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 프랑스 파리의 ‘아틀리에’(atelier)를 방문하다

파리의 중심인 리볼리가 한복판엔 눈길을 끄는 독특한 외형의 건물이 있다. 건물 외벽엔 폐품으로 만든 사람 모양의 조형물이 거꾸로 매달려있고 다양한 모양의 깃발과 장식품이 제멋대로 장식돼 있어 괴짜가 살고 있을 법한 느낌을 준다. 이 7층짜리 건물은 29명의 예술가가 입주해있는 공동 작업공간, ‘아틀리에’다. 아틀리에는 공방, 화실, 작업장이란 뜻으로 예술가의 작업장, 또 그 예술가 집단의 공동 작업장을 지칭하기도 한다. 프랑스엔 이같은 다양한 형태의 아틀리에가 도시 곳곳에 있다.

명소가 된 예술가들의 점거지

‘로베르네 집’의 나선형 계단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작업을 하고 있는 작가들을 만날 수 있다.

본래 외부에서 탄탄하단 평을 받는 프랑스의 예술인사회보장제도지만 정책이 만들어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실질적인 생계·거주권보장의 혜택을 받는 것은 어려워졌다는 것이 기자가 만난 작가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한 갤러리에서 만난 영상작가 파라디 씨는 “국가의 거주공간지원이나 창작공간지원은 단발성이 아닌 영구성 지원이기 때문에 한정적인 자원으로 인해 오랜 기간 동안 자리가 나지 않는다”라며 “체감할만한 예술가사회보장제도 혜택은 전시 할인 혜택이나 작품에 필요한 도구를 살 때 할인되는 것이 전부”라고 설명했다.

자신의 차례를 무기한으로 기다릴 수 없었던 작가들은 직접 공간을 찾아 나섰다. 파리 리볼리가 59번지의 ‘로베르네 집’은 대표적인 ‘점거 아틀리에’로 1999년 11월 ‘KGB’라고 불리는 세 명의 예술가, 칼렉스, 가스파르, 브뤼노가 둥지를 튼 곳이다. 금융회사인 크래딧 라오네와 프랑스 정부 공동으로 소유하던 이 건물은 폐쇄된 후 몇 년 동안 빈 상태로 방치돼 있는 도시의 흉물이자 퇴락해가는 공간이었다. 이를 KGB가 점거하자 당시 프랑스 정부는 예술가들의 점거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한 채 경찰에 신고해 2000년 2월 4일 즉각적으로 철수할 것을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이를 지원했던 변호인단들은 법적 대응을 통해 우선적으로 6개월의 유예 기간을 얻어냈고, 이 6개월을 발판으로 ‘로베르네 집’은 활발한 점거 아틀리에 운동을 전개할 수 있었다.

KGB는 이곳을 창작자와 지역주민을 매개시켜주는 대안문화공간으로 만들고자 했다. 이곳에 입주한 예술가들은 머물며 창작·전시 활동을 하고, 누구나 자유롭게 찾아가 작가들의 작업모습과 작품을 구경하며 예술가들과 대화를 했다. 또한 이곳의 작업실은 문 없이 설계돼있으며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침구만 있으면 무료로 숙박할 수 있게 하는 등 ‘개방’과 ‘공유’를 기조로 운영됐다. 버려진 건물이 단장되고 다채로운 프로그램 등이 준비돼 사람들이 모여들자 당시 프랑스 언론은 ‘로베르네 집’ 사건을 ‘squart’, 즉 ‘점거예술’(squat+art)이라고 표현하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같은 언론의 지지는 시민사회는 물론 정치계, 정부의 관심으로 이어졌고, 이후 파리시가 ‘로베르네 집’ 건물을 매입해 공공시설로 인정하면서 2002년 5월 정식적으로 ‘로베르네 집’이 출범했다.

우여곡절 끝에 얻어진 이 공간은 연간 관람객 4만 명이 오가는 파리의 ‘핫 플레이스’가 됐다. 1층의 안내데스크를 지나면 위치한 나선형 계단의 벽면엔 이곳에서 활동했던 작가들이 그린 그림으로 가득 차 있다. 각 층엔 설치미술, 일러스트, 비디오아트 등 다양한 분야의 시각 분야 예술가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작품을 그리고 있던 예파 씨는 “아틀리에에 프랑스인 외에도 다국적 외국인 작가들이 입주하고 있어서 여러 방면에서 영감을 받을 수 있어 매우 좋다”며 “관람객과 즉각적으로 소통할 수 있다는 점도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무료로 개방되는 이곳에선 작가와 관람객의 자유로운 소통은 물론 직접 작품 구매가 활발히 이뤄지기도 한다. 독일에서 왔다는 칼슨 씨는 “인스타그램을 보고 담배곽에 일러스트를 그리는 에고스의 작품이 궁금해 그와 대화도 나누고 작품을 사고 싶어 파리에 온 김에 이곳에 들게 됐다”고 말했다. 이곳에선 평균 25유로(한화 약 32,500원)에 노트북 크기 정도의 캔버스 작품을 구매할 수 있다.

지자체가 내어준 기찻길 밑 작업실

‘소나무회’ 작업실의 내부는 작업 특성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단층, 복층 구조로 다양화돼 있다.

파리 근교 마을엔 지방자치단체(지자체)에서 직접 만든 아틀리에 단지가 있다. 파리에서 베르사유 궁전으로 가는 도시고속열차(RER) C선을 타고 파리의 경계선을 넘어서자마자 나오는 이시레물리노(Lssy Les Moulineaux)시가 그곳이다. 기차가 다니는 다리 밑에 아치형 공간이 아틀리에와 전시장으로 채워지면서 하나의 아틀리에 단지가 구성됐다. 폐쇄된 공단지대이자 빈민가였던 이 도시에 예술가들이 유입됐고, 이후 만들어진 이 독특한 구조물의 아틀리에는 도시에 랜드마크가 됐다. 이처럼 육교 아래의 아치형 공간에 아틀리에와 전시장 등을 세워 예술가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구조물을 ‘레 작슈’라고 통칭하는데, 이곳 이시레물리노는 육교 밑에 설치하는 기존의 ‘레 작슈’와 달리 기찻길 아래의 빈 공간을 아틀리에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 아틀리에 단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엔 시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다. 한국인과 프랑스인, 그리고 다른 외국인들로 구성된 ‘소나무 회’의 소속 화가들 20여 명은 옛 국방성 탱크정비 공장을 점거하고 개조해 1990년 초에 자리를 잡았다. 불어로 ‘예술(art)+병기창(arsenal)’을 조합한 ‘아르스날’(artsenal)로 불리며 시작된 이곳은 영화촬영지로 쓰일 만큼 감각적이고 이색적인 곳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시레물리노의 13번지 아틀리에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이은화 작가는 “공장에서 10여 년간 운영되던 ‘소나무 회’ 아틀리에는 철거위기에 놓이기도 했었다”며 이야기를 들려줬다. 사용하던 부지가 프랑스 육군 소속의 부지로 다시 회수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아틀리에에서 활동하던 작가들이 거리에 내쫓길 상황에 놓이자 이시레물리노시는 사용되지 않고 있는 기차길 아래에 ‘레 작슈’ 형태의 아틀리에를 지어 그들을 위한 창작 공간으로 지원해 지금의 아틀리에를 만들었다. 이는 슬럼화가 된 도시를 다시 재생시키고자 하는 지자체의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20여 년간 집권하며 낙후돼 버려진 도시를 ‘살고싶은 도시’로 탈바꿈시킨 이시레물리노의 시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문화예술 혹은 특별한 공간이 지역사회와의 관계에서 얻게 되는 비물질적 영향력 혹은 파급효과에 대한 부분을 일종의 사회적 경제 개념으로 볼 수 있기에 그 가치를 인정한다”고 아틀리에를 지원한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다. 이곳은 시의 지원과 주도하에 1년에 한 번씩 정기적인 오픈스튜디오를 진행하고 그 외에도 비정기적으로 전시도 개최하며 시민들과 소통하는 자리를 가진다. 시민들이 직접 작가들의 아틀리에로 들어와 작품을 감상하고 작가에게 직접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듣기도 한다. 이외에도 작가들이 직접 안내하는 가이드 투어와 작가들이 제작한 작은 크기의 작품을 아틀리에 곳곳에 숨겨놓고 보물찾기 이벤트를 진행하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해 매년 시민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은화 작가는 “지자체의 지원을 받는 대가로 시민들을 위한 오픈스튜디오를 진행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대중과 소통하는 것은 예술의 중요한 기본정신 중 하나기 때문에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기쁜 마음으로 오픈스튜디오를 준비한다”고 자신의 소회를 밝혔다.



예술가와 노동자의 간극

점거를 통해 빈 건물을 차지한 예술가들을 내쫓지 않고, 또 그곳마저 잃은 예술가들에게 지자체가 창작공간을 지원하는 모습은 우리에겐 낯선 풍경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프랑스 시민들의 ‘점거’와 ‘예술가’에 대한 인식이 한국과는 상이하기 때문이다. ‘점거(squat) 운동’은 사회적 소수자들이 공간에 대한 사회적 불평등을 외치며 시작됐으나 이후 사회적 공공성과 권리 측면으로 그 논의가 확장됐다. 이런 정신이 예술가들의 점거 운동에 당위성을 부여해 지지를 받게 된 것이다. 또한 프랑스에선 19세기 무렵부터 시작된 예술가 노조의 지속적인 투쟁으로 예술가의 ‘노동성’이 사회적으로 인정됐고 한 분야의 노동자로서 인식돼왔다. 그렇기에 ‘노동자의 권리’인 ‘최소한의 창작공간 제공’을 요구하는 것이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한국의 예술가들은 현재 어디서 작업을 하고 있을까. 한국 예술가들에게 ‘점거 운동’은 낯선 개념이다. 지난 7월 춘천시 문화재단에서 예술가들이 상주하던 스튜디오와 갤러리를 공지 없이 폐쇄해 입주작가들을 내쫓은 경우는 오히려 프랑스와 대조적이다. 이응노미술관 이지호 관장은 “한국에도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작가 레지던스 프로그램이 있지만 평생 아틀리에를 지원하는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 제도는 작가의 입주 기간이 대부분 1년에서 2년으로 한정적이어서 안정적인 작업환경과는 거리가 멀다”며 “작가들의 지원이 많은 레지던스의 경우, 입주 작가 경쟁률이 치열해 그나마도 경쟁에서 밀리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설명했다. 임대료가 저렴한 도시에 예술가들이 모여 작업활동을 한다는 것은 유사하나, 예술가가 외부요인에 의해 그곳을 잃게 됐을 때 프랑스 예술가와 한국 예술가의 결말은 다르다. 이시레물리노의 경우 지자체에서 아틀리에를 만들어 준 반면 젠틀리피케이션으로 인해 오른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한국 예술가는 도시를 떠나게 된다.

안타깝게도 프랑스 또한 공간과 예산 부족 등으로 예술인사회보장제도를 통해 실질적인 지원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기본적인 예술인지원 정책이 마련돼있다는 것은 예술가를 한 분야의 노동자로서 인정하고 그들을 지원하는 것은 사회적 합의가 됐다는 증거다. 예술인사회보장제도의 한계를 스스로 벗어나려고 하는 예술가와 그들을 지지하는 사회적 분위기. 이처럼 예술가가 고립된 존재가 아닌 사회구성원의 노동자로서 한국에서도 인정되길 기대해본다.

삽화: 홍해인 기자 hsea97@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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