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준 기자
취재부

한 군인 친구에게 얼마 전 전화가 왔다. 최전방에 지뢰 제거 작전을 나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고작 몇천 원의 돈을 생명 수당으로 받고 그 위험한 곳에 나가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마음이 영 편치 않았다. 한국 남자들이 군대 문제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한 일이다. 청춘을 바친 그들의 노고를 어찌 부정할 수 있겠는가? 성차별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몇몇 남성들은 남성도 피해를 보고 살고 있으며, 자신들은 잘못한 것이 없는데 잠재적 가해자 취급이 억울하다고 말한다. 공감할 수 없는 내용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여혐’, 즉 여성 혐오가 만연해 있는 것은 상상 속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스스로 여성 혐오를 묵인하고 저질러온 한 명의 ‘한남’이기 때문이다.

이번 ‘2018년 서울대학교 학생 성폭력·인권 침해 실태조사’에 대해 기사를 쓰며, 설문 조사 결과로 사회적 약자로서 여성의 모습이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금까지 겪어온 삶 속에서의 여성 혐오는, 오히려 더 심각했으면 심각했다. 여혐이라는 단어도 모르던 중고등학교 시절, 여성 혐오는 자연스럽게 내 삶에 스며들어 있었다. 남자들로만 구성된 또래 집단에서는 음담패설이 자연스럽게 오갔고, 그것은 일종의 유머로 소비됐다. 특정한 인물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성희롱성 발언도 ‘농담’이라는 이름 아래 오고갔다. 외모 평가, 비하도 일상적인 일이었다. 나 또한 이런 잘못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난 분명히 누군가의 외모를 평가하고, 대상화한 적이 있다. “넌 꾸미면 이렇게 이쁜데, 평소에도 좀 꾸미고 다녀라” 같은 말을 한 적도, 누군가에게 못생겼다는 말도 한 적이 있으며 다른 사람들의 비슷한 발언에 동조하기도 했다. 음담패설이 잘못됐다고 말하지 못하고 같은 공동체 내에서 이를 묵인하고 넘어갔다.

비단 중고등학교 시절만은 아니다. 내가 여전히 즐기고 있는, 남성 이용자가 대다수인 게임 속에서도 여성 혐오가 퍼져 있다. 게임 커뮤니티의 농담 중에는 ‘노출도는 방어력과 비례한다’는 말이 있다. 이런 말이 나온 이유는 여성 게임 캐릭터들의 의상이 너무 노출이 심해서 도저히 몸을 보호해줄 수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게임 속 성 상품화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시다. 여성 게이머에 대한 혐오도 심각하다. 음성 채팅 기능이 있는 게임에서, 여성임이 드러나면 온갖 성희롱, 인격적 모욕을 겪기 일쑤다. ‘여자는 게임을 못 한다’ ‘여자가 팀에 끼면 이길 수가 없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넘쳐난다. 그러다 보니 여성 게이머 중에는 여성임을 숨기는 경우도 허다하다.

한때 나도 억울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직접적인 성희롱을 한 적도, ‘김치녀’ 같은 여성 비하 발언을 한 적도 없는데 중죄인 혹은 잠재적 범죄자로 여겨지는 것이 억울했다. 하지만 저런 말을 듣지 않았다면 과연 나는 내 삶을 되돌아보고 내가 저지른 잘못들을 인지할 수 있었을까? 그렇기에 나는 현재 페미니즘의 방식이 과격할지언정 본질적으로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잠깐 화가 난다고 그들의 주장을 묵살하기엔 현실이 참혹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잘못이 없다고 생각해도 억울해하지만 말고 한 번쯤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기를, 그리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기를, 나는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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