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고운 강사

의류학과

올해도 뜨거운 모니터를 앞에 두고 진행된 계절학기 ‘패션디자인 CAD’ 수업 동안 일러스트레이터 프로그램을 가르치면서 수없이 눌러온 명령어가 있다. 프로그램을 처음 배운 학생들도 이제는 손에 익숙해졌을 명령어 ‘Ctrl + Z’는 컴퓨터 프로그램 작업 시 전단계로 돌아가는 만능버튼이다. 방금 실행한 내용을 되돌리고 싶거나 고치고 싶을 때 사용하는 명령어로 누르기만 하면 전단계로 감쪽같이 돌아간다. 마치 시간을 되돌리는 마법처럼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아차’ 하는 순간 생성된 ‘흑역사’를 앞에 두고 ‘내 인생도 그렇게 돌아갈 수 없을까’ 상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순간순간의 오류를 ‘Ctrl + Z’를 눌러서 원점으로 되돌릴 수 있다면, 그리고 내 인생이 돌아가고 싶은 어느 한 시점으로 복원될 수 있다면 하는 기대감을 가지지만, 벌써 지나가 버린 실수는 그야말로 엎질러진 물이다. 그렇기에 오늘 밤도 자다가 ‘이불킥’이다.

슬프게도 우리는 한번이면 충분한 실수를 계속 반복하게 된다. 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싶지 않다는 그 압박감으로 또다시 실수를 범하고 마는 우리에게 알렉산더 포프는 ‘실수는 인간의 일이요, 용서는 신의 일’이라고 위안의 말을 전한다. 혹자는 인간은 실수를 통해 비로소 진화하고 성장하기에, 헤매고 오류를 범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며 이를 예찬하기도 한다. 나아가 과오를 인정하고 기억하여 배워나감으로써 자기 성장의 원동력으로 삼으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실수를 기억한다는 것은 얼마나 괴로운가? 실수는 돌이킬 수 없어 아프고, 기억하기에 더 괴롭다. 실수가 저질러지던 순간의 분위기, 내 주변을 둘러싼 시선들, 그때의 나의 후회스러운 감정은 생생하게 기억에 각인된다. 다만 생생하면 다행이다. 얼굴을 화끈하게 만들던 수치심과 후회를 자양분으로 하여 기억은 무럭무럭 자라나 조작되고 확장되어 종단에는 ‘Ctrl + Z’가 아니라 ‘시스템 종료’를 눌러버리고 싶은 지경에 다다른다.

뛰어난 사람, 완벽한 사람, 성공한 사람이 ‘절대 실수하지 않는 사람’으로 오해받는 시대다. 한 번의 시험이, 한 번의 면접이, 한 번의 도전이 우리를 평가하고 미래를 좌지우지하기에 실수는 실패처럼 느껴질 수 있다. 자신을 감정적으로 제어하며 분초를 계획해 살아온, 완벽을 목표로 성실하게 달려온 당신에게, 그래서 단 한 번의 실수가 더 뼈아프게 느껴질 당신에게 지나간 일을 복기하며 괴로워하는 것은 잠깐으로 하고 잊으라고, 잊어버려도 괜찮다고 감히 전하고 싶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도 나는 계속 실수하고 있을 수 있다. 그야말로 실수로 점철된 일상인 것이다. 사소하게는 메일의 첨부파일을 잊어버릴 수도, 수업에 늦을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말실수를 하거나 창피한 행동을 할 수도, 그래서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금전적인 손해를 볼 수도 있고 자괴감에 집 밖을 나가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슬프게도 나의 실수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됐을 수도 있다. 이러니 어떻게 쉽게 잊을 수 있겠는가?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실수라는 글자를 키보드로 눌러 쓸 때마다 심장이 무겁게 내려앉을 정도로 과거의 흑역사들이 자꾸 떠올라 아찔한데 말이다. 그렇지만 실수가 스스로에게 희미해진다는 것 그리고 타인에게 잊힌다는 것은 분명 우리에게 상상 이상의 위안이 된다. 실수를 기억에서 지워버리는 것은 지난날의 잘못에서 비롯된 충격이 만들어낸 정신적 방어기제일지도 모르지만, 잊었기에 잊어버렸다고 생각하기에 우리는 새로운 파일을 열어 다시 한번 작업을 시작할 힘을 얻을 수 있다. 그러니 시간을 되돌리는 마법 같은 ‘Ctrl + Z’는 잊고 오늘의 후회는 오늘까지로 끝내보자. 나의 크고 작은 실수를 잊어준 혹은 잊은 것처럼 받아들여 주는 주변에 감사를 전하면서, 내일은 웃는 얼굴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Ctrl + N’을 눌러 하얀 새 파일을 열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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