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으로 창조한 맛의 신세계, 분자 미식학

오미자 캐비어, 물로 만든 인절미와 같이 요리의 순서와 재료의 계량 수치만을 담고 있는 레시피를 뛰어 넘어 음식의 맛과 향을 사전에 디자인한 요리를 분자 요리라 한다. 이들은 분자 구조 분석을 통해 맛과 향을 사전에 계획하는 ‘분자 미식학’을 바탕으로 한다. 『대학신문』은 지난 13일 한식에 분자 요리를 접목시켜 개성 있는 메뉴를 개발 중인 이촌동의 한 레스토랑을 방문해 독창적이고 조화로운 분자 요리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

분자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과학적 원리를 기반으로 셰프가 사전에 맛을 계획하는 것이다. 레스토랑의 오너 셰프인 김기호 씨는 “분자 요리 이론 중 저작(咀嚼) 시 발생하는 향분자의 전달 속도를 조절해 맛의 순서를 설정하는 방식이 있다”고 말했다. 우리의 콧속에 있는 맛을 감지하는 세포는 지질로 구성돼 있으며, 이를 수용성인 콧물이 덮고 있다. 김 셰프는 “수용성 용액을 통과하는 속도에는 분자마다 차이가 있다”며 “더 빠르게 수용성 용액을 통과해 맛 감지 세포에 도달하는 분자가 있는 반면 느린 속도로 수용성 용액을 통과하는 분자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론적으로는 분자가 수용성을 통과하는 속도를 파악해 이를 조절함으로써 맛의 순서를 계획할 수 있다.

분자 요리에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식재료 간의 조화다. 최근 분자 구조가 유사한 식재료들이 서로의 맛을 잘 받쳐준다는 ‘푸드 페어링’ 이론이 주목받고 있다. 김 셰프는 “굴과 키위의 분자구조가 80% 이상 유사하며 두 식재료는 맛과 향도 겹치는 부분이 많다”며 최근 외국에서 함께 사용되고 있는 굴과 키위의 예를 들었다. 이처럼 그는 재료들 사이의 궁합이 요리를 설계하는 데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과학축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캐비어 만들기 실험은 구체화(球體化) 이론이 적용된 것이다. 구체화 이론은 대표적인 분자 요리 기법으로, 알긴산*과 칼슘 용액의 반응을 이용해 구체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이용한 메뉴로는 ‘망고 스페리컬’이 있다. 이는 젤리의 부드러운 식감과 시원한 액체의 맛을 순차적으로 즐길 수 있는 메뉴다. 김기호 셰프는 “망고 주스에 알긴산을 넣은 뒤 이를 원형 스푼으로 떠서 염화칼슘 용액에 담그면 칼슘 이온이 알긴신 수용액으로 들어가게 된다”며 ‘망고 스페리컬’의 조리 과정을 시연했다. 이 과정에서 겉에서부터 젤리화가 진행돼 망고주스의 겉면에 벽이 생긴다. ‘망고 스페리컬’을 입 속에 넣는 순간에는 젤리의 쫀득한 식감이 느껴졌다. 이를 한 입 베어물자 흘러나오는 망고 주스는 시원하면서도 상쾌한 맛을 환기시켰다.

에스푸마 기법을 활용해 조리 시간을 단축시킨 ‘검은깨 스펀지 케이크’가 포함된 메뉴이다.

분자 요리는 조리 시간을 대폭적으로 단축시키기도 한다. ‘검은깨 스펀지 케이크’는 일반 스펀지 케이크와 같은 부드럽고 촉촉한 식감을 가지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과학적인 원리가 숨겨져 있다. 이 메뉴에는 에스푸마* 기법이 이용됐다. 반죽에 사용되는 모든 재료를 한 번에 섞어 에스푸마 기계에 넣은 뒤 질소를 주입시키면, 기계 내부에서 빈 공간에 공기가 차며 자연스럽게 반죽이 만들어진다. 이를 종이컵에 짜 넣고 전자레인지에 30초가량을 돌리면 케이크가 완성된다. 김 셰프는 “분자 요리는 기존의 조리법을 단순화시킬 수 있다”며 “과정이 빨라지면서도 요리의 내용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수비드 기법도 사실은 분자 요리의 한 종류다. 김 셰프는 이 기법과 더불어 아미노산의 결합을 활용한 새우 요리를 소개했다. 먼저 그는 “수비드 기법은 아미노산을 온도 제어에 의해 익힌 것”이라며 “1도의 온도 차이로 인해서 셰프가 본래 의도했던 계획이 틀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이 같은 분자 요리 기법에서는 정밀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그는 “다른 한 방식은 새우를 익힐 때 트랜스글루타미네이스*를 넣어 단백질이 결합되며 익을 수 있게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두 방식으로 조리된 새우는 식감도 촉촉함도 각기 달라 각자 고유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끝으로 김기호 셰프는 분자 요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풀어냈다. 김 셰프는 분자 요리를 먹는 모든 사람이 항상 분자 요리의 원리를 인지하며 요리를 음미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며 “오히려 반드시 원리를 알고 먹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음식을 어렵고 다가가기 힘든 것으로 만든다”고 주장했다. 한편 그는 “분자 요리를 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요리의 레시피보다 요리에 활용된 원리를 알아야 한다”며 “화학 이론을 바탕으로 한 기본적인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에 수많은 경험과 공부를 해야 한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분자 미식학의 발전을 의술에 빗댄 김 셰프의 말처럼 과학적 이론과 셰프의 창의성이 결합된 분자 요리는 기존의 요리를 넘어 식감과 향, 맛 전반에서 신선함을 더하고 있다.

*알긴산: 해조류에 함유돼 있는 다당류의 일종

*에스푸마: 스페인어로 거품과 무스를 지칭. 여기서는 질소 캔에 재료를 넣고 거품처럼 뽑아내는 요리 기법을 뜻함.

*트랜스글루타미네이스: 단백질 내부의 아미노산의 잔여물인 라이신과 글루타민 사이의 공유결합의 형성을 촉진시키는 효소.

사진: 대학신문 snupress@snu.kr

영상 제작: 신동준 기자 sdj3862@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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