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집회의 현장에서 그들의 심리를 읽다

지난 3일(수) 광화문 광장에서 9월 평양공동선언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번 시위의 공식 명칭은 ‘평양공동선언 무효촉구 및 문재인정권 규탄 국민대회’지만, 일반적으로 다른 우파 단체 시위와 함께 ‘태극기 집회’로 통칭된다. 이 태극기 집회의 참가자들은 탄핵 정국 이후 꾸준히 모여 문재인 정부를 성토하는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그들은 누구이며 그들이 이렇게 모이는 이유는 무엇인지, 집회 현장의 모습을 통해 『대학신문』이 살펴봤다.

기-승-전-‘색깔론’ 집회를 잠식하다

태극기 집회는 문재인 정권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뤘다. 그중에서도 집회에서 집중적으로 공격한 것은 정부의 대북 정책이다. 집회의 연사들은 최근 북한과의 관계가 급물살을 타며 조성되는 화해 분위기를 ‘쇼’로 지칭하며, 북한의 화전양면전술을 경계할 것을 당부했다. 집회 현장에서 만난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67)는 이전 정권 때도 대북 지원 논의는 있어 왔는데 정권이 바뀌었다고 유독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는 게 아니냐는 물음에 “이전 정권에서는 비핵화를 전제한 지원만을 논의했지, 지금처럼 말만 듣고 다 이루어진 양 들뜨진 않았다”고 답했다. 참가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노인들에 간간이 섞여 있는 청년들 역시 이 문제에는 깊이 공감하고 있었다. 노혜진 씨(32)는 “문재인 정권 초기부터 경제 정책이나 북에 우호적인 태도 등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올해 북한과의 행보를 보면 우리나라 대통령이 맞나 싶다”며 참여 이유를 밝혔다.

경제와 복지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집회에서 발언한 김도은 씨(23)는 “최저임금의 무분별한 상승과 선심성 복지 정책 때문에 시장경제가 무너진다”며 “문재인 정권은 국민보다 난민과 이슬람이 더 중요한 듯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최근 최저임금이 급격하게 오름에 따라 지난 8월에는 자영업자들이 규탄 시위를 벌였으며, 무분별한 난민 수용 중단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70만여 명의 동의를 얻기도 했다.

이렇듯 시위대의 주장 중에는 국민적 공감을 산 적이 있는 내용도 더러 있지만, 이들은 대부분의 국민에게 외면당하고 있다. 그들이 궁극적으로 주장하는 바가 맹목적 색깔론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집회의 한 연사는 문 대통령을 ‘빨갱이’라 지칭하며 문 대통령의 방북이 헌법 제84조의 외환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이외에도집회에서 등장하는 발언 내용의 대부분은 구체적인 상황 해결을 위한 대안 제시 없이, ‘빨갱이’, ‘적화통일’ 등의 자극적 단어를 통해 막연한 공포감을 조성하는 데 그쳤다. 시위대가 주장하는 주요 사항 중 하나인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석방 역시 대중의 공감을 사지 못하고 있다. 강원택 교수(정치외교학부)는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은 반공 이데올로기에 강하게 사로잡혀 있다”며 “북한에 대해 우호적‧유화적 입장을 보이는 정파에 대해서 강한 적개심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언론을 믿지 못해 믿지 못할 언론을 믿는다?

집회 참가자들은 기성 언론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일주일에 네다섯 번씩 집회에 나온다는 이철호 씨(60)는 “우리가 돈을 받고 나온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오히려 우리가 한 번 나올 때 만 원씩 내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는 탄핵 정국 당시 불거졌던 집회 참가자 금품 매수 의혹을 말하는 것으로, 언론이 자신들을 경제적 이유로 집회에 참가했다는 듯 묘사한 것에 대한 불만으로 풀이된다. 한 남성은 집회 참가 이유를 묻자 “어느 쪽에서 나온 사람인지 몰라 대답해줄 수 없다”며 “발언 의도를 왜곡해 보도하는 경우가 많으니 이해해 달라”고 답을 피하기도 했다.

기성 언론의 보도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은 다른 언론을 찾아 나섰다. 이철호 씨는 “지상파 뉴스는 거의 보지 않고, 유튜브 뉴스를 많이 본다”고 말했다. 여기서 유튜브 뉴스는 보수 성향의 유튜브 방송을 일컫는 것으로, 가장 잘 알려진 ‘펜앤드마이크 정규재TV’의 구독자 수는 KBS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에 맞먹는다. 집회 당일에도 비제이톨TV, 태극전사TV 등 다양한 유튜브 1인 방송인들이 현장을 촬영하거나 생중계하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규제가 덜하다는 유튜브의 특성이 가짜 뉴스 양산으로 이어진다는 데 있다. 실제로 23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한 보수 성향 유튜브 채널에는 ‘문재인, 평양에서도 건강 이상 징후 보였다!’ 등의 근거 없는 제목을 단 영상이 올라와 64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 2일(화) 국무회의에서 가짜 뉴스를 두고 “국론을 분열시키는 민주주의 교란범”이라며 단속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태극기 집회는 이대로 끝날까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서로를 ‘애국 시민’이라고 부르며, 공산화의 위협으로부터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처럼 여긴다. 하지만 집회 참가자들 역시 자신들의 요구가 무리하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다. 문재인 정권이 이 집회에서 요구하는 바를 받아들일 것 같냐는 질문에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문재인이 물러난다면 좋겠지만, 억지로 퇴진시킬 방법은 없다”며 “현실적으로는 독단적으로 종전 선언을 하는 것이라도 막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보수층 내에서의 분화도 태극기 집회의 한계로 꼽힌다. 강원택 교수는 박근혜 탄핵 사건을 기점으로 보수층이 박정희 정권의 향수를 간직하고 있는 ‘박정희 보수’와 그렇지 않은 ‘비박 보수’로 나뉘었다고 분석한다. 스스로 보수적이라 생각한다는 김모 씨(21)는 “시위 형식과 내용 측면에서 대중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도리어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며 태극기 집회의 방향성에 찬성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현재 태극기 집회의 실태와 관련해 “자유화와 민주화라는 시대적 변화와는 무관하게 박제된 박정희 시대의 신화에만 매몰돼선 더 이상 보수 이념이 지속 불가능하다”고 평가했다. 태극기 집회가 현재의 기조를 유지한다면, 그 끝은 모두가 외면하는 막다른 길임은 명확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함께 ‘박정희 신화’는 무너져 내렸다. 그에 대한 반발로 열리기 시작한 태극기 집회는 문재인 정권을 비판하는 나름의 이유를 대고 있었지만, 건설적 비판을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실제로는 공산주의에 대한 경계를 너무 강조한 나머지 반공이라는 또 다른 하나의 이데올로기에 갇혀 버리고 만 것이다. 기성 언론을 적으로 돌리고 자기들끼리 뭉치며 나름의 설 자리를 찾았지만, 오히려 더 고립될 뿐이었다. 이제 ‘박정희 보수’는 선택해야 한다. 태극기 집회라는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을 것인가, 시대의 변화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다시 새로운 가치를 찾을 것인가.

‘평양공동선언 무효촉구 및 문재인정권 규탄 국민대회’에서 1인 방송인들이 집회 장면을 생중계하고 있다.

사진: 신하정 기자 hshin15@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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