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개정의 배경과 한계를 짚어보다

『대학신문』이 ‘무지갯빛 도시가 회색빛이 되지 않으려면’이라는 기사로 젠트리피케이션 문제의 해결을 촉구한지 1년이 채 지나지 않았다. (『대학신문』 2017년 11월 20일 자) 그간 종로구 서촌에선 ‘궁중족발’이라는 이름의 상처가 덧났다. 한 가정의 생계는 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고, 평소였다면 북적거렸을 가게엔 지게차를 동원한 강제 집행이 이뤄졌다. 불거진 문제의식이 지난 9월 20일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상가법) 개정을 이끌어냈지만, 소 잃고 고친 외양간마저 부실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대학신문』은 폐허 속에서 연대를 통해 견딘 사람들의 이야기와 여전히 메워지지 않은 법의 구멍을 기사에 담았다.

'쫓겨나는 이들과 함께하는 현장예배'에서 궁중족발 윤경자 사장이 연대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고 있다.



◇법의 그물 밖에서 신음하다=수년간 지적된 상가법은 결국 서촌에서 참극을 빚었다. 궁중족발은 2009년 5월 종로구에 자리 잡았다. 주민들에겐 낯선 이름인 ‘서촌’이 사람들의 입소문에 오르기 전이었다. 열심히 일하며 장사가 점차 안정되던 2016년 1월 새로운 건물주가 찾아왔다. 궁중족발 윤경자 사장의 말에 따르면 “서촌이 관광지로 인기를 얻으니 시세 차익을 노리고 건물을 매입한 분”이었고 “합법적으로 세입자를 내쫓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매입한 사람”이었다. 건물주는 리모델링을 할 계획이라며 재입점 조건으로 보증금과 월세의 인상을 요구했다.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300만원을 1억원에 1,200만원으로 올려 사실상 재계약을 거부한 것이다. 물러날 곳이 없었던 궁중족발 사장 부부는 임대인이 제기한 명도소송*에 대응했지만 패소했다. 이어진 수차례의 강제 집행 끝에 사장 부부는 거리로 내몰렸다.

문제는 계약갱신요구권이었다. 개정 전 상가법은 임차인이 계약갱신요구권을 5년의 범위에서 행사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궁중족발은 새 건물주가 퇴거를 요구한 2016년에 이미 최초계약으로부터 5년을 초과했고 계약 갱신을 요구할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다. 그 때문에 상가법 제11조가 보증금 및 차임의 증액을 대통령령에 따라 당시 9%로 한정했음에도 새 건물주는 재계약 조건으로 3.3배의 보증금 인상과 4배의 월세 인상을 내걸 수 있었다. 그렇게 7년 동안 설비를 갖추고 시간을 쏟은 궁중족발은 빈손으로 퇴거당했다. 임차 상인의 권익 보호를 위해 결성된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맘상모)의 쌔미(활동명) 상임활동가는 “5년 때문에 법원이 임대인의 손을 들었다”며 “계약갱신요구권이 보장됐다면 임차인이 승소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진일보, 혹은 반쪽짜리 성적표=올해 9월 20일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이 개정됐다. 궁중족발 사건이 기폭제가 돼 법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은 결과였다. 개정은 △계약갱신요구권 보장 기간을 10년으로 인상 △권리금 회수 기회 보호 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6개월로 연장 △권리금 회수 기회 보호 대상에 재래시장 포함 △상가분쟁조정위원회 신설을 골자로 이뤄졌다. 하지만 아직 임차인의 얼굴은 밝지 않다.

핵심은 임차인의 재산권이 적절히 보장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우선 권리금 회수를 보호하는 법에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문제가 제기된다. 상가법은 제10조에서 “임대차 목적물인 상가건물을 1년 6개월 이상 영리목적으로 사용하지 아니한 경우”에 임대인이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를 정당하게 막을 수 있다고 명시한다. 기존 임차인이 새로운 임차인과의 계약을 주선하더라도 임대인은 다른 이유 없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조항에 따른 악용 사례가 지속적으로 발견되고 있다. 예컨대 노량진의 박문각 학원 1층에 자리 잡은 카페는 앞선 조항을 이유로 권리금 회수를 거절당했다. 쌔미 활동가는 “내부 증언을 들어보니 박문각 측이 북카페를 계획한다는 의혹이 있다”며 임대인이 비영리를 명목으로 세입자를 퇴거시켰을 때, 해당 공간이 실제 어떤 목적으로 사용되는지 확인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재건축으로 임차인이 계약을 종료할 때 퇴거 보상이 없다는 점도 지적된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도시개혁센터는 상가법 개정 다음 날인 9월 21일에 보도자료를 통해 “철거재건축시 우선입주권 또는 퇴거보상비 보장 등의 핵심내용이 빠진 것이 아쉽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행법은 임대인이 임차인의 계약 갱신을 거절할 수 있는 사유 중 하나로 재건축을 명시하는데, 그렇게 계약이 만료되었을 때 내쫓긴 임차인에게 정당한 퇴거 보상이 없다는 것이다. 상가법은 계약 시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재건축 계획에 대해 고지할 의무만을 규정하며 퇴거 보상을 지급할 의무는 다루지 않고 있다. 따라서 임차인은 재건축이 자신의 책임이 아님에도 권리금을 회수하지 못한 채 퇴거에 따른 손해를 고스란히 짊어져야 하는 상황이다.

이밖에도 △환산보증금*이 폐지되지 않고 △차임 및 보증금 인상률 상한선 5%가 물가상승률과 비교했을 때 여전히 과하고 △개정에 따라 보장된 계약갱신요구권 10년이 시행 이전에 계약 및 재계약하는 임차인에게는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 등이 문제로 떠올랐다.

◇법의 구멍을 메우기 위해 연대하다=피해 당사자, 그리고 연대한 이들은 이번 개정의 미흡함에 아쉬움을 느꼈지만, 그들은 법이 보호하지 못한 땅에서 찬바람을 함께 맞는 연대를 보여줬다.

궁중족발 사건을 돕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손을 내밀었다. 지난 9일(화) ‘옥바라지 선교센터’가 ‘쫓겨나는 이들과 함께하는 현장예배’를 열었다. 궁중족발이 겪은 어려움을 치유하고 상황이 나아지길 기도하는 자리였다. 예배에서 윤경자 사장은 “혼자가 아니라고 알려주고 뜻을 같이해주기에 버틸 수 있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옥바라지 선교센터는 강제집행이 이뤄지는 때엔 가게에서 예배를 진행하고 집행이 완료된 뒤엔 실내로 자리를 옮겨 기도회를 이어가고 있다. 맘상모의 회원들도 현장에서 ‘상생촉구집회’를 개최하며 강제집행을 막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연대 과정에서 어려움도 많았다. 연대한 시민들이 강제집행을 저지하자 건물주가 이들을 형사 고발한 것이다. 특수공무집행방해, 부동산강제집행효용침해 등의 죄목으로 50건이 넘는 고발이 이뤄졌다. 실제 윤경자 사장은 “도와주는 사람들 다 범법자 될 거라는 건물주의 협박이 있었다”고 말했다. 연대한 이들의 형편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불합리한 임대차 구조에서 동병상련을 겪는 사람들과 당장 생계를 꾸리는 와중에 시간을 내 돕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다. 하지만 연대는 굳건했다. 현장예배에서 설교를 맡은 전남병 목사는 “내가 고통받을 때 다른 이가 손 내밀어주길 원한다면 나도 타인에게 손을 뻗어야 한다”며 연대를 포기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형사 고발된 다른 사람들도 연대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전하고 있다.

연대는 궁중족발을 돕는 데 그치지 않고 또 다른 연대를 낳았다. 윤경자 사장은 국회와 청와대 앞에서 상가법 개정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당장 법이 개정되더라도 자신에게 적용되지 못하지만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는 걸 막아야 한다”며 그가 경험한 연대를 다시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법의 사각지대에서 수많은 임차인이 고통스러운 나날을 견뎠다. 그 냉엄한 현실에서 법의 공백을 채운 것은 연대한 사람들의 온기였다. 쌔미 활동가는 “연대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사장님이 부담 갖지 않도록 다독인다”며, 늘어가는 고발로 죄책감을 느낄 윤경자 사장을 걱정하는 현장의 모습을 그려냈다. 분명 따뜻한 미담이지만, 서로의 온기로 살아남아야 했던 현실은 국가와 법의 역할이 무엇인지 질문하게 한다. 그 질문 끝에 임차 상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가 법에 의지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 기대해본다.

*명도소송: 부동산을 비우고 넘겨달라는 의도로 제기하는 소송

*환산보증금: 보증금과 월세 환산액을 합한 금액으로, 상가법은 이를 기준으로 세입자에 대한 보호 범위를 정하고 있다.

사진: 유수진 기자 berry832@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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