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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학회의 한국인 학자들논란의 해적 학회, 배경과 대안을 알아보다
  • 박재우 기자
  • 승인 2018.09.09 11:36
  • 수정 2018.11.04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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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9일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에서 “‘가짜학문’ 제조공장의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해적 학술단체 ̒와셋*̓에 참가한 한국인 학자들의 실태를 보도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문제가 된 학회 와셋에 논문을 제출한 바 있는 국내 저자의 수가 2014년 이후 매년 1000여명을 상회하며, 국내 기관 중 서울대가 와셋 학술대회에 참여하거나 논문을 제출한 횟수로 1위를 차지했다.

학계는 이번 사태를 오픈 엑세스 저널의 발흥이라는 거시적 환경과 BK21 사업을 비롯한 국책 연구 사업의 평가 체계상 허점과 같은 국내적 특수성이 결합해 발생한 복잡한 사안으로 보고 있다. 무엇보다 학자 간 소통과 건설적 비판 부족에 따른 학계의 자가 통제 능력 상실이 근본 원인으로 지적된다.

와셋 사태 현황은?

이번 ‘와셋 사태’가 문제가 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문제가 된 학회가 실상 학회라 부르기 민망한 수준으로 운영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학회 논문 발표의 핵심은 동료 연구자가 논문 내용의 타당성을 평가하고, 개선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발표와 토론을 통해 서로의 연구 내용을 발전시킬 방안을 모색하기도 한다. 그러나 와셋을 비롯해 문제가 된 학회의 경우 실질적인 리뷰 절차 없이 논문 발표 게재료만 내면 대부분 그대로 발표가 가능했다. 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인 탓에 학술적인 피드백을 주고받는 토론 과정도 없다시피 했다. 또 다른 문제점은 이 비정상적인 학술 행사에 한국 학자들이 유독 많았다는 점이다. 실제로 와셋을 먼저 취재했던 ‘북부독일 공영방송’(Norddeutscher Rundfunk)이 「뉴스타파」에게 협업을 제안했던 이유 역시 와셋 학회에 유독 한국인의 모습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학계 사이에서 와셋과 같은 ‘수상한 학회’가 학계 곳곳에 산재해 있다는 사실은 유명했다. ‘BRICs’와 ‘하이브레인’과 같은 학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와셋 학회의 부실함에 대하여 성토하는 예전 글을 검색만으로 쉽게 찾을 수 있다. 사태가 불거진 이후 의심스러운 학회에 참석하라 홍보하는 스팸 메일이 수시로 오고는 했다는 연구자들의 증언도 이어졌다. 김우재 교수(캐나다 오타와대 세포분자의학과)는 “아무리 차단을 해도 거의 매일 스팸 메일을 받는다”며 “교수들이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홍성욱 교수(생명과학부) 역시 “메일은 하루에도 몇 통씩 받는다”며 “외국에서는 그런 학회를 가리켜 해적 학회(predatory conference)라고 부른다”고 귀띔했다.

이번 사태와 관련, 일부 교수들은 와셋은 문제가 없는 단체라는 입장을 밝혀왔다. (『대학신문』 2018년 8월 27일자) 홍보처는 당초 “논문 발표의 허위 기재 등 명백히 사실과 다른 요소가 있는 것이 아닌 이상 모든 학술행사를 가짜 또는 사기로 간주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것이 대학의 판단”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다만 이후 산학협력단 명의 추가 답변을 통해 “해당 사항 관련해 상세하게 사실 관계 확인 중”이며 “명백하게 비학술적이고 수준 미달인 학회에 대해서는 학내 각 단과대학(원)을 통해 참가를 금지하고 권위 있는 학회나 학술대회에 참가하도록 권고할 예정”이라 답했다.

BK21 사업 평가 체계상 허점

그렇다면 학자들은 도대체 왜 그곳을 갔는가? 연구자들은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전준하 씨(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박사과정)는 “단순히 몰랐던 경우도 있을 것”이라 전제한 뒤 “교수 업적이나 연구과제 평가에서 점수를 더 따기 위해, 남은 과제비를 소진하기 위해, ̒학빙여̓(학회를 빙자한 여행)를 가기 위해 등 여러 요소가 있다”고 말했다. 홍성욱 교수는 “연구 업적을 쉽게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한다”며 “교수나 대학원생의 국제학회 참가가 BK21 사업 등에 실적이 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학계에선 사태의 큰 요인으로 1998년부터 진행된 BK21 사업을 빼놓을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이번 와셋 사태에서 거론된 주요 대학 참가 순위와 대학별 BK21 사업비 규모 순위를 비교해보면 상당 부분 겹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교육부가 2013년 낸 보도자료에 따르면 BK21 사업에 가장 많이 선정된 대학은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부산대, 성균관대, 경북대 순이다. 6개 대학 모두 와셋 사태에서 가장 많은 한국인 참여자가 소속된 것으로 알려진 상위 10개 기관에 포함된다.

학계 내부에서는 BK21 사업 평가 체계상 허점이 이번 사태를 통해 드러났다는 지적이 거듭 제기됐다. BK21 사업은 7년씩 3차례에 걸쳐 진행 중으로 ‘분야별 핵심 고급인력 및 국내 대학 교육과 연구의 질적 수준 제고’를 목적으로 하는 대학원생 인력양성 프로젝트다. 현재는 ‘BK21+’라는 이름 하에 17년 기준 2,727억원을 집행하고 있다. 한편 2000년대 중반 이래 다국적 배경의 학생들이 외국어를 바탕으로 교류하는 글로벌 대학이 이상적인 대학의 모습 중 하나로 자리잡기 시작했고, BK21 사업 역시 평가 점수에 대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대학원생의 국제화를 종용했다. 한국연구재단의 ‘BK21 2018년 기준 사업단 재선정 및 성과점검 평가지표’를 분석한 결과, 경우에 따라 해적 학회 및 학술지 활동을 통해 ▲참여대학원생 1인당 학술대회 발표 논문 횟수(4점) ▲대학원생 학술활동 지원실적의 우수성(국내·외 학술지 논문 게재 포함)(5점) 등 다수 항목에 실적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BK21 사업의 국제학술대회 인정기준이 ▲4개국 이상 참여 ▲총 구두발표논문 20건 이상 ▲총 구두발표논문 발표자 중 외국인 논문비율 50% 이상으로 돼 있어 해적 학회 역시 실적으로 인정받기 충분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산학협력단, 한국연구재단 등이 일일이 해외 학술 대회 참여를 감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감독 기관들은 각 학교 BK21플러스 사업단이 제출한 ‘국제학술대회 인정기준 확인서’와 주관기관이 발급한 확인서, 발표 논문 등을 확인한다. 그러나 주로 서류 확인 정도로 그치며 학술대회의 질적 요인까지 평가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한국연구재단 측은 “연간 평가 때 해당 분야 평가위원들이 적합성을 확인하고 직권취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시간 및 인력 등의 한계로 높은 강도의 조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드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학협력단도 “학문별로 학술지와 학술 행사의 변화가 빠르게 이뤄지는 상황에서 학교 당국이 학술행사의 수준을 임의로 판단하기 어렵다”고 학술지 실적 평가에 대해 어려움을 토로했다.

해적 학회의 탄생

BK 사업이 현 사태에 직접적 원인이라면 20년 전부터 세계 학술계에 변화를 일으킨 오픈 엑세스 운동(이하 OA 운동)은 간접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것이 학계의 설명이다. 본래 논문은 학문 발전을 위한 도구일 뿐 수익 창출을 위해 쓰이지 않는다. 다만 논문을 출판물로 만드는 데는 막대한 편집과 인쇄 비용이 수반된다. 그래서 네이처·사이언스 등 저명한 학술지는 구독료의 형태로 큰 금액을 받고 구독자가 아니면 모든 정보 접근을 차단하기도 한다. 맥락은 다르나 국내에서도 디비피아, 엘스비어 등 논문 DB 회사들과 일선 교육연구 기관 간에 구독료 책정을 두고 갈등을 빚기도 했다. (『대학신문』 2016년 3월 6일자)

이러한 대형 출판사 또는 DB 회사의 무리한 구독료 요구에 반발해 나타난 것이 OA 운동이다. 김성태 교수(숭실대 법학과)는 『지식의 공공성 딜레마』에서 “OA란 지식 생산자와 이용자의 직접적인 정보 공유 체계를 기본 이념으로 설정하고, 저자의 비용 부담, 이용자의 무료 접근, 시공간을 초월한 상시적 접근, 저자의 저작권 보유 등의 4대 원칙을 강조한다”고 설명했다. OA 학술지는 구독료 대신 저자로부터 ‘논문 처리 수수료’(Article Processing Charge, 이하 APC)를 받아 출판 비용을 충당한다. 보통의 경우, 연구 후원 기관과 대학은 저자에게 APC를 지원해 OA 출판을 장려한다.

해적 학회는 이미 전 세계 학계가 주목하고 고민하는 문제다. 이미 2010년대 초반부터 해적 학회의 개념은 존재했지만, 실제로 그 영향력이 지대해진 것은 2014년 이후다. 2015년 미국 인디아나대 연구팀은 지난 몇 년간 발표된 의생명학 논문을 분석해 인도와 같은 개발도상국에서 상당 부분의 해적 학술 활동이 이뤄졌음을 밝혀냈다. 메키나 교수(남아공 로즈대 고등교육연구소)는 실적이 부족한 개발도상국일수록 학자들에게 인센티브와 연계한 학술 활동 증빙을 요구하기 쉬어 해적 학회의 함정에 빠져드는 학자의 수도 그만큼 많다고 지적했다. 인도, 터키 등 개발도상국의 학계가 급격히 성장 중인 것에 반해 학술 인프라는 부족하다는 점을 노리고 해적 학회가 대거 생성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오픈 엑세스 운동 이면에 엉터리 논문을 받아 학술지에 게재하는 형식을 갖춘 또 다른 형태의 상업 학술지, 해적 학술지가 등장한 것이다. 지난 8월에 발간된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이슈 브리프’는 와셋 사태의 배경으로 ‘OA를 가장한 허위 학술지의 급격한 증가’를 거론하며 “제대로 된 심사 없이 저자로부터 APC를 챙기는 영리 목적의 허위 OA 학술지가 양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상당수의 교육연구 기관 역시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가이드라인을 배포해 연구자들에게 주의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KISTI 이슈 브리프는 “허위 학술 커뮤니케이션의 위험성을 알리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며 “또한 출판, 연구 윤리 교육을 통한 학술 생태계 구성원들의 자정 노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가이드라인을 넘어

현재 와셋 사태에 대해 학술계는 연구자 개인의 일탈을 비판하는 동시에 연구 관리 시스템에 대한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과 전국교수노동조합 등은 와셋에 참여한 학자들을 비판하는 한편 연구를 감독한 정부와 한국연구재단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은 성명서를 통해 ‘와셋 사태’는 “허술한 연구 관리 실태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라며 정부에 전반적인 실태조사와 수사, 연구개발관리시스템 점검을 요구했다. 전국교수노동조합 홍종학 위원장도 “한국연구재단이 와셋을 몰랐다고 하는 건 직무유기”라며 교육부에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이런 반응을 의식한 듯 정부와 한국연구재단 역시 9월까지 처벌과 규제 위주의 가이드라인을 준비 중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한국 과학계 내 적극적인 소통과 비판의 부재로 연구 활동 관리에 실패한 것이 문제의 본질이라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전준하 씨는 “이 문제가 대학이 아닌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며 “이는 동료 연구자가 와셋과 같은 학술대회에 다녀오고 아무 말이나 실어주는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해도 학계에서 문제 삼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연구 과정에서 저지르는 부정 행위를 가장 효과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사람은 동료 연구자”라고 말했다. 연구시스템을 지탱하는 연구자들이 정작 문제 해결의 주도권은 정부와 같은 상위 기관 및 조직에 떠넘기는 행태를 비판한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건전한 학술 생태계 구축을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는 성찰도 이어지고 있다. 김우재 교수는 “가짜 학회에 안 간다고 학술계가 발전하지는 않는다”며 “제대로 된 연구를 가려내고 지원하는 데는 비용이 든다. 결국 정해진 돈을 제대로 쓰느냐 여부의 문제”라며 민간 주도의 연구비 집행 기관 설립이나 현재의 연구 지원비 집행 기준 변경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전준하 씨 역시 “문제는 연구자가 본질인 학술 커뮤니케이션보다 발표나 출판을 했다는 사실 자체와 그 횟수에만 의미를 두고 있다는 점”이라며 “우리가 ‘가짜 학회’라고 지칭하는 문제는 사람들이 ‘진짜’라고 여기는 SCI, Scopus, KCI 등에 등록된 학술지 내지는 학회에서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와셋(World Academy of Science, Engineering and Technology): 해적 학회로 주목받는 단체. 학계와 무관한 터키인 부자에 의해 운영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8월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와 MBC 공동 보도를 통해 크게 알려졌다.

삽화: 홍해인 기자 hsea97@snu.kr

박재우 기자  jaypk@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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