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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갑게 벼려낸 분노의 힘으로리뷰 한 편 | 웹툰 ‘킬링 허니’ 리뷰
  • 대학신문
  • 승인 2018.09.09 10:53
  • 수정 2018.09.10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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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우리나라에서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가정폭력 피해 여성의 정당방위 인정 사례가 전무하다는 기사를 봤던 적이 있다. 2018년 현재도 상황은 전혀 변한 게 없다. 여전히 가정폭력을 견디다 못한 강력사건의 정당방위 인정 사례는 전무하다. 2018년 8월,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1심 재판이 있었다. 이 재판에서는 무죄가 선고됐다. 재판부는 비공개 심문에서 ‘정조’를 언급하는가 하면, “사회적 지위를 갖춘 성인 여성”인 피해자가 거절 의사를 분명히 할 수 있었다며 오히려 피해자를 탓하기도 했다. 반면 가해자는 휴대폰을 파기하고, 온라인에 올린 글과 실제 증언이 계속해서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일관된 진술을 하고 있다고 인정했다.

그의 무죄 판결이 나온 날, 인터넷에서는 ‘사적 보복’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 그의 무죄판결이 나온 주말, 급하게 잡힌 서울 역사박물관 앞 시위에는 수많은 사람이 모였다. 차도에 앉아 붉은색 피켓을 든 사람들의 목소리는 날카로웠다. 활활 불타오르는 설익은 분노가 아니라, 켜켜이 쌓여 차갑고 싸늘하게 식은 분노였다. 법은 사회의 안전망이다. 하지만 그것이 제대로 작동한다는 확신이 없을 때, 사람들은 법을 믿기보다 자신이 쥔 칼을 믿게 된다. 그런 차가운 분노를 다룬 웹툰이 있다. 바로 출판사인 위즈덤하우스가 만든 웹툰 플랫폼 저스툰에서 작가 ‘세오네’가 연재한 ‘킬링 허니’다.

달콤함 뒤의 씁쓸함

이 작품은 프리랜서 기고가로 일하고 있는 ‘유마나’와 그가 대출을 받아 산 집의 지박령인 ‘이수’의 로맨스를 그리고 있다. 집에 사는 귀신과 인간의 로맨스를 그린 작품이라면 웹툰 중에는 네이버 웹툰에서 정서 작가가 연재한 ‘투명한 동거’ 등의 작품이 있다. 지박령과의 코미디를 그린 작품 중에는 2004년 영화 ‘귀신이 산다’가 있을 것이다. 두 작품 모두 일종의 원념을 가진 귀신 주인공이 ‘성불’하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우리의 정서에서 귀신의 원념을 해결해 성불시키는 것이 ‘선한’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귀신은 성불해야 하는 부자연스러운 존재고, 인간 주인공의 역할은 귀신이 성불할 수 있도록 인간계의 일을 대신해주는 조력자다.

‘킬링 허니’의 장르는 로맨스-스릴러다. 때문에 독자들은 귀신으로 등장한 이수와 집주인 유마나의 로맨스를 보면서 두 가지 감정을 느끼게 된다. 주인공 이수는 작품의 시간상 3년 전에 이미 살해당했다. 작품의 주요 내용은 수를 살해한 범인을 어떻게 응징할 것인가에 대한 계획과 실행이다. 이 때문에 이 계획이 실행돼 수가 성불하게 되면 로맨스 서사 역시 끝날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이 극을 지배한다. 수의 사인은 후두부 강타였고, 성폭력의 흔적은 없었으나 팔 한쪽이 사라졌다. 결국, 수는 유마나의 입을 빌려 아버지에게 ‘피해자가 괴로워야 할 이유는 없다’는 말로 수의 아버지를 위로한다. 보통의 경우라면 이런 행위는 수가 성불하기 위한 단계로서 작동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마나와 수가 가까워지는 장치로만 작동한다. 수의 ‘성불’은 인간의 죽음처럼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것으로 그려진다.

웹툰 ‘킬링 허니’엔 어떤 집에 이사를 오게 된 유마나와 그 집의 지박령 이수의 로맨스가 그려진다. (사진제공: 저스툰)

무너져가는 기억을 지탱하는 힘

원념에 사로잡혀 원귀가 돼 구천을 떠돌아도 이해할 만한 상황에서 정작 당사자인 이수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담담하다. 계약직 교사로 정규직 전환을 노리고 있었던 수는 성실했고, 고과도 좋은 편이었다. 그러나 살인사건의 희생자가 된 이후 장례식은 학교에서 치르지도 못했고, 자신의 아버지는 3년간 잃어버린 딸의 팔을 찾겠다며 온 동네를 헤집고 다니다가 빈집에 들어와 딸에게 미안하다고 눈물을 흘리며 술을 따르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은 수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마나가 이사를 온 이후 마나의 옆집에 한 남자가 이사를 온다. 남자는 백하운이라는 젊은이다. 마나가 백하운과 처음 마주치는 장면은 이 작품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작동한다. 백하운은 자신의 집에 들어가려는 유마나에게 “이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들어왔느냐”며 공격적으로 따져 묻는다. 유마나는 하얀 피부, 가늘고 긴 체형, 빨간 머리와 초커, 귀걸이 등을 한, 예쁘장한 남성에 가깝다. 그를 여성으로 착각한 백하운은 대뜸 따져 묻지만, 그가 남성임을 알고는 태도가 180도 바뀐다. 백하운은 어딘가 이상하다. 그리고 그의 여자친구도 어딘가 이상하다.

이런 감각이 확신으로 굳어지는 것은 마나가 백하운의 집에 다녀온 다음이다. 그의 집 안에서 발견된 검은 진주 귀걸이는 이수가 차고 있는 것과 비슷한 것이었다.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백하운은 사실 비밀을 감추고 있었다. 그는 여성을 끊임없이 갈구하지만,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나려고 하면 폭력성을 띠고 애인을 상습적으로 폭행하는 데이트 폭력범이다. 흔히 이야기하는 여성 혐오의 전형을 보여주는 사람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백하운은 3년 전 이수를 죽인 진범이다. 그의 집 정원 정비를 도와주던 중에 백하운이 묻어놓은 수의 팔 때문에 썩은 땅을 발견하고, 수는 그곳을 보고 처음으로 격렬하게 화를 낸다.

이수가 화를 내는 모습이 그가 이성을 유지하고 있었던 원동력에 대한 힌트다. 작품 속에서는 두 가지 흉기가 교차하며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유마나의 손을 잡고 있는 수의 반대쪽 손에는 날카로운 칼이, 백하운에게는 망치가 들려 있다. 여성과의 교류를 원하지만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면 폭력적으로 변한다는 백하운은 수를 ‘소유’하려고 했지만 당연히 실패했고, 그것을 자신에 대한 부정으로 받아들였다. “왜 안 만나줘”의 전형이다. 그리고 그는 망치로 수를 살해해 팔을 잘라 ‘소유’하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하운은 수의 표면을 파괴하는 것밖엔 할 수 없었고, 내면은 망가뜨릴 수 없었다. 반면 칼을 든 수는 백하운을 칼로 찔러 파고들어 가 내면까지 완전히 파괴하는 것을 상징한다.

이수는 처음 백하운을 보았을 때 그를 기억하지 못했다. 육체가 없는 귀신에게 기억이란 삶의 전부와도 같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수를 지탱해준 것은 자신을 죽인 범인에 대한 강렬한 분노였다. 기억을 일부 잃을 정도로 자기 파괴적 분노를 겪은 수였지만, 백하운을 기억해낸 이후의 수는 전보다 더 냉철한 판단을 내린다. 백하운이 이수를 죽인 범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마나는 수에게 법적 제도 안에서 처벌할 방법을 찾자고 말한다. 수는 여기에 동의한 다음, 마나에게 위험할 수 있으니 잠시 떠나 있으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수는 데이트폭력을 겪던 백하운의 여자친구 윤서진에게 빙의해 백하운을 살해하기로 결심한다. 놀랍도록 계획적이고, 냉정한 실행이었다. 백하운을 살해하는 순간에도 수는 철저한 계산 하에 움직인다. 수가 차갑게 냉정을 유지하고 원념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아주 차갑고 단단하게 오랜 시간동안 벼려진 분노 때문이었다.

이수는 유마나의 옆집으로 이사를 온 백하운을 발견하게 된다. 이에 이수가 자신을 죽인 진범 백하운을 쫓고 있다. (사진제공: 저스툰)

법과 제도가 정의롭지 못할 때

살해당한 뒤 3년 동안, 이수는 자신의 사건에 대한 수사가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눈으로 지켜볼 수 있었다. 그런 수에게 법과 제도로 백하운을 처벌하라는 말 만큼 와닿지 않는 말이 있었을까. 눈앞에서 범인이 도망치고, 또 3년 뒤에 다시 돌아온 순간만큼 어이없는 일이 또 있었을까. 수가 공권력의 힘으로 백하운을 심판하기보다 사적 복수를 택했다고 해서 그를 탓할 수 있을까?

복수에 성공했음에도 이수는 성불하지 않는다. 성불은 원한이 해결되고 모든 이승에서의 번뇌가 끝났음을 의미한다. 수의 원한은 모두 백하운에게서 기인한다. 수가 지박령이 된 것은 전통적 해석 방법으로 보면 백하운에게 복수하는 것이 자신이 이승에 존재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는 백하운에게 복수를 하고 나서도 마나의 곁에 남아있게 된다. 마나는 수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사람이었다. 43화에 등장하는 독백 중에서 마나는 “억울해서 남은 사람에게 언제까지고 여기 있어달라는 말은 너무 잔인한 것 같았다”고 말한다. 수의 입장에서 오래도록 생각한 끝에, 마나는 수의 말을 따르기로 한다. 자신의 죽음을 곱씹어볼 3년이라는 시간동안 수는 복수를 꿈꿨지만, 마나를 만나고 나서 자신이 존재해야 할 이유를 찾았다. 앞서 말했듯, 육체가 없는 영혼에게 기억은 삶의 모든 것과 같다. 이승에 남겨놓은 미련이 복수로 해소됐지만, 동시에 마나와의 사랑이 이승에 남은 미련으로 작동한다.

이수의 상황은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혜화역으로, 광화문으로 나온 여성들의 분노를 떠올리게 한다. 2016년 5월, 한 남성이 강남역 10번 출구 근처 건물에서는 화장실에서 남성 7명을 그냥 보내고 처음 들어온 여성을 살해했다. 당시 “여성 혐오” 범죄인지가 논란에 올랐다. 대표적인 여성 혐오(misogyny)와 혐오/증오 범죄(hate crime)를 혼동한 사례였지만, 검찰과 경찰은 “여성 혐오 범죄가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강남역 여성 혐오 살인사건 이후 생긴 사법체계에 대한 불신은 2018년 8월에 절정에 달했다. 8월 중순, 홍대 인체모델 불법촬영의 범인인 여성은 언론의 대대적인 조명과 함께 징역 10개월의 실형을 받았다. 그러나 2017년 7월, 현직 의원의 아들인 판사는 약식기소로 벌금형, 14세 아동을 불법 촬영해 유포한 남성은 2018년 8월, 집행유예를 받았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어쩌면 이 글을 여러분이 읽게 될 지금도 ‘웹하드 카르텔’의 불법촬영물 ‘산업’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수없이 많은 죽음을 애도하는 시간을 지나왔다. 절망과 분노의 시간을 견뎌왔다. 그리고 각자 견뎌야 했던 분노와 좌절의 순간이 사람들을, 여성들을 광장으로 이끌고 있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젠더 이론가 주디스 버틀러는 “애도의 힘”을 통해 만들어진 공동체가 세상을 바꿀 힘을 가진다고 말했다. 버틀러는 ‘애도’란 타인의 죽음이나 취약성(vulnerability)이 우리를 변화시킬 것임을 인지함으로써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건 간편하다. 왜 그런 옷을 입었는지 묻고, 왜 담배를 문 앞에 두고 가지 않았냐고 묻는 것은 간단하다. 삶으로 증명해낸 분노의 역사를 무시하고, 준엄하게 분노한 목소리가 과격하다고 꾸짖는 것 역시나 쉽다. 그러나 그것은 정의가 될 수 없으며, 사회의 긍정적인 변화도 가져올 수 없다. 사람들의 타오르던 분노를 차갑고 냉정하게 제련시킬 뿐이다. 그런 차가운 분노마저 이해하는 마나의 모습은 분노 이후의 삶을 보여준다. 자신의 고통을 이해하는 사람과의 연대는 이 세상에 존재할 이유가 될 수도 있다는 메시지다.

‘킬링 허니’는 살인사건의 피해자 이수와 그의 연인이자 조력자 마나가 함께 살인사건의 범인 백하운을 추적하고 복수하는 과정을 통해 피해자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사법부를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동시에 이 작품은 수와 마나의 로맨스를 통해 우리 사회가 변화해야 할 방향을 이야기하고 있다. 애도의 시간을 지난 서로에 대한 공감과 연대, 그리고 ‘애도’의 힘이다.

이재민 웹툰 평론가

삽화: 홍해인 기자 hsea97@snu.kr

대학신문  snupress@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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