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라이트’(New Right)란 말이 나돌고 있다. 혹 신종 담배 이름인가 여길 만큼 생소한 말이다. ‘네오콘’이나 신자유주의, 또는 ‘올드 라이트’와는 어떻게 다른가, 의문도 생기지만, 따가운 뜻이 배어 있다. ‘뉴 라이트’를 표방한 한 시민단체에 따르면, 현 정부는 자유주의의 핵심인 법치주의와 입헌주의를 위협하는 ‘민중민주주의 좌파정부’고, ‘올드라이트’는 박정희 향수 같은 이미지를 풍기는 국가주의 수구우파다. 그들은 따라서 이제 제2기 민주화 운동을 시작해야 하며, 핵심은 자유화 운동이라고 주장한다. ‘뉴 레프트’로 불렸던 신좌파의 이론과 해방적 전망을 복음처럼 여기던 비판적 지식인들의 시각으로 보면 기가 막힌 일이지만, 이런 목소리들이 이제 조ㆍ동 등 보수언론의 간접 엄호를 받으며 하필 지금 이 시점에서 본격 대두되었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하다. 참여정부 들어 여야, 좌우를 막론하고 광범위한 수준에서 정치가 실패하고 있는 배경 때문이다. 사회적 합의와 통합을 이루지 못하고 상쟁만 일삼는 정치현실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든 대안을 꾸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미래 건설에 초점 맞추고 자유화,민주화 추구하는 '뉴 라이트 운동'

허구적 이데올로기 대립 뛰어넘어 실제로 기능해야

 

이들의 강령은 놀랍게도 좌우 할 것 없이 대다수가 수긍할 만한 요소들을 꽤 많이 담고 있다. 과거청산보다 미래건설에 초점을 맞춘 개혁, 국가주도형에서 시장주도형 경제시스템 전환을 통한 국민소득 2만불 달성, 기회균등과 청부(淸富)의 권장, 빈곤해소, 법치주의, 상생의 정치문화와 성찰적 민주주의의 실현, 북한 인권의 개선과 민주화 추구 등이 그 예다. 실현만 된다면 얼마나 좋은 목표인가. 이런 이슈들은 한나라당 같은 보수당의 정책프로그램에 의당 포함되었어야 할 내용이고 사실 적어도 문면상으로는 이미 반영된 사항들이다. 그런데 이 정책들을 ‘수구꼴통’에게는 맡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또 다른 차원에서 ‘수구우파’를 대표하던 보수논객들이 쾌재를 부르며 침묵하던 양심들이 시대의 요청에 부응해 무대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며 물 타기를 시도한다. 이들이 질타해 마지않는 보수야당으로부터 진보좌파 정권의 실정에 따른 반사 이익만 바라는 부패한 수구보수로는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는 동조의 목소리도 나온다.

 

‘뉴 라이트’ 운동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우선, 오늘의 한국사회가 좌와 우, 진보와 보수의 극한적 대결로 분열됐다는 인식에 대해 이의를 달 사람은 없겠지만, ‘뉴 라이트’ 역시 좌와 우라는 대립적 이데올로기 범주를 전제로 한 또 다른 우파에 불과한 것 같다. 물론 그들은 “수구우파와 수구좌파의 저급한 선악이분법과 ‘빨갱이’와 ‘수구꼴통’으로 대변되는 색깔론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자유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가 과연 좌우 이념대립만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일까. 사실 좌와 우의 범주는 종종 외국언론에서 한국정치의 성향을 분류할 때 쓰는 스펙트럼의 기준으로라면 몰라도 계급혁명을 추구하는 혁명적 사회주의와 반공주의, 국가주의로 무장한 보수정치를 가르는 판단기준으로 쓰기에는 너무 교조적이고 현실도 너무 변했다. 오히려 그것은 이미 정치, 정책의 퓨전이 진전된 상황에서 양극화를 조장하는 상징적 허구에 불과하다. 오늘 이 시점에서 접한 ‘뉴 라이트’의 생경함은 어쩌면 더 이상 좌우를 가릴 수 없게 된 현실상황의 착잡함을 호도한다. 좌우가 문제였던가. ‘뉴 라이트’가 배격해 마지않은 ‘회색 지식인’이나 ‘강단자유주의자’의 기우일까. 또 다른 허구적 이념화로 이미 활력을 상실한 수구세력에게 재활훈련의 기회를 주고 끝나지나 않을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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