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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더하기 ‘SF’당신이 몰랐던 중국 예술 ①: 중국 SF 문학
  • 박재우 기자
  • 승인 2018.10.07 14:40
  • 수정 2018.10.07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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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예술은 우리에게 가까우면서 멀다. 사람들은 보통 중국에 대해 환경 문제, 산업, 인구와 같은 ‘하드 파워’를 떠올리지 예술, 학문과 같은 ‘소프트 파워’를 떠올리지 않는다. 실제 중국의 근현대 예술은 검열, 이념, 전쟁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많은 탄압을 받아왔다. 이로 인해 중국의 예술 하면 형식적인 경극, 변검, 혹은 천편일률적인 선전 영화가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중국에는 전형적 이미지 외에도 기존의 관습을 답습하지 않고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나가는 예술가들이 많이 존재한다. 이에 『대학신문』에서는 3번에 걸쳐 그동안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중국의 문학, 미술과 영화 분야를 소개하고자 한다. 오늘은 첫 순서로 중국 문학, 그중에서도 SF 문학을 다룬다. 중국의 SF 문학은 특유의 중국적 감성과 과학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하는 동시에 오늘날 중국 사회의 고민을 담은 소재로 독자에게 흥미를 유발한다.




중국과 SF의 기묘하고 오래된 결합

갑자기 눈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숫자들이 나타나고, 주변에서는 이론 물리학자들이 의심스러운 죽음을 맞이한다. 주인공의 눈에는 인류가 쌓아온 기초 물리학 지식으로 해결할 수 없는 현상이 계속해서 나타난다. 이내 주인공은 과학자들의 죽음이 온라인 가상현실 게임 ‘삼체’ 그리고 과거 비밀리에 진행되던 외계 탐사 프로젝트 ‘홍안’과 관련됐음을 짐작하고 숨겨진 비밀을 추적하기에 나선다. 중국 SF 작가 류츠신의 『삼체』 1부의 전반부 내용이다. 여기서 시작된 소설은 자연과학 지식을 날실로, 사랑부터 문명의 본질에 이르는 매혹적인 서사를 씨실로 엮은 채 400년이라는 긴 호흡으로 전개된다.

최근 중국 작가 류츠신과 하오징팡이 각각 SF 소설계의 노벨 문학상이라 할 수 있는 휴고상을 2년 연속 수상하며, 중국 SF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 작년 11월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삼체』의 휴고상 수상 이후 중국 SF가 ‘황금시대’에 들어섰다고 평가했다. 이제 영미권 독자들은 ‘스토리닷컴’과 같은 웹사이트를 통해 최신의 중국 SF 소설을 영어로 쉽게 접할 수 있다. 베이징 사범대학에서는 지난 수년간의 석사 과정 운영 경험을 이어 2015년 9월 SF 소설을 전공으로 한 첫 박사과정생을 받기도 했다. 서울SF아카이브 박상준 대표는 “아시아권 언어로 집필된 SF가 영어로 번역된 뒤 휴고상을 수상한 것은 일본 SF도 해내지 못 한 일”이라며 “중국 SF는 이제 시선을 끄는 정도지만 잠재력만큼은 현실 세계에서의 중국의 영향력과 맞물려 높이 평가된다”고 설명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중국 SF는 오래전부터 굴곡 많은 중국 근현대사의 흐름을 따라 성장했다 탄압받기를 반복해왔다. 근대적 의미의 중국 과학 소설은 19세기 말 서양의 근대 과학과 가치관을 소개하는 계몽 문학으로 시작됐다. 1949년 신중국 성립 이후, SF 소설은 사회주의 문학의 한 갈래로서 미래의 청사진을 인민에게 소개하고 이를 통해 중국이 지속해서 진보할 것이라는 신념을 심는 역할을 수행했다. 1958년 정원광은 『공산주의에 바치는 카프리치오*』에서 ‘공산주의 첨단과학 사회’가 완성된 1979년의 천안문 풍경을 배경 삼아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아, 과학과 기술로 가능해진 환상적인 장면들이여!” 그러나 8년 뒤 시작된 문화대혁명은 과학 기술에 대한 설익은 낙관론을 모두 앗아갔다. ‘서구 자본주의’와 관련 있는 모든 것들이 부정됐다. ‘한중SF문화교류’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는 웹진 「거울」의 김주영 작가는 “중국 SF에는 기아나 생존에 관한 소재가 유독 많다”며 “작품을 읽으면서 중국 근현대사의 비극이 작가들의 무의식에 반영돼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1970년대 말 개방이 진행되고 외국 작품들이 속속 번역됐다. 다시 활기를 찾은 중국 SF는 ‘제1의 전성기’를 맞이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탄압을 겪어야 했다. 아이의 시선으로 미래에 대한 밝은 전망을 담은 예융례의 『미래를 향한 짧고 영리한 방랑』은 150만 부가 넘는 판매고를 올렸고 만화로 각색돼 150만 부가 더 팔렸다. 통은정의 대표작 『코랄 아일랜드의 죽은 빛』은 1980년 같은 제목을 가진 중국 최초의 SF 영화로 각색됐다. 문화대혁명으로 사라졌던 근대화에 대한 열의가 되살아나 그대로 문학에 반영된 것이다. 그러나 SF 문학은 1983년 덩샤오핑에게 자본주의와 상업주의적 요소가 강하다는 비판을 받고 반정신오염운동의 투쟁 대상으로 지목받았다. 10여 년 간 시련을 겪은 뒤 9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온라인 팬덤을 중심으로 자생적인 창작 문화가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현재 중국 SF의 ‘황금시대’를 이루고 있는 3~40대 작가 다수가 이 당시 온라인 팬덤에서 활동하던 소위 ‘덕후’들이다. 김 작가는 “중국 SF 팬덤은 젊음과 열정을 지니고 있고 매우 적극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며 “「거울」과 한중SF문화교류 프로젝트를 진행한 미래관리사무국(FAA)의 공동설립자인 지사오팅이나 리자오신 역시 열혈 SF 팬인 30대 전후의 젊은이”라고 말했다.

물론 중국 SF계의 상황이 마냥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SF 최강자라 할 수 있는 미국에 비교했을 때 작가 수나 시장 규모에서 상당한 차이가 난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무의식적인 자기 검열 문제도 있다. 김 작가는 “한중SF교류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중 폭력적인 표현이 문제가 돼 수정 논의를 한 적이 있다”며 “단순한 표현으로도 검열을 우려해야 하는 중국 작가들의 어려움을 생각했다”고 귀띔했다. 『증허락』 『장상사』 등 다수의 중국 SF 작품을 번역한 바 있는 이소정 번역가는 “한 중국 작가의 작품을 평하는 글에서 ‘족쇄와 수갑을 찬 채 춤을 춘다’는 표현을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 SF를 읽을 때면, 족쇄와 수갑을 찬 채로 알레고리를 만들기 위해 정교한 세계관을 짜내는 작가들을 상상하게 된다”며 “중국 SF 소설 전체에 어울리는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중국이 만든 SF, SF가 그리는 중국

새로운 시공간 차원에 대한 상상력을 핵심으로 하는 SF에서 작품 간 공통점을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이소정 번역가는 “사회는 작가를 만들고 문학은 사회를 반영한다”며 “중국 사회를 깊이 이해할수록 중국 SF를 이해하게 되고, 또 그 역도 성립한다”고 강조했다. 『삼체』를 번역한 이현아 번역가는 “작가마다 고유의 작품세계가 있고, 시대마다 경향이 다르다”고 전제한 뒤 “중국 SF 작품들은 전체적으로 미래 세계에 대한 상상보다 과거나 당대의 시대적 고민과 이야기를 SF로 풀어낸 작품이 많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귀신부터 차(茶)까지=불교의 색즉시공(色卽是空), 귀신 이야기, 도교 선사와 같은 전통적 요소는 중국 SF를 서구 SF와 구분 짓는 가장 확실한 표식이다. 샤쟈의 「하늘」이 대표적이다. 「하늘」은 살던 지역이 물에 가라앉은 후, 보트에서 혼자 사는 소녀가 주인공인 소설이다. 이 소녀는 아침에 일어나면 자신을 위해 차를 ‘끓인다.’ 그러나 손님이 찾아오면 정성껏 모아둔 빗물을 끓이고 다구와 아껴둔 비싼 찻잎을 꺼내 정식으로 차를 ‘우린다’. 이소정 번역가는 “독자가 차를 끓이는 것과 우리는 것의 구분을 알면 이야기에 대한 이해가 한층 깊어진다”며 “또 옛 중국에서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로 차를 우리면 강물 특유의 비린내도 우물물 특유의 억센 느낌도 없다’해서 눈을 녹인 물이나 빗물로 차를 우리는 것을 최상의 손님 대접 중 하나로 쳤다는 것까지 안다면 느낌이 많이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주인공 소녀가 암울한 상황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고 손님을 대접하는 성격이라는 사실을 차를 대접하는 소소한 묘사만으로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판하이텐의 「기아의 탑」에서는 색즉시공의 불교 이미지가 등장하고, 한송의 「지하철의 충격」에서 섬뜩하게 묘사되는 돌연변이 문명의 모습은 춘추전국시대 『산해경』* 속 가상의 괴물을 떠올리게 한다. 샤지의 또 다른 작품 「오늘 밤 수백의 귀신들이 행진한다」는 닐 게이먼의 『그레이브야드 북』과 중국 귀신 이야기,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 등 앞선 작품들의 순간적인 이미지들을 차용해 복합적으로 그려낸다.

◇SF, 중국의 고민을 벗기다=90년대 후반 이후 중국 SF 소설은 ‘세계화 시대 속 국가적 우화’라고 불릴 정도로 세계화가 자신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깊이 천착했다. 1987년 예융례는 「새벽의 차가운 꿈」이란 제목의 단편을 발표했다. 주인공은 추운 겨울 난방 없이 잠을 자는 괴로운 상태에서 여러 과학적 상상을 펼친다. 그러나 자가 검토 결과 모든 전망은 실행 불가능해 거부되고 주인공은 울부짖는다. “현실과 환상이라는 연인 사이를 가르는 수천 마일의 거리여!” 그 거리는 공산주의의 환상에서 깨어난 중국인들이 미래에 대해 갖는 불안과 걱정을 나타낸다. 천쥬판의 「모래부리의 꽃」은 선진 부근 해안 어촌에 사이버펑크의 어두운 분위기를 깔아놓는데, 가상의 마을 ‘모래부리’는 세계화된 세상의 축소판이다.

일상 소재를 SF 문학이라는 틀에 적절하게 녹여 현대성의 압박을 고민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첨단 기술의 발전과 감시, 환경 오염, 불평등 등이 소재가 된다. 김주영 작가는 “새로운 세계관을 창조하길 즐기는 기존 SF에 비교해 중국 SF 문학은 현실 사회, ‘지금 여기’의 삶에 대한 관념적 사유를 풀어내는 데 능하다”고 설명했다. 천쥬펀은 「스모그 사회」에서 스모그 지수와 중국인 행복 지수 간에 물리적인 인과 관계가 도입된 세상을 상상한다. 주식 시장에서 돈을 많이 잃은 불행한 투자자는 스모그를 많이 발생시켜 증권 거래소 기능을 마비시킨다. 하오징팡의 「북경절첩」에서는 농민공* 문제가 다뤄진다. ‘베이징의 밤은 항상 접힌다’는 제목을 가진 이 소설은 같은 베이징에 살면서도 시간과 공간이 물리적으로 분리된 계급 사회를 묘사한다. 시간적 배경은 미래이지만 소설은 비교적 분명하게 현재 중국 사회의 불평등 실태를 드러낸다.




쿵푸에서 SF로

중국 SF가 주목을 받으면서 소설 속 세계를 스크린으로 옮기려는 시도도 활발하다. 중국 뉴스 통신 QDaily는 2016년 1월부터 8개월 동안만 85개의 SF 영화 프로젝트가 착수됐다고 전했다. 그중 할리우드 자본과 연계해 진행되고 있는 작업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중국 영화계의 동향을 보도하는 미국의 ‘차이나 필름 인사이더’는 작년 8월 기사에서 최근 중국 SF의 잇따른 제작 흐름을 빗대 “중국 문화의 수출품이 쿵푸에서 SF로 넘어가고 있다”고 표현했다. 류츠신의 『삼체』를 6부작으로 영화화하는 작업은 구체화 단계에 들어섰다. 올해 4월에는 고대 중국의 설화에서 영감을 받아 켄 리우가 창작한 『숨은 소녀』가 미국 소재 영화 프로덕션 회사 ̒스튜디오 8̓에 의해 스릴러로 제작될 계획이라는 발표가 있었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중국 SF계는 SF 컨퍼런스 개최, 은하상 창설 등 SF 소설의 저변을 확대해 나가고자 지속적인 노력을 가하고 있다. 국제 교류 활동 역시 늘어가는 추세다. 한국 웹진 「거울」과 중국 미래관리사무국이 2017년부터 1년 동안 ‘한중SF문화교류’ 프로젝트를 벌인 바 있다. 김주영 작가는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동안 한국 SF 단편 14편과 중국 SF 12편이 교환됐다”고 소개한 뒤, “이전까지 양국에 소개된 한국 또는 중국 SF가 거의 없다시피 했음을 고려하면 놀라운 성과”라고 말했다. 프로젝트 종료 이후에는 한중 교류 경험을 살려 아시아SF협회가 조직되기도 했다.

지난 5월 베이징에서 열린 제1회 ‘아태과환대회’(APSFcon)에서는 14개국 100여 명의 인사가 이틀간 중국 SF 관계자 2000여 명과 상호 교류를 했다. 이 자리에서 〈매트릭스〉와 〈반지의 제왕〉 등의 제작에 참여했던 벤 하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중국에서 SF에 대한 사람들의 열정이 매우 높고 갈수록 우수한 SF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며 “향후 중국은 SF 산업 분야에서 매우 경쟁력 있는 국가가 될 수 있으며 중국의 SF 작가들과 협력해 더 많은 우수 작품을 창작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국내에서는 아직 중국 SF 문학에 대한 관심이 적다. 박상준 대표는 그 이유를 “중국의 장르 문학이라고 하면 ‘무협’이 제일 익숙하니 소개된 중국 SF 작품 자체가 적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중국 SF 문학은 분명 한국 독자를 사로잡을 수 있는 매력이 있다는 목소리도 크다. 이현아 번역가는 “중국 SF소설은 중국 특유의 시대상이 많이 반영된 것에서부터 ‘이게 SF인가?’ 싶을 정도로 도교와 불교적인 요소가 섞인 것까지 다채롭다”며 “중국에 대한 낯섦이 오히려 중국 SF의 매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한편 이소정 번역가는 “중국 SF에서 거대한 알레고리를 벗겨내면, 그 어느 장르보다 솔직한 중국인들의 목소리가 들린다”며 “한국 독자들이 중국인들의 목소리를 발견하는 기쁨을 꼭 누려봤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카프리치오: 리듬의 변화가 많고 자유분방하고 느슨한 구조의 악곡

*『산해경』: 중국 선진(先秦) 시대에 저술되었다고 추정되는 대표적인 신화집 및 지리서

*농민공: 70년대 말 개혁 개방의 흐름을 따라 낙후한 농촌을 떠나 도시 지역으로 일자리를 찾아온 이주민들. 농민 신분인 탓에 호적 제도상 여러 사회경제적 제약을 받는다.

삽화: 손지윤 기자 unoni0310@snu.kr

박재우 기자  jaypk@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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