 사카모토는 예술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경계하면서도 개인적으론 사회운동 등에 앞장선 모습을 보여 인간으로서 인상 깊었다”며 “외부의 요소가 차단된 공간에서 그런 그의 전시에 조용히 몰입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한 예술가의 일생이 담긴 소리를 눈과 귀로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라이프, 라이프’에선 스스로 예술의 일부가 되는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

사진: 황보진경 기자 hbjk0305@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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