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현 강의교수

기초교육원

교육에서 평가는 왜 필요한가? 애초에 교육의 필요성, 즉 무언가를 배우고 가르쳐야 하는 이유는 인류가 그 무언가를 할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무언가’는 수렵, 채취, 농경 등 생명체로 살아야 하는 인간이 생존을 위해 익혀야 하는 것일 수도 있고, 문학, 역사, 철학 등 사회를 이뤄 살아야 하는 인간이 제도를 갖추기 위해 필요한 것일 수도 있고, 과학, 기술, 예술 등 문명을 이룩해야 하는 인간이 삶의 진화를 위해 익혀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 주변의 교육 현장에서 그 ‘무언가’가 사라지고 ‘평가’가 자리 잡았다. 사실 평가는 교육 과정의 자연스러운 일부분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한 명의 멋진 예비 농부를 키워낸다고 할 때, 그 과정은 일정한 교육 계획에 따른 지도와 관찰과 조언의 연속적 상호 과정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교육 과정으로서의 평가가 아니라 교육 결과로서의 평가다. 일정한 교육을 마친 후, 성취의 수준과 획득된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 만약 이 같은 평가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진행된 교육의 효과를 확인하고 교육의 목표와 과정이 잘 이뤄졌는지를 점검하는 한편, 학습자 스스로 자신의 성취 정도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그 평가는 본래의 의미와 목적을 넘어 무언가의 ‘선발’과 연결돼 있다.

선발과 연결된 평가의 최고 가치는 공정성과 변별성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이 같은 가치들에 대한 강조는 평가를 그 본래의 출발점인 교육으로부터 유리시킨다. ‘변별’하고 ‘공정’하기 위한 장치들이 교육의 한 과정이자 매개인 평가를 교육에서 독립된 자기 목적의 무언가로 계속 탈바꿈시키기 때문이다. 대학교육에서 성적 등급별 제한제인 상대 평가제의 도입과 확산은 평가가 교육의 목표와 과정을 이탈해 평가를 위한 평가로 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서울대에서 교양교과목에 대한 상대 평가제는 2000년대 들어 한국 사회에 대졸자 취업난이 심해지면서 대학 간 성적 부풀리기가 성행하게 되자 이에 대한 반성 내지 시정을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도입되었다. 하지만 나는 이때 서울대가 상대평가제를 도입하기보다 각 과목의 실라버스를 공개하고, 평가의 기준과 내용을 밝히는 방향으로 대응을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상대평가제가 평가의 공정성과 변별성을 확보하는 데 가장 효율적인 제도라면(사실 상대평가제의 공정성과 변별성이란 것도 엄밀히 말하면 실질적 공정성과 변별성이 아니다. 상대적으로 이의 제기가 적은 명목적·논리적 공정성과 변별성일 뿐이다.), 절대평가제는 교육의 목표와 과정에 충실해 평가를 진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교육 본질에 좀 더 부합하는 평가 방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절대평가제 역시 그 자체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평가의 결과가 또 다른 선발의 근거가 되고 그 선발의 과정이 치열하면 할수록 절대평가 역시, 요구되는 공정성과 변별성을 담아내기 위해 정량화되고 세밀해질 수밖에 없다.

교육이 본래의 필요와 목적에 맞게 발전해, 사회에 필요한 인적 자원을 배양하고 진정으로 학습자의 성장과 자아실현을 돕는 과정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평가의 결과가 또 다른 선발의 근거가 되는 고리를 끊어야 한다. 교육 평가는 공정과 변별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삼기에는 본질적으로 개별적이고 특성적이다. 교육의 위상은 그 평가 결과가 다른 선발의 근거가 되는 것으로서 찾을 게 아니라 어떤 교육을 하느냐에서 찾아져야 한다. 누구를 어떻게 뽑을 것인지는 뽑는 사람들이 진지하고 치열하게 고민해 결정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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