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연극회 “한여름 밤의 무대”를 보고 나서
총연극회 “한여름 밤의 무대”를 보고 나서
  • 대학신문
  • 승인 2018.09.16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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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총연극회에 처음 들어왔을 때 관악에는 연극을 할 수 있는 적절한 소극장이 없었습니다. 문화관에 소극장이 있었지만, 그곳은 객석의 경사가 급해서 뒤에 앉는 관객은 배우의 머리만 볼 뿐, 얼굴 표정과 몸짓은 제대로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연우들은 문화관 대강당의 거대한 무대 위에 공연을 위한 아늑한 무대를 짓고, 객석도 쌓았습니다. 그곳은 극장 안의 극장이었고, 총연극회의 작품은 이미 극중극이었습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두레문예관이 지어졌고, 총연극회의 정기공연 “에쿠우스”(피터 셰퍼 작)로 개관을 기념했습니다. 몇 년 전에는 인문대학 14동 건물의 지하에 멋진 소극장이 탄생했고, 역시 총연극회의 정기공연 “십이야”(윌리엄 셰익스피어 작)와 함께 개장의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이제는 관악의 여러 곳에 공연장이 있기 때문에, 이번 정기공연 “한여름 밤의 무대”가 학생회관 라운지에서 열린다는 사실을 저는 약간 의아하게 여겼습니다. 다른 연극회에서 좋은 공연장들을 선점해서 그런가 보다고 생각하며 저는 라운지로 들어섰습니다. 첫인상이 매우 신선했습니다. 원래 라운지에는 1미터 정도 높이의 작은 무대가 있고, 나머지 넓은 공간에는 긴 의자들이 놓여있습니다. 그런데 공연팀은 그 공간의 일부와 무대에 객석을 쌓았고, 넓은 공간에 무대를 지었습니다. 객석 간에 적절한 높이차가 있기 때문에, 뒤에 앉는 관객들도 편안히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하지만 공연을 보고 나니, 이렇게 거꾸로 된 구조가 단순히 관객의 시야를 위한 것만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됐습니다.

관객들이 계속 입장하는 가운데, 한 명의 배우가, 아니 무대 스텝이 무대 위에서, 아니 라운지에서 연기를, 아니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무대가 된 라운지에서 작업하는 무대 스텝을 연기하는 배우였습니다. 그렇게 공연은 암전이나 개막 없이 시작되었고, 관객들의 일상은 배우들의 연극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배우(배우2)와 연출을 연기하는 배우1들이 등장했고, 그들은 “지루한 이야기”(안톤 체홉 작)를 연습하기 시작했습니다. 배우2들은 공연의 리허설이 내일로 닥쳤는데도 긴장감이나 집중력이 부족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연습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배우1들이 연기를 못 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배우2들이 건성으로 연습하는 연기를 하는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좋은 공연이 나올지 조금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배우2들이 “지루한 이야기”(안톤 체홉 작)를 건성으로 연습하고 있을 때, 고대 그리스의 국왕과 왕비 및 연인들 그리고 요정들을 자처하는 배우1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배우2들이 볼 때도 배우1이기 때문에 배우3들입니다. 처음에 배우2들은 배우3들이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만, 배우3들의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흠뻑 빠져듭니다. 결국 배우2들은 배우3들의 이야기를 공연으로 만들기로 결정하고 연습을 시작합니다. 먼저 배우3들이 이야기를 재현하고, 배우2들이 그 재현을 재현(연기)합니다. 그 과정에서 배우2들과 배우3들은 서로 티격태격하지만, 점차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게 됩니다. 재현과 재재현(再再現)의 융합으로 하나의 멋진 공연이 피어납니다. 그때 국왕과 왕비는 결혼식을 올립니다.

결혼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한 배우3와 무대 스텝이 2인극을 올립니다. 이들은 배우3가 볼 때에도 배우1이기 때문에, 배우4입니다. 이들은 등장인물뿐만 아니라, 동물과 배경도 함께 연기하기 때문에, 그들의 공연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이러한 공연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상상력이 필요한데, 꽉 막힌 국왕(배우3)에게 공연은 너무 어렵습니다. 그래서 2인극은 중단되고 무대 위의 모든 이들은 피로연장으로 떠납니다. 무대 스텝 홀로 무대에 남습니다. 그가 배우1인지 아니면 배우2인지, 혹은 배우3인지 아니면 배우4인지는 분명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습니다. 공연이 끝나가는 지금 그 네 단계는 하나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무대 스텝은 라운지의 무대에서 그 무대의 모형을 정돈합니다. 그리고 그는 고개를 들어 라운지의 조명을 힘차게 바라봅니다. 암전과 함께 관객(배우-1)들의 힘찬 박수가 울립니다.

관객을 배우0가 아니라 배우-1로 보는 이유는 이번 공연팀이 원래 라운지의 무대 위에 객석을 쌓았기 때문입니다. 공연 처음부터 관객은 무대 위에 있었고, 거꾸로 된 배우(배우-1)였던 것입니다. 라운지의 모든 사람이 배우였습니다. 이렇게 모두를 배우로 만드는 데 기여한 또 한 사람은 이번 공연의 총기획을 맡은 박지나 연우였습니다. 총기획이 무대에 등장해 배우2들의 기획도 연기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그와 같은 세계를 살아가는 관객들도 공연 속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또 관객들을 공연 속으로 빨아들인 것은 배우들의 군무였습니다. 강렬한 심장 박동 소리에 맞춰 배우들이 힘찬 몸짓을 보여주었습니다. 군무는 배우들과 관객들 서로의 가슴이 뜨겁게 하나가 되는 멋진 장면이었습니다. 그렇게 막을 내린 공연은 배우와 관객 모두에게 넘치는 기쁨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저에게도 전해진 그 기쁨 때문에 저는 이 글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참으로 뜨거웠던 한여름에 이렇게 빛나는 무대를 만들어낸 총연극회의 연우들의 노고에 심심한 경의를 표합니다.

 

한충수 교수(이화여대 철학과)

기계항공공학부·02년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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