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훈 기자

사회부

스스로 뜨거운 눈물을 가진 사람이라 생각했다. 세상 풍파에 부당한 처사를 받은 사람 곁에서 함께 울고 함께 걸을 수 있다고 믿었다. 사회부 기자를 지망한 이유도 세상이 약자에게 공감하게끔 기사를 쓰겠다는 결심에 있었다. 하지만 이제야 돌이켜 생각해본다. 나의 결심은 얼마나 나약했으며, 공감의 깊이는 얼마나 얕았는가.

첫 인터뷰에서 취재원은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병역거부로 재판에 회부된 사람답지 않았다. 울분에 찬 목소리로 억울함을 토해낼 거라 생각했건만 그렇지 않았다. 갸웃하며 질문을 시작했고 그의 차분한 답변에 더욱 당황했다. 이제껏 겪은 고통을 묻자 그는 꾸밈없이 답했고, 세상의 시선이 야속하지 않냐고 묻자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듯 담담한 목소리였다. 다음 취재원, 그다음 취재원도 마찬가지였다. 한밤중 키보드에 손을 올리곤 고민했다. 그들의 고통이 극심할 것이란 예상이 틀린 건가, 어떤 멘트를 기사에 담아야 가장 호소력 있을까. 독자의 이목을 끌기에 그들의 이야기는 어딘가 심심했다.

양심적 병역거부가 인정받을 수 있도록 힘써온 변호사를 만나 물었다. 병역거부 당사자에게 불편함과 고통을 들었는데, 혹시 더 큰 고충에 대해 알고 있느냐고 말이다. 변호사는 잠시 내 눈을 바라보고는 조심스럽게 답했다. 무엇이 더 있어야 하냐고. 무심한 답변이었는데 순간 얼굴 밑이 화끈해져 얼른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런 나를 두고 그가 덧붙였다. 20대에 전과자가 된 삶 자체가 고통일 거라고. 설명할 수 없는 부끄러움이 차올라 이어진 인터뷰에 집중하지 못했다.

사실 나 자신부터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하지 못했다. 평화를 지향한다는 신념과 총을 들 수 없다는 결심을 들으며 순진한 생각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어떻게든 그들의 고통을 들으려 했다. 그들이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된다면 양심의 무게를 가늠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아픔에도 공감하지 못했다. 징역을 살고, 취직하지 못하고, 미래를 계획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도 더 자극적인 멘트를 찾아 헤맸다. 그들의 차분한 어조는 그리 힘들지 않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억측했다. 오랜 시간 절망적인 미래를 떠올리며 괴로워했기에 담담하게 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들이 짊어진 고통의 십 분의 일도 감당 못 할 나약한 내가, 멋대로 그들의 고통을 평가했다.

문득 우리 사회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이유는 휴전이라는 외부적 장애물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전쟁 없는 평화로운 국가였다 한들 그들의 간절한 신념을 이해 못 하는 사회가 병역거부자들을 배려할 수 있을까. 아마 마음과 시야가 좁아 자신이 선 곳 한 치 바깥도 바라보지 못하는, 아니 바라볼 노력조차 하지 못하는 나와 같은 사람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시 회고한다. 나의 공감의 깊이는 얼마나 얄팍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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