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 홍해인 기자 hsea97@snu.kr

“다스는 누구 것인가?” 이 해묵은 질문에 대한 답이 지난 금요일 이명박 전 대통령 1심 재판에서 드디어 나왔다. 비록 1심이긴 하지만 다스의 실소유자는 MB인 것이 무려 ‘넉넉하게’ 인정된다는 것이 재판부가 내린 결론이었다. 결국 재판부는 다스 횡령과 삼성 뇌물 등의 혐의로 MB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MB는 내 또래인 88년생 한국 사람들에겐 다소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사람이다. 2007년 당시 만 19세였던 우리 또래에겐 선거권을 가지자마자 처음으로 참여한 선거에서 뽑은 첫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소’라고 표현한 것은 그만큼 당시 내 또래에 투표를 포기한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부끄럽지만 나 역시 그런 사람 중에 속한다.

2007년 대선 당일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결코 기분 좋게 맞이한 날은 아니었다. 교내에서 많은 학생이 부재자투표 신청하라고 그렇게나 홍보했건만 하지 않았다. ‘어차피 종강할 거니 선거일 즈음에 고향에 내려가서 투표해야지’라고 다짐했던 마음도 옅어져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선거 당일을 맞이하고 말았다. 아침 늦게 일어나보니 휴대폰에 많지는 않았지만 투표 독려 문자가 몇 건 들어와 있었다.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 같은 데서도 그래도 투표는 하고 후회하자는 말들이 많았다. 그래서 순간 지금이라도 고향에 내려가서 투표할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귀찮음과 기차푯값, 무엇보다도 너무나도 명확하게 예상되는 대선 결과가 내 발목을 잡았다. ‘내가 투표해봤자…’라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기숙사 방에서 의미 없이 하루를 질질 보내다가 결국 오후 6시가 지나버렸다. 왠지 모르겠으나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선거 방송을 엄청나게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가족여행을 가든 어딜 가든 선거 방송은 꼭 챙겨봤다. 그런데 그날은 선거 방송도 뒤로 한 채 동기들과 녹두의 한 호프집에서 술잔을 기울였다. 그렇게 기차푯값은 술값이 되고 말았다. 선거 방송에선 도망칠 수 있었지만, 현실로부터는 도망칠 수 없었다. 늦게 술자리에 참석한 친구가 선거 방송에서 MB의 당선 유력이 떴다는 소식을 들고 왔다. 이제 이야깃거리는 MB에 관한 것이 돼버렸다. 비슷한 사람끼리 모여서 그랬던 걸까? 이야깃거리 대부분은 MB에 비판, 특히 BBK 사건에 대한 것이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지지하는 기성세대와 언론에 대한 회의감과 무력감 같은 것들이 오갔다. 나도 투표도 안 했으면서 나름 사회복지학과라고 입학해서 1년간 배운 얕은 지식을 총동원해 우리나라 사회복지는 이제 끝났다고 우울해했던 것이 기억난다. 결국 다들 얘기하면서 다다른 결론은 우리나라는 이제 망했고 각자 열심히 살자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습지만 당시에는 정말 다들 진지했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망하진 않았다. 농담이지만 나도 군복무 당시 MB가 정상회담 등으로 출국을 하면 비상근무를 서야 했던 것만 빼곤 직접적으론 피해본 건 없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상처는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있다. 그러나 그 일부분에 불과한 이번 판결에 대해서조차 그의 반성의 말 한마디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그는 ‘가장 나쁜 경우의 판결’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오늘 아침 한 사설에서 본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었다는 말이 와 닿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10년 전 그런 자격 없는 대통령이 뽑히도록 방치한 수많은 사람 중 한 명이 나라는 사실에 착잡함을 느낀다. 지금의 20대나 다음 세대들이 “어떻게 저런 사람이 대통령으로 뽑히도록 놔뒀어요?”라고 질문한다면 나는 뭐라 답해야 할까? 정말이지 투표는 하고 후회했어야 했다.

여동하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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