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 홍해인 기자 hsea97@snu.kr

나는 3개월 차 파릇파릇한 햄스터 ‘집사’다. 작고 포동포동한 몸집, 부드러운 털,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아장아장한 발걸음까지 볼수록 매력적인 햄스터. ‘매점하다, 사재기하다’란 뜻의 독일어 ‘hamstern’에서 유래된 이름처럼, 볼 주머니 가득 먹이를 저장하고서 틈만 나면 탈출을 꿈꾼다. ‘hamstern’에는 ‘부지런히 일하다’란 뜻도 있어선지 쉼 없이 쳇바퀴를 돌리고, 부지런히 털 손질을 하며 바쁜 하루를 보내는 기특한 모습을 보면,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마저 하게 된다. 고된 일을 마쳤을 때, 스트레스가 쌓일 때, 인간관계에 지칠 때 햄스터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그런데 햄스터는 과연 반려동물일까? 먼저 햄스터란 무엇인가 되물어야 한다. 햄스터를 모르는 이는 거의 없지만, 제대로 아는 이도 많지 않다. 나 역시 그렇다. 햄스터 중 덩치가 큰 골든 햄스터는 1930년대에, 작은 드워프 햄스터는 1960년대 이후 가정에서 사육됐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대에 햄스터가 가정에서 키워졌다. 인간과 함께한 역사가 짧은 데다 고슴도치 등의 소동물과 함께 이색 동물로 여겨지는 탓에 햄스터에 대한 정보는 쉽게 찾을 수 없다. 인형 뽑기처럼 ‘햄스터 뽑기’가 존재했고, 햄스터를 경품으로 나눠준 적도 있었다. 동물복지가 중요한 이슈가 됐지만, 햄스터는 아직도 반려동물보다는 귀여운 애완동물 정도로 취급받기 일쑤다.

게다가 햄스터와의 동거는 만만찮다. 햄스터 집에 깔아주는 톱밥(베딩)의 먼지를 털어주거나, 해동지를 자르는 일을 ‘집사’들은 ‘노동’이라 부른다. 또한 먹이사슬의 하위에 있는 햄스터들에게는 집사의 손길조차 공포의 대상일지 모른다. 불쑥 만지는 것은 그만큼 햄스터에게 스트레스 요인이 된다. 그리고 햄스터는 단독생활을 기본으로 하는 동물이다. 여러 마리를 합사한다면 서로 물어 죽이는 비극을 지켜보게 될 수 있다. 좁은 케이지에서 키우거나 합사하는 것은 학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꽤 많은 햄스터가 유기된다는 사실 또한 아는 이가 적다.

이번 호 3면 ‘포토뉴스’를 보라. 13일(토) 서울대에서 ‘반려동물한마당’이 열렸다. 행정관 앞은 귀여운 강아지와 고양이들의 무대가 됐고, 많은 반려동물과 집사들이 교감을 나눴다. 아쉬운 것은 대부분 반려견과 반려묘들만의 한마당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몇몇 동물축제나 동물체험장들이 ‘체험’과 ‘교감’이라는 명목을 내세워 아무렇게나 만지고, 아무 때나 먹이를 주게 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고, 유기동물 입양 등의 정보를 공유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었다. 아직도 일부 동물원이나 동물체험장의 동물들은 가혹한 환경에 처해 있고, 햄스터와 같이 정보나 관심이 적은 소동물에게 그곳은 더 가혹할 때가 많다. 분양하는 곳에서조차 비위생적이고 부실한 환경에서 햄스터를 합사하는 경우가 많다. 독립적이며 스트레스에 취약한 햄스터의 습성은 고려되지 않은 채, 인간이 관찰하고 만지기 쉽게 방치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동물을 체험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동물과의 교감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되물어야 하지 않을까.

얼마 전, 자유를 갈구했던 한 마리의 퓨마가 사살됐다. 동물복지를 위해 나아갈 길은 아직 멀지만, 비주류 소동물은 더 큰 무관심 속에서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우리는 약자를 대하는 태도에서 그 사람의 인품을 알아차릴 수 있다. 약자에 대한 보호가 없는 나라의 인권이 높다고 할 수 없듯, 소동물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면 동물복지의 수준도 제자리걸음이리라. 햄스터와의 동거가 좀 더 행복해 지면 좋겠다.

유예현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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