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 여름, 서울대는 도쿄와 베이징, 모스크바에 169명의 학생을 파견하며 ‘SNU in the World’(스누인) 프로그램을 출범시켰다. 이후 지난 6년간 스누인 프로그램은 규모 면으로 보나 다양성 면으로 보나 급격하게 성장해왔다. 세 개에 불과했던 파견 도시는 런던, 파리, 실리콘밸리, 워싱턴 등 총 14개 도시로 다양해졌으며, 이에 따라 파견 학생 규모 역시 지난해 기준으로 총 377명으로 크게 확대됐다. 이처럼 스누인은 양적으로 급성장하며 명실상부한 서울대의 국제교류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으며, 성낙인 전 총장 역시 퇴임 인터뷰에서 서울대의 국제화와 관련된 자신의 주요 업적으로 이 프로그램을 꼽기도 했다. (『대학신문』 2018년 5월 21일자) 하지만 그 양적인 성장 이면에 프로그램에 대한 지적도 존재한다. 프로그램 초기에 비해 학생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점점 늘어났으며, 프로그램의 구성 측면에서도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불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학신문』에서는 지난여름 ‘스누인 실리콘밸리’(실리콘밸리) 프로그램에 참가한 기자가 느낀 스누인 프로그램의 현주소를 지면을 통해 전달하고자 한다.




스누인(SNU人)이 스누인(SNU in)에 참가하기까지

스누인 프로그램은 매 방학마다 진행된다.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에는 서로 다른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현재 여름방학엔 베이징, 파리, 런던 등 8개 도시에서, 겨울방학엔 워싱턴, 제네바, 비엔나 등 6개 도시에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이 가운데 기자가 참가한 실리콘밸리 프로그램은 작년 여름에 시작된 프로그램으로, 창업의 요람으로 유명한 실리콘밸리에서 학생들에게 창업가 정신을 심어주고자 기획됐다. 각 프로그램은 학기 초 선발 공고가 이뤄진 후 공인 영어성적과 자기소개서, 성적을 바탕으로 서류평가가 이뤄지나, 영어성적은 최저 점수(토익 기준 700점)만 넘으면 반영되지 않는다. 이후 서류평가 합격자들을 대상으로 한 면접을 통해 최종적으로 참가자들이 선발되며, 실리콘밸리 프로그램의 경우 지원 동기와 창업과 관련된 경험이 있는지에 대한 영어면접을 실시했다. 선발된 최종 합격자들은 참가 등록비를 납부해야 하는데, 금액은 프로그램별로 상이하지만 실리콘밸리 프로그램이 100만원으로 가장 높았다.

하지만 갈수록 참가자들에 대한 재정적 지원은 줄어들고 있다. 실제로 높은 참가 등록비와 함께 항공권 역시 오로지 개인이 부담하는 등, 국제협력본부에서 항공권을 일부 지원했던 이전과 비교해 재정적 문턱이 높아졌다. 이에 대해 국제협력본부 구민교 본부장(행정대학원)은 “스누인 프로그램에 소요되는 전체 예산은 오히려 늘었으나 과거에 비해 프로그램 및 참가 학생의 수가 늘어나면서 학생 일인당 지원되는 금액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한편 국제협력본부는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겐 많은 지원을 함으로써 재정적인 문제로 참가하지 못하는 학생이 없도록 힘쓰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자 및 차상위 계층, 소득 1분위 학생들에겐 참가 등록비 및 항공권을 전액 지원했으며, 이 외에도 일부 학생들을 별도로 선발해 항공권의 50%나 활동비를 추가로 지원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실리콘밸리 프로그램의 참가 등록비가 다른 프로그램에 비해 유독 높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실리콘밸리 일대의 높은 물가 수준을 고려할 때 상식적인 수준이라는 반론이 나온다. 구민교 본부장은 “스누인 프로그램 중 일인당 가장 많은 예산이 투입된 프로그램이 바로 실리콘밸리”라고 밝혔다. 실제로 국제협력본부는 실리콘밸리 프로그램 참가자 22명 전원에게 2주간의 숙박(스탠퍼드대 기숙사) 및 식사(스탠퍼드대 학생 식당)를 제공하는 등 활동 경비 전액을 지원한 바 있다.




강의 위주의 교육,과연 유의미했나?

실리콘밸리 프로그램은 출국 전 서울대에서 이뤄진 1주간의 사전교육(총 20시간)과 이후 스탠퍼드대를 중심으로 실리콘밸리 일대에서 진행된 2주간의 현지 활동(총 60시간)으로 구성됐다. 이 가운데 사전교육의 80%(16시간)와 현지 활동의 70%(42시간)가 창업 관련 강의로 구성될 만큼 강의는 이번 프로그램의 주된 활동이었다. 하지만 강의의 질적 측면에서 여러 아쉬움이 남았는데, 가장 먼저 강의 내용이 중복된다는 지적이 많았다. 실제로 사전교육 당시 기술지주회사 관계자의 특허법 관련 강의 내용은 현지에서 진행된 특허법 전문 변호사의 강연 내용과 상당 부분 겹쳤으며, ‘디자인 씽킹’*은 현지에서 진행된 거의 모든 강의에서 중복해서 다뤘다. 이에 대해 실리콘밸리 프로그램 주임교수인 서승우 교수(전기·정보공학부)는 “사전에 강연자들의 강의 내용을 미리 점검하지 못해서 생긴 일”이라며 “다음부턴 강의 내용을 미리 받아본 후 중복되는 내용들이 없는지 확인해서 있다면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강의가 지나치게 이론 위주로 치중됐다는 것 역시 아쉬운 점으로 꼽혔다. 일례로 현지에서 진행된 42시간의 강의 가운데 대부분의 강의에서 디자인 씽킹 이론에 대해 다뤘지만, 이 방법론을 실제로 적용해보는 실습 시간은 단 3시간에 그쳤다. 이런 문제는 강연자 풀이 창업 경험을 바탕으로 현장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달해줄 수 있는 창업가가 아닌 주로 스탠퍼드대를 비롯한 대학 교수들로 구성됐다는 점과도 무관치 않다. 이에 대해 서승우 교수는 “이번 프로그램을 스탠퍼드대와 함께 추진하면서 스탠퍼드대가 강연자의 절반 이상을 자대 교수로 구성하라는 조건을 내걸어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강의실 바깥에서 만난 실리콘밸리

2주 동안 진행된 프로그램 기간 가운데 스탠퍼드대 안팎의 창업 관련 현장을 방문하는 시간은 단 이틀뿐이었다. 참가자들은 디자인 씽킹의 본산인 스탠퍼드대의 ‘디스쿨’(d-school)을 비롯해 실리콘밸리 일대에 위치한 구글, 애플, 삼성 등의 기업을 방문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수박 겉핥기식으로 진행됐다. 디스쿨의 경우 내부를 살펴볼 수는 있었으나 전문가의 설명 없이 개별적으로 둘러보는 것에 그쳤으며, 애플은 아예 본사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인근 애플스토어에서 본사 전경을 구경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이에 대해 서승우 교수는 “대부분의 기업이 방문 시 한 명의 직원이 인솔할 수 있는 인원이 제한돼있다”며 “20명이 넘는 인원이 한꺼번에 기업을 방문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외에 구글과 삼성의 경우 재직 중인 직원들의 안내를 받으면서 본사 내부를 살펴볼 수는 있었으나, 직원들을 위한 편의시설 및 방문자 센터 등 몇몇 구역을 둘러보는 것에 그쳤다.

구글·애플·테슬라 등 실리콘밸리 일대의 기업에서 활약하고 있는 우리 동문들을 만나는 ‘선배와의 대화’ 행사는 총 4차례 준비됐는데, 이는 강의 및 기업방문을 통해선 현업 종사자들과 실질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기회가 부족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서였다. 저녁식사 후 맥주를 곁들이며 진행된 선배와의 대화는 특별한 형식 없이 참가자들이 자유롭게 질문하고 이에 대해 선배들이 답변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원래 매회 1시간으로 계획된 행사였지만, 참가자들과 선배들의 질의응답이 끊이지 않은 탓에 두 시간을 훌쩍 넘겨 끝나기 일쑤였다. 더욱이 행사가 끝나고 참가자들이 관심 있는 선배들과 연락처를 교환하는 경우도 많았고, 실제로 일부 참가자들은 연락처를 교환한 선배들과 추가로 연락을 이어가기도 했다. 비교적 많은 참가자들에게 만족도가 높았던 선배와의 대화였지만 초청된 선배들의 구성이 편중됐다는 한계도 있었다. 서승우 교수는 “거의 모든 선배들이 컴퓨터공학과를 비롯한 공대 출신의 엔지니어로 구성됐다”며 “경영 등 다양한 전공과 배경을 가진 선배들과 만날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점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팀 프로젝트는 실제 창업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실리콘밸리 프로그램 참가자들은 공식 프로그램 외에도 참가자들이 2-3명씩 조를 이뤄 창업 아이템을 발굴하고 이를 구체화하는 프로젝트를 병행해야만 했다. 팀 프로젝트는 3학점의 성적이 부여되는 이번 프로그램의 주요 평가 기준이었던 만큼 중요한 활동이었지만,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아 졸속으로 진행됐다는 지적이 있었다. 실제로 이와 비슷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다학제 창의적 제품개발’ 수업의 경우 정규학기에 개설돼 3개월 남짓 동안 진행된다. 반면 이번 프로그램에선 현지 활동 2주 만에 아이디어를 공학적으로 구체화시킨 후 이를 상품화해 발표까지 마무리해야 했으며, 더욱이 강의 및 기업 방문, 선배와의 대화 등 공식 일정이 빡빡하게 짜인 탓에 프로젝트를 위한 팀별 논의 시간도 충분히 주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서승우 교수는 “참가자 선발을 일찍 완료해서 프로젝트를 한국에서부터 미리 시작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팀별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적절한 피드백을 거의 받지 못했다는 점 역시 아쉬운 점이었다. 현지에서 2주간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마지막 날 최종 발표가 있기까지 중간점검을 위한 2번의 발표가 있었지만, 발표 직후 5분가량 참가자들 간 질의응답이 있었을 뿐 지도교수 및 전문가들의 피드백은 주어지지 않았다. 더욱이 실리콘밸리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임에도 불구하고 프로젝트와 관련해 실리콘밸리 현지의 창업가 및 엔지니어 등 전문가들과 함께 논의하고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기회 역시 전무했다.

 

사진제공: 양동욱 씨((전기·정보공학부 석·박사통합과정·16)

시작된 지 불과 6년 만에 명실상부한 서울대의 대표적인 국제교류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은 스누인 프로그램이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다. 참가자들은 스누인 프로그램의 가장 큰 문제가 강의·팀 프로젝트 등 한국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내용들로 구성된다는 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서승우 교수는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실리콘밸리 일대를 탐방하면서 창업가들을 만나고 교류하는 등, 실리콘밸리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을 하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스누인 프로그램에서 우리 학생들이 현지인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는 점 역시 한계로 꼽힌다. 구민교 본부장도 “현재 각 프로그램은 활동 도시에 협정을 맺은 학교가 있지만, 상대교와의 인적 교류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중장기적으론 우리와 상대교의 학생들이 서로 교류할 수 있는 쌍방향적 프로그램으로 만들고자 한다”고 밝혔다. 앞으로 더 많은 학생들이 스누인 프로그램을 통해 단지 유명한 도시를 가봤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한국에선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본다.

*디자인 씽킹(Design Thinking): 디자이너들이 디자인 과정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처음 사용한 브레인스토밍 방법론으로, 창업가들이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이를 발전시켜 실제 상품 및 서비스로 구현시킬 때 중요하게 활용되고 있다.

 

레이아웃: 강세령 기자 tomato94@snu.kr

삽화: 권민주 기자 kmj4742@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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