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7일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이하 진상조사위)는 블랙리스트 책임 규명과 관련해 131명에 대한 수사 의뢰 및 징계를 권고했고, 이어 지난 9월 13일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 ‘블랙리스트 책임 규명 이행 준비단’이 징계 이행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진상조사위의 권고안과 달리 사실상 ‘징계 0명’이라는 징계 처분 계획이 밝혀지자 문화예술계는 이 결정을 전면 재검토할 것과 문재인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는 성명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정부는 징계 처분에 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고 이후 절차에 엄정히 임해야 한다.

진상조사위는 블랙리스트 사태와 관련된 사실관계를 파악해 사건의 재발을 막고 공정한 문화예술 지원제도를 수립할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출범한 공식적인 문체부 산하 기관이며 문체부 장관이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문화예술계, 법조계 등 분야별로 추천된 총 20명의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했고, 문화예술인들의 제보를 바탕으로 조사를 실시해 131명의 수사 의뢰와 징계 권고를 골자로 하는 권고문을 냈다. 하지만 이내 징계 권고 주체와 처분 주체 사이의 이견이 드러났다. 문체부는 수사의뢰 권고 대상 26명 가운데 7명을 수사의뢰 하고 2명을 주의조처 했으며, 징계 권고 대상자 105명 가운데 단 10명만을 주의조처 하기로 한 것이다. ‘주의조처’란 국가공무원법상 징계처분에 해당하지 않아 사실상 징계조처는 전혀 이행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문체부는 진상조사위의 권고와 큰 차이를 보이는 결론을 발표하면서도 이를 뒷받침하는 분명한 근거를 밝히지 않았다. 이렇게 진상조사위와 문체부의 손발이 맞지 않았다는 사실은 블랙리스트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킨다.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 대해 비우호적인 문화예술인을 규제하기 위해 작성된 것으로, 표현의 자유를 국가 차원의 불이익을 통해 억압하면서 우리 사회 전반에 중차대한 해악을 미쳤다. 지난 10여 년간 ‘지원배제’로 관리된 문화예술인은 21,362명에 달해 수많은 문화예술인들이 정부의 부당한 개입에 의해 직, 간접적인 피해를 입었음이 드러났다.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잘못된 관행을 근절하겠다는 약속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고, 이번 진상조사위도 바로 그러한 맥락에서 꾸려졌다. 하지만 사실상 징계 0명에 그친 문체부의 발표는 잘못된 관행을 뿌리 뽑겠다는 정부의 의지와도 배치된다. 과연 사안의 중대성을 엄중히 받아들이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까지 드는 상황이다.

블랙리스트는 생각과 감정을 자신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문화예술인들에게서 ‘표현’의 자유를 앗아갔다. 현재까지도 문화예술인들은 서울역 등에서 문체부의 발표를 규탄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정부는 이번 결정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고 이어질 절차에 엄정히 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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