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민 교수

법학전문대학원

살다 보면 사과만큼 어려운 것도 없다. “미안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 한 마디가 나오지 않는다. 체면을 생각하고 쭈뼛쭈뼛하다 기회는 지나간다. 커지는 오해 속에 상대방과는 더 멀어진다. 문제는 법적으로도 사과는 쉽지 않다는 점이다. 스스로 잘못했다는 언급이 추후 법적 절차에서 책임을 인정한 것으로 간주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변호사의 조언을 받거나 법적 함의를 생각하는 사람이나 기업은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상대방을 만나도 ‘노 코멘트’로 일관하거나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 유감”이라는 알 듯 말 듯 한 말만 반복한다. 결국 상대방의 상처만 깊어지고 당사자 간 앙금만 더 쌓인다. 간단한 다툼도 자칫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 심각한 분쟁으로 이어진다.

이런 사정을 이해한 국가들이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기에 이르렀다. 요컨대 사과가 초래하는 법적 함의를 입법적으로 제한하는 것이다. 사고 직후 당사자 일방이 사과하면 그 사실과 내용이 추후 법적 절차(민사소송절차)에서 본인의 과실을 자동적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른바 ‘사과보호법’(謝過保護法: Apology Legislation, Apology Ordinance)이다. 이런 법률이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를 거치며 확산되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홍콩이 지난해 12월, 이 법을 도입했다. 물론 이들 국내법에는 예외가 있어, 때로는 사과가 법적 절차에서 원용되는 길이 열려 있다. 그러나 우리가 경험하는 대부분의 일상적인 사과는 이 법의 보호 대상에 해당한다. 사과를 보다 자연스럽고 명확하게 할 수 있도록 법이 뒷받침하는 것이다.

이들 사과보호법은 사과를 통해 분쟁이 격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미국 미시간대에서 진행된 임상실험 통계에 따르면 진정한 사과가 분쟁이 격화되는 빈도를 50% 정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법적 절차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을 생각하면 상당한 이득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움직임은 분쟁을 가급적 ‘대체적 분쟁해결’(ADR) 절차를 통해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최근 여러 국가의 움직임과 일맥상통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움직임이 국가 간 분쟁에서도 감지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과가 어렵기는 국가들끼리도 마찬가지다. 국가 간 분쟁을 국제법원이나 공식적인 분쟁 해결절차 대신 새로운 방식을 통해 한번 다뤄보자는 흐름이 최근 확산되고 있다. 투자 분쟁도 이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ISDS 절차 대신 당사자 간 합의를 도모하는 ‘조정’(mediation) 절차가 새로운 조명을 받고 있다. 통상분쟁의 가장 복잡한 골칫거리인 비관세무역장벽 문제를 다루기 위해 역시 국가 간 조정절차를 도입하자는 움직임도 새로운 현상이다. 우연히도 우리나라가 당사자인 한중 FTA와 한-EU FTA가 이미 이 제도를 실험적으로 채택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불가피한 상황에서는 법적 절차를 피할 수 없다. 때로는 법적 해결이 유일하게 의미 있는 방안이기도 하다. 사과가 범법행위를 치유하지도 못한다. 사과와 별도로 법적 절차가 그대로 적용돼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는 진정한 사과와 당사자 간 소통은 해결의 실마리를 제시할 수도 있다. 분쟁을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갈등이 심화되는 것을 막을 수는 있을 것이다. 이러한 ‘건전한’ 사과를 권장할 수 있도록 법률도 신경 쓰는 것은 장기적으로 올바른 방향일 것이다. 인간 본성과 사회의 도덕률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의료사고와 관련해 제안되는 일부 법안에서 이런 사과보호법의 맹아가 살짝 보인다. 홍콩의 새로운 사과보호법 도입에 대해 여러 국가들이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재판을 하더라도 사과는 해야 한다” “처음부터 변호사를 내세우면 손해를 보는 일도 있다” “인간만이 사과할 수 있다” 『멋지게 사과하는 방법 80가지』의 저자 다카이 노부오가 말하는 사과의 방법 중 눈에 띄는 세 가지다. 저자가 변호사라는 점도 다시금 새롭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자. 잘못했을 때 용감하게 사과하는 것도 커다란 용기다. 진정성 있는 사과 한마디가 얼마나 많은 다툼을 해결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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